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열사에 모신 애국지사 7인의 영정
삼의사(이봉창, 윤봉길, 백정기)의 묘
서울 용산구 효창동 소재 서울효창공원은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몸바친 애국지사들의 유해를 모신 곳(사적 제330호)으로 원래 조선 22대왕 정조의 맏아들로 태어나서 세자책봉까지 받았으나 다섯 살 때 요절한 문효세자(文孝世子)의 무덤이 있던 곳으로 효창원(孝昌園)이라 불렸다가 일제강점기에 문효세자의 묘를 경기도 고양시에 있는 서삼릉(西三陵)으로 옮기면서 효창원은 효창공원이 되었습니다.
공원북쪽 가장 높은 곳에는 일제 때 항일투쟁을 하다 목숨을 바친 삼의사 이봉창(李奉昌)·윤봉길(尹奉吉)·백정기(白貞基)의 묘소가 있는데 이는 김구 선생이 이곳으로 이장(1946년)한 것이며, 김구 선생도 피살된 이후 이곳에 안장되었습니다. 또 상해임시정부 요원인 이동녕, 차이석, 조성환 선생의 유해도 안치되어 있습니다.
공원 내에는 원효대사 동상(1969), 반공투사위령탑(1969), 백범김구기념관(2002), 의열사(7인의 애국선열 영정을 모신 사당) 등이 세워졌으며 송림이 매우 울창하고 산책로가 잘 조성되어 인근 주민의 사랑을 받고 있는 공원입니다. 공원 내에는 어린이 놀이터, 자연생태학습원, 하트 모양의 흔들의자, 각종 체육시설이 있어 시민들은 산책을 하면서 애국지사들을 만날 수 있는 생생한 역사교육의 현장입니다.
① 임정요인의 묘
효창공원 정문(창열문)에서 이정표를 따라 우측으로 들어가면 임정요인의 묘가 나옵니다. 이곳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으로 활약한 임정주석 이동녕, 군무부장 조성환, 비서부장 차리석 선생의 묘역입니다. 세 사람의 약력은 현지 안내문을 그대로 옮겨 적은 것입니다.
효창공원 정문 창렬문
공원 이정표
조성환(좌측), 이동녕(중앙), 차리석(우측)
<이동녕(1869-1940) 선생>
충남 천안 출신. 독립협회 활동과 언론·계몽운동, YMCA 운동 및 을사늑약 반대운동 등을 전개하였고, 1906년 북간도로 망명하여 서전의숙을 설립하여 독립운동의 인재를 양성했으며, 1907년 귀국하여 신민회 조직에 참여하는 한편 언론·교육활동을 통해 항일구국운동에 나섰다. 1910년 서간도에 망명하여 경학사와 신흥무관학교등을 설립하였다. 3·1운동 후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수립에 참여하였고, 한국독립당·한국국민당을 조직하는 한편 임정의 의정원 의장, 국무위원, 주석 등을 역임하였다. 1940년 중국 치장에서 세상을 떠났는데, 1948년 김구 선생이 주선하여 사회장으로 봉환하였다.
<조성환(1875-1948) 선생>
서울 출신. 육군무관학교에 입학하여 군부를 개혁하고자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항일 비밀결사인 신민회에서 적극적인 활동을 하였다. 1912년 일본의 총리대신 가쓰라의 만주시찰 때에 암살을 기도하였으나 실패, 옥고를 치렀다. 3·1운동 이후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군무차장에 임명되었으며, 만주 북로군정서에서 군무부장을 역임하면서 청산리전투 등 무장 독립투쟁을 전개하였다. 임정 국무위원으로 활동하는 한편 광복군 창설과 활동에도 크게 기여하였다. 1945년 환국하여 대한독립촉성회 위원장을 역임하였고, 1948년 서거하였다.
<차리석(1881-1945)선생>
평북 선천 출신. 평양 숭실중학교를 졸업하고 신민회에 가입하였으며, "105인 사건"으로 3년간 옥고를 치렀다. 3·1운동 때 만세시위 운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으며, 상하이로 망명하여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기관지인 독립신문 창간에 참여하고 기자와 편집국장으로 활약하였다. 또한 한국독립당 이사를 역임하였으며 흥사단 원동임시위원부 단무(團務)를 총괄하였다. 1945년 일제가 패망하여 환국을 준비하던 중, 중국 충칭에서 세상을 떠났고, 1948년 김구선생이 주선하여 사회장으로 봉환되었다.
② 삼의사의 묘
삼의사 묘는 조국 광복을 위해 몸 바친 이봉창, 윤봉길, 백정기 의사를 모신 묘역입니다. 삼의사 묘 왼편에는 안중근 의사(1879-1910)의 가묘가 있는데 1910년 뤼순감옥에서 순국한 그의 유해를 찾으면 안장하고자 마련한 빈 무덤입니다. 1909년 중국 하얼빈 기차역에서 조선 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안중근은 사형이 집행되기 전 "내가 죽으면 내 유골을 하얼빈공원에 묻었다가 대한의 독립이 되거든 조국으로 나의 유골을 운구해 달라"는 유언을 남겼는데 아직까지도 유골을 찾지 못하고 있으니 정말 안타까운 일입니다.
