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의 품으로 개방된 국립서울현충원
국립서울현충원은 동작동국립묘지의 새로운 이름이다. 이곳은 국가와 민족을 위해 목숨을 바친 호국의 영령들이 잠들어 있는 성스러운 장소이다.
글쓴이는 공직생활을 하며 신년 초 몇 차례 국립묘지에 단체로 참배한 적은 있었지만 개인적으로 처음 찾았다.
일반적으로 이곳은 국가유공자 가족이나 공식참배자만 방문 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실은 누구나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다. 굳이 묘소참배를 하지 않더라도 가벼운 옷차림으로 묘지주변과 묘지외곽에 조성된 산책로를 따라 자유롭게 거닐 수 있다. 성스러운 장소이지만 시민의 휴식처로 개방되었기 때문이다.
현충일을 앞두고 서울현충원을 찾았다. 서울지하철 4호선 동작역에서 내려 육교를 건너가니 현충원 정문이다. 교통정리를 하는 씩씩한 국군용사의 표정과 몸짓에 주눅들 필요 없이 그냥 안으로 들어간다.
국립서울현충원 정문
꽃 파는 사람들
정문 안 분수대
분수대 탑에서 현충탑을 바라본다. 꽃시계는 오전 11시 15분을 나타내고 있다. 이정표를 따라 현충문으로 들어간다. 현충일을 앞두고 있어서인지 유치원생들이 단체로 참배를 온 모습이 많이 눈이 뜨인다.
꽃 시계 뒤로 보이는 현충문과 현충탑
이정표
현충문
참배는 방명록에 서명을 하고 현충탑에 가서 헌화하거나 분향하면 된다. 외국의 국가원수가 방한 할 경우 제일 먼저 찾는 장소가 국립현충원임은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시답잖은 정치인들이 출사표를 던지는 등 주요결단을 내릴 때 꼭 국립묘지를 찾아 애국자인척 행세하는 것은 이제는 식상해 보인다.
현충문에서 방명록에 서명하는 사람들/이명박 대통령도 이곳에다 국민을 섬기겠다고 서명했음
지팡이를 든 사람이 현충탑으로 들어서고 있음.
현충문을 돌아 뒤로 들어가니 비석이 줄지어 서 있다. 한 사람 한 사람 모두가 소중한 우리의 자식들이었건만 이제 한줌의 흙으로 돌아가 여기에 잠들어 있는 것이다. 문득 코끝이 찡해 온다. 묘지를 찾은 고사리 손들도 묘비를 어루만지거나 국화를 바친다.
비석을 한번 보자. 육군병장 김준길은 단기 4286년 7월 양구지구에서 전사한 인물이다. 서기로는 1953년 7월이니 휴전협정이 체결되기 직전이다. 저쪽 묘역에는 양산을 바쳐 든 유가족이 묘비 곁에 앉아 고인을 추모하고 있다.
개구쟁이들의 헌화
1953년 양구지구에서 전사한 김준길 병장의 묘비
고인을 추모하는 유가족
경찰충혼탑을 지나가니 국가유공자 묘역이다. 국무총리 이범석을 비롯하여 국회부의장 김재광, 애국가 작곡자 안익태, 고당 조만식 선생, 임시정부 대통령 박은식 등 쟁쟁한 인물들이 잠들어 있다.
국가유공자 묘역
대한독립군무명용사 위령탑을 지나 오른쪽 언덕에 위치한 호국 지장사를 둘러보고 내려오니 고(故) 박정희 대통령과 영부인 육영수의 묘소다. 때마침 한 무리의 유치원생들이 지도교사와 함께 참배를 왔다. 머리를 조아린 어린 싹들을 보며 지하에 계신 전직 대통령부부도 흐뭇해하시겠지. 이곳에서 뒤돌아보면 동작대교와 남산타워도 조망이 잘 된다.
대한독립군 무명용사 위령탑
고 박정희 대통령 내외분 묘소
유치원생들의 묵념
동작대교와 남산타워 조망
이제 장군묘역으로 간다. 각 군별로 준장이 가장 많고 소장과 중장은 간혹 눈에 뜨인다. 여기서 뒤돌아보면 방금 지나온 박 대통령 묘소가 매우 아늑하게 보이고, 한강변의 동작대교와 남산 타워 그리고 북한산과 도봉산의 스카이라인까지 조망된다. 날씨가 흐리기는 하지만 시계가 매우 밝은 것이 무척 다행이다.
