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10월 3일 개천절로 법정공휴일이다. 서울하늘은 잔뜩 찌푸려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만 같다. 뉴스는 온통 노무현대통령의 평양방문소식이다. 50년 이상 굳게 닫혀 있던 남북간 군사분계선을 걸어서 넘었으니 그럴 만도 하다.
그 와중에서도 통합신당과 민주당의 대통령후보선출을 위한 경선이 파행을 거듭하고 있다고 전한다. 정치에 대하여는 잘 모르고 또 언급할 필요도 없지만 일반국민들에게 정치적 혐오증을 불러 일으키는 정당들의 정치행위에 이제는 정말 식상할 정도다. "안 가보면 땅을 치고 후회할 국내외 여행지 121곳" (조선일보사, 2004)이라는 책을 뒤적여 보다가 2개의 거대한 석불사진이 눈에 띄었다. 바로 "파주 용미리 석불입상"으로 보물 제93호이다.
파주하면 서울에서 엎어지면 코 닿을 곳이 아닌가. 얼른 지도와 카메라를 챙겨 집을 나선다. 고양에서 의정부를 연결하는 39번 국도를 타고 가다가 1번 국도와 만나는 벽제를 지나 의정부 방향으로 2km쯤 가면 벽제삼거리이다. 이곳에서 좌회전해 78번 지방도를 타고 약 5km정도 가면 오른쪽 야트막한 장지산 중턱에 쌍석불의 모습이 보인다.
도로를 벗어난 곳에 바로 좁은 주차장이 있고 아담한 사찰 용암사가 자리하고 있다. 경내에는 대웅보전과 5층석탑, 종무소와 범종각이 있는데, 주변을 둘러보아도 사찰에 관한 연혁이나 안내문이 없다.
용암사 대웅보전과 5층석탑
법종각
종무소
대웅보전
대웅보전의 삼존불상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용암사는 긴 세월의 전설과 불공에도 불구하고 1997년 화재로 소실되어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안타깝게 하다가 몇 년 전에 재건축을 했다고 한다. 다만 석불입상에 얽힌 전설에 관한 안내문이 서 있어 길손의 궁금증을 풀어 줄뿐이다.
『고려시대 중기 13대 선종(재위 1083-1094)은 자식이 없어 셋째부인인 원신궁주 이씨(元 信宮主 李氏)까지 맞이하였으나 여전히 아이가 생기지 않았다. 이것을 못내 걱정하던 궁주의 꿈속에 어느 날 두 도승이 나타나 "우리는 장지산(長芝山) 남쪽 산기슭에 있는 바위틈에 사는 사람들이오. 배가 매우 고프니 먹을 것을 주시오." 하고는 홀연히 사라져 버렸다. 꿈에서 깬 궁주는 이 내용을 왕께 아뢰었다. 왕은 곧 사람을 보내 살펴보게 하였는데 장지산 아래 큰 바위 둘이 나란히 서 있다는 보고를 받았다. 왕은 즉시 이 바위에 두 불상을 새기고 절을 지어 불공을 드리도록 하였더니 그 해에 원신궁주는 태기가 있었고, 왕자인 한산후(漢山候)가 탄생했다고 전해진다.』
미륵불을 알리는 이정표를 따라 왼쪽의 계단을 오르니 그기에 바로 쌍석불이 위풍당당하게 서 있다. 위로 올려다 보이는 석상의 모습이 정말 대단하다. 석상 아래에는 보물임을 나타내는 표석이 있고 안내문도 보인다.
보물 제93호 석불입석 표석
『이 불상은 천연 암벽을 몸체로 삼아 그 위에 목, 머리, 갓 등을 따로 만들어 얹어 놓은 2구의 거대한 불상이다. 왼쪽의 불상은 원형의 갓을 쓰고 있고, 오른쪽의 불상은 사각형의 갓을 쓰고 있는데, 전하는 말에 따르면 각각 남상(男像)과 여상(女像)이라고 한다. 거대한 자연석을 그대로 이용해 위압감이 느껴지나 신체 각 부위의 조각수법이 뛰어난 작품이다. 전체 높이가 17.4m로 우리나라 쌍석불입상 중 최대규모이며, 조각수법에 있어 안동 마애석불과 비슷하지만 좀 더 민속적인 얼굴로 변화된 한국적인 미륵불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불교미술과 조각에 문외한인 길손이 보아도 거대한 자연석을 거의 훼손하지 않고 조각한 점이 돋보인다. 남상(圓笠佛)은 왼손으로 가사를 잡고 있는 모습을, 여상(方笠佛)은 두 손을 모아 합장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불상의 머리 위에 갓(笠)을 씌운 것은 눈이나 비로부터 불상을 보호하기 위한 방편으로 고려시대에 특히 유행했는데, 고려 최대의 석불입상으로 학창시절에 배운 은진미륵(관촉사석조미륵보살입상)이 보물 제218호인 것을 고려한다면 이 불상의 가치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쌍미륵블은 4각형의 각진 얼굴, 가늘고 긴 눈과 큰 코, 그리고 꾹 다문 입을 가진 매우 무뚝뚝한 인상이지만 몸체의 조각과 함께 보면 볼수록 친근감이 가는 얼굴이 된다.
불가에서는 미륵은 석가모니 사후 56억 7천만년 후 세상에 나타나 용화수 아래에서 세 번의 설법으로 모든 중생을 극락세계로 인도한다는 부처다. 따라서 현실에서 고통받는 민초들은 끊임없이 미륵의 세상이 도래하기를 소망했고, 자신들의 터전 근처에 미륵을 모시고 살았다.
후삼국시절 태봉국을 세운 궁예가 자신을 미륵부처로 행세하며 지지자를 규합한 것은 이와 같은 불교사상에 뿌리를 둔 것으로 보인다.
불상 뒤로 돌아 올라가니 불상의 목과 머리 그리고 갓 부분을 별도로 만들어 올린 것임을 확실히 알 수 있다. 불상 뒤에는 자리를 깔고 앉은 젊은 부부로 보이는 사람이 묵상하며 기도를 드리고 있다.
선종의 전설에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지금도 아이를 낳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뒤에서 본 쌍석불
대학입학수학능력시험을 앞 둔 시점이어서 그런지 오늘도 미륵불을 찾는 발길이 간간이 이어진다. 장지산 중턱 고즈넉한 언덕에 서 있는 쌍석불은 매일 오가는 중생들을 굽어보며 복덕을 베풀고 있다.
(2007. 10.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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