안중근 의사의 가묘(빈 무덤)
<이봉창 의사(1901-1932)>
일본 도쿄에서 일왕의 행렬을 향해 수류탄을 던져 순국한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전주. 한인애국단에 가입하여 일왕의 암살을 자원했다. 1932년 1월 관병식을 마친 후 마차를 타고 돌아가는 일왕의 행렬이 나타나자 군중 속에서 달려나와 수류탄을 던졌다. 근위병에게 부상을 입혔을 뿐, 거사는 실패로 돌아갔지만 이봉창의 의거는 중국의 각 신문들에서 한국인의 애국적 기개에 대해 고무적으로 대서특필했으며, 당시 침체기에 빠져 있던 임시정부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어 주었다.
<윤봉길 의사(1908-1932)>
농촌계몽운동에 앞장서다가 독립투쟁을 위해 중국으로 망명한 다음 임시정부 산하 한인애국단의 일원으로서 1932년 상하이 홍커우 공원에서 열린 일본군의 전승축하기념식장에서 폭탄투척의거를 펼쳐 중국침략의 수괴들을 대거 살상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중국 국민당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게 된 임시정부는 적극적으로 항일운동을 전개할 수 있었다.
<백정기 의사(1896-1934)>
어려서부터 한학과 신학문을 배운 그는 1919년 서울에 올라와 3·1운동을 목격하고, 급히 고향으로 돌아가 만세운동을 전개했다. 1922년 베이징으로 탈출했다. 1924년 여름 도쿄에 잠입해 수력공사장과 주요건물을 폭파하려 했으나, 실패하고 베이징으로 귀환했다. 9월에는 상하이의 철공장에 들어갔다. 1925년 신채호 등이 조직한 재중국조선무정부주의자연맹에 참여했으며 5·30총파업에 가담하기도 했다. 1930년 북만주로 가서 자유혁명자연맹이란 비밀결사를 조직했고, 1931년에는 흑색공포단을 조직해 일본군의 시설파괴, 요인암살 등을 목표로 독립운동을 전개했다.
③ 백범 김구 선생의 묘
백범 김구(1876-1949)는 일제강점기 나라의 독립과 통일민족국가 건설을 위해 투쟁하고 애국계몽운동을 전개했던 독립운동가입니다. 본관은 안동, 호는 백범으로 1919년 상해로 망명하기 전까지 국내에서 동학농민운동과 애국계몽운동에 참여했습니다. 임시정부의 초대 경무국장을 거쳐 국무위원과 주석을 지냈는데, 이후 여러 갈래로 갈라진 민족독립운동 진영을 통합하고자 한국광복전선을 결성하고 좌우합작의 이념적 통합을 이루었습니다. 해방 이후 신탁통치 반탁운동을 맹렬히 전개했고 완전자주독립노선을 주장했으나, 1949년 6월 경교장에서 육군 현역 장교 안두희가 쏜 총탄을 맞고 서거한 인물입니다.
④ 의열사
의열사는 효창공원 내 묘역에 안치된 독립운동가 7인의 영정을 모신 사당입니다. 의열문을 들어서면 의열사인데 이곳에는 임정요인 4인(이동녕, 김구, 조성환, 차리석), 삼의사 3인(이봉창, 윤봉길, 백정기)의 영정이 있습니다.
백정기, 윤봉길, 이봉창(사진 우로부터)
이동녕, 김구, 조성환, 차리석(사진 우로부터)
⑤ 원효대사 동상
원효(617-686)는 신라의 고승으로 661년 의상과 함께 당나라에 유학을 가기 위해 당항성으로 가는 중 어느 토굴에서 자다 목이 말라 바가지에 있던 물을 달게 마셨는데, 다음날 아침 보니 토굴이 아닌 무덤에서 해골에 고인 물을 마셨다는 것을 알고는 "마음이 일어나므로 갖가지 현상이 일어나고 마음이 사라지니 땅막과 무덤이 둘이 아님을 알았다"고 깨달은 뒤 유학을 포기한 일회는 유명합니다. 그는 불교뿐 아니라 유교와 도교, 법가사상 등에도 해박했으며, 요석공주와의 사이에서 후일 대학자가 된 설총을 낳았습니다. 원효대교와 원효로 등은 그의 이름을 따온 것입니다.
⑥ 북한 반공투사 위령탑
8.15 해방의 기쁨에 젖어 있던 우리겨레를 속박해 북녘 땅을 강점한 침략자들과 맞서 싸우다가 무참하게 사라져 간 자유투사들을 기리기 위한 위령탑입니다.
⑦ 광복 70주면 기념광장
광복 70주년을 맞아 태극조형물을 설치하고 무궁화 70주를 식재해 이를 기념하고 순국선열을 기리는 마음으로 조성한 광장입니다.
⑧ 효창공원 상징조형물
효창광장에 있는 공원 상징조형물은 역 삼각형의 긴 원통을 세운 모습인데, 현지에 이에 대한 안내문을 찾지 못해 무엇을 뜻하는 지 잘 모르겠습니다.
⑨ 이봉창 의사 동상
효창공원 밖 백범 김구 기념관 입구에 이봉창 의사동상이 있습니다. 1932년 일본 천황 히로히토에게 폭탄을 던져 세계를 놀라게 한 이봉창 의사를 기려 동아일보사의 후원으로 설립한 동상입니다.
☞ 서울지하철 6호선 효창공원앞역 1번 또는 2번 출구에서 약 500m 정도 걸어가면 됩니다.
인근에는 효창운동장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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