장군묘역
남산타워와 북한산 조망
묘소주변에는 산딸나무가 화사한 꽃을 피우고 있고, 경사진 곳에는 덩굴장미가 널브러져 고인의 넋을 위로하고 있다.
산딸나무
덩굴장미
정문 쪽으로 내려오다가 사병묘역을 지나 왼쪽으로 돌아가니 건국의 아버지인 초대대통령 이승만 박사의 묘지이다. 중절모자를 쓴 노신사 한 분이 조용히 참배를 하고 떠난다. 글쓴이도 배낭을 내려놓고 모자를 벗은 채 분향을 하고 묵념을 올렸다. 이승만 대통령이 이기붕 부통령 같은 간신배에 휘둘리지만 않았더라면 그토록 허망하게 하야하고 생을 마감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고 이승만 대통령 묘소
현충천에는 꿩 한 마리가 풀숲에서 노닐고, 묘역 옆의 숲에는 개구쟁이들이 즐거운 한 때를 보내고 있다.
현충천의 꿩
숲 속의 어린이들
현충관과 사진전시관 앞에도 단체로 현장 학습을 나온 어린이들이 진을 치고 앉아 있다. 사진 전시관을 둘러보고 나오니 국군의장대가 급히 현충문 방향으로 이동한다.
정문으로 가니 경내에 헌병들이 촘촘히 배치되어 있다. 조금 있으려니 붉은 색 별판을 단 승용차가 미끄러져 들어오고, 경례를 하는 위병의 구호가 울려 퍼진다. 알고 보니 xx사령관이 참배를 왔다고 한다. 이런 맛에 군에서 지휘관을 하겠지.
현충관과 사진전시관
현충탑으로 가는 의장대
유물전시관(내부 공사중)
마음이 울적하거나 매사가 뜻대로 되지 않을 때 국립현충원을 찾아보기를 권한다. 이곳에 와서 하나뿐인 목숨을 조국을 위해 바친 넋들을 생각하면 저절로 머리가 숙여진다. 또한 이 순간 인간이 생존해 있음에 대해 감사하게 생각하게 된다. 살아있는 동안 나라와 사회를 위해, 아니면 가족과 자신을 위해서라도 보다 뜻깊고 보람되게 인생을 살겠다는 각오를 다진다면 위대한 영령들 앞에 부끄럽지 않은 후손이 되리라.
6월은 호국보훈의 달이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분들과 그 유가족을 추모하고 돕는 일은 일회성 행사로 끝나서는 안될 것이다.
《국군은 죽어서 말한다》
- 모 윤 숙 -
△ 나는 광주 산곡을 헤매이다 문득 혼자 죽어 넘어진 국군을 만났다.△
산 옆 외따른 골짜기에
혼자 누워 있는 국군을 본다.
아무 말, 아무 움직임 없이
하늘을 향해 눈을 감은 국군을 본다.
누른 유니폼 햇빛에 반짝이는 어깨의 표식
그대는 자랑스런 대한민국의 소위였고나.
가슴에선 아직도 더운 피가 뿜어 나온다.
장미 냄새보다 더 짙은 피의 향기여!
엎드려 그 젊은 주검을 통곡하며
나는 듣노라! 그대가 주고 간 마지막 말을 ……
나는 죽었노라. 스물 다섯 젊은 나이에
대한민국의 아들로 나는 숨을 마치었노라.
질식하는 구름과 바람이 미쳐 날뛰는 조국의 산맥을 지키다가
드디어 드디어 나는 숨지었노라.
내 손에는 범치 못할 총자루, 내 머리엔 깨지지 않을 철모가 씌워져
원수와 싸우기에 한 번도 비겁하지 않았노라.
그보다도 내 핏속엔 더 강한 대한의 혼이 소리쳐
나는 달리었노라. 산과 골짜기, 무덤 위와 가시숲을
이순신같이, 나폴레온같이, 시이저같이,
조국의 위험을 막기 위해 밤낮으로 앞으로 앞으로 진격! 진격!
원수를 밀어 가며 싸웠노라.
나는 더 가고 싶었노라. 저 원수의 하늘까지
밀어서 밀어서 폭풍우같이 모스코바 크레믈린 탑까지
밀어 가고 싶었노라.
내게는 어머니, 아버지, 귀여운 동생들도 있노라.
어여삐 사랑하는 소녀도 있었노라.
