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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금산군 금성면 의총리에 있는 칠백의총(사적 제103호)은
조선 임진왜란 때 왜군과 싸우다가 순절한 700의사(義士)의 무덤입니다.

1592년 조헌趙憲의 의병과 영규의 승병이 합군하여 청주성을 수복하고,
700인의 의병을 이끌고 금산으로 진격,
15,000여 명의 왜군과 혈전을 벌여 전원이 순절하였습니다.
조헌의 제자 박정량(朴廷亮)ㆍ전승업(全承業) 등이 시체를 거두어
하나의 무덤을 만들고 칠백의총이라 했습니다.

   

당시 호남 순찰사인 권율장군이 합세해 금산에서 왜적을 치기로 약속했지만
권율장군이 왜적의 기세로 보아 아군이 열세임을 판단하고는 작전을 바꾸어
후일을 기약하자는 편지를 조헌에게 보냈으나 이 서한을 받아보지 못한 채
출병한 조헌의 의병부대는 결사항전 하다가 모두 순절해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1603년 중봉조헌선생일군순의비(重峯趙憲先生一軍殉義碑)가 세워지고,
1634년 순의단(殉義壇)이 설치되어 해마다 제향을 올렸으며
그 뒤 1647년 종용사(從容祠)를 세워 700의사의 위패를 모셨습니다.

 

일제강점기인 1940년에는 일본인들이 진화사(進化社)를 만들어
사우(祠宇)와 의총을 허물고 일군순의비를 폭파하는 만행을 저질렀는데
광복 후 1952년에 군민이 성금을 모아 의총과 종용사를 재건하였으며
1963년 사적으로 지정하고 1970년 국가에서는
종용사ㆍ기념관ㆍ순의탑 등을 새로이 지었습니다.

 

 

정문에는 안내도를 뒤로하고 안으로 들어섭니다.
관람료는 무료입니다. 안쪽에 규모가 엄청 큰 반송이 있는데
보통 반송은 아담한 크기이지만 이곳의 반송은 거목(巨木)입니다.
우측에는 수련이 피어 있는 작은 연못(숭의지)이 있고
좌측은 관리사무소입니다. 

 

 

 

 

 정문 안내소

 

거목으로 성장한 반송

 

 숭의지

 

 관리사무소

 

 

 

의총문으로 들어가면 좌측에 기념관이 있지만
안으로 들어가 관람하지는 못했습니다.

 

 

 

 

 

 

 


우측의 순의비각에는 중봉조선생 일군순의비가 있는데
이는 700의사의 행적을 기록한 비입니다.


일제 감점기인 1940년 당시 금산경찰서장(일본인)이
비를 폭파한 것을 주민들이 묻어 두었다가
해방 후 파내어 복원한 것입니다.      

 

 

 

 

 

 

 

 


취의문을 들어서면 700의사의 위패를 모신 종용사입니다.
종용사에는 700의사 이외에 금산싸움에서 순절한
고경명(1533-1592) 선생 등의 위패도 함께 모시고 있습니다.

고경명은 임진왜란 때 6,000여 명의 의병을 이끌고
금산에서 왜적과 싸우다 전사한 의병장입니다.

 

 

 

 

 

 

 

 

 

 

종용사 뒤쪽은 챌백의총입니다.
700의사를 합장한 단일묘로 분묘 옆에는
중봉 조선생 일군순의비(모사품)도 세워져 있습니다.

 

 

 

 

 

 

  
칠백의총은 사적으로 지정되어 국가에서 관리해서인지
경내가 매우 깨끗하고 잘 정돈된 분위기입니다.
임진왜란 당시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700영령들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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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ennpe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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