내 청춘은 봉오리지어 가까운 내 사람들과 함께
이 땅에 피어 살고 싶었었나니
아름다운 저 하늘에 무수히 날으는 내 나라의 새들과 함께
나는 자라고 노래하고 싶었어라.
나는 그래서 더 용감히 싸웠노라. 그러다가 죽었노라.
아무도 나의 주검을 아는 이는 없으리라.
그러나 나의 조국, 나의 사랑이여!
숨 지어 넘어진 내 얼굴의 땀방울을
지나가는 미풍이 이처럼 다정하게 씻어 주고
저 하늘의 푸른 별들이 밤새 내 외롬을 위안해 주지 않는가?
나는 조국의 군복을 입은 채
골짜기 풀숲에 유쾌히 쉬노라.
이제 나는 잠시 피곤한 몸을 쉬이고
저 하늘에 날으는 바람을 마시게 되었노라.
나는 자랑스런 내 어머니 조국을 위해 싸웠고
내 조국을 위해 또한 영광스리 숨 지었노니
여기 내 몸 누운 곳 이름 모를 골짜기에
밤이슬 나리는 풀숲에 나는 아무도 모르게 우는
나이팅게일(주/밤 꾀꼬리)의 영원한 짝이 되었노라.
바람이여! 저 이름 모를 새들이여!
그대들이 지나는 어느 길 위에서나
고생하는 내 나라의 동포를 만나거든 부디 일러 다오.
나를 위해 울지 말고 조국을 위해 울어 달라고.
저 가볍게 날으는 봄나라 새여
혹시 네가 날으는 어느 창가에서
내 사랑하는 소녀를 만나거든
나를 그리워 울지 말고 거룩한 조국을 위해
울어 달라 일러 다고.
조국이여! 동포여! 내 사랑하는 소녀여!
나는 그대들의 행복을 위해 간다.
내가 못 이룬 소원, 물리치지 못한 원수,
나를 위해 내 청춘을 위해 물리쳐 다오.
물러감은 비겁하다. 항복보다 노예보다 비겁하다.
둘러싼 군사가 다아 물러가도 대한민국 국군아! 너만은
이 땅에서 싸워야 이긴다. 이 땅에서 죽어야 산다.
한 번 버린 조국은 다시 오지 않으리라. 다시 오지 않으리라.
보라! 폭풍이 온다. 대한민국이여!
이리와 사자 떼가 강과 산을 넘는다.
내 사랑하는 형과 아우는 서백리아(주/시베리아) 먼 길에 유랑을 떠난다.
운명이라 이 슬픔을 모른 체 하려는가?
아니다. 운명이 아니다. 아니 운명이라도 좋다.
우리는 운명보다는 강하다. 강하다.
이 원수의 운명을 파괴하라. 내 친구여!
그 억센 팔 다리. 그 붉은 단군의 피와 혼,
싸울 곳에 주저 말고 죽을 곳에 죽어서
숨지려는 조국의 생명을 불러 일으켜라.
조국을 위해선 이 몸 이 숨길 무덤도 내 시체를 담을
작은 관도 사양하노라.
오래지 않아 거친 바람이 내 몸을 쓸어가고
저 땅의 벌레들이 내 몸을 즐겨 뜯어가도
나는 즐거이 이들과 함께 벗이 되어
행복해질 조국을 기다리며
이 골짜기 내 나라 땅에 한 줌 흙이 되기 소원이노라.
산 옆 외따른 골짜기에
혼자 누운 국군을 본다.
아무 말, 아무 움직임 없이
하늘을 향해 눈을 감은 국군을 본다.
누른 유니폼 햇빛에 반짝이는 어깨의 표식
그대는 자랑스런 대한민국의 소위였고나.
가슴에선 아직 더운 피가 뿜어 나온다.
장미 냄새보다 더 짙은 피의 향기여!
엎드려 그 젊은 주검을 통곡하며
나는 듣노라! 그대가 주고 간 마지막 말을
(시집 <풍랑>, 1951)
☞ 모윤숙은 일제말기 친일행위로 멍에를 지고 있으나 해방 후 열렬한 반공주의자로 활동했다. 위의 시를 읽으면 우리의 언어가 정말 아름답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누구든 조국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칠 각오를 하게 된다.(글쓴이 생각).
《국립서울현충원 개요》
동작구 동작동에 위치한 국립현충원은 국가와 민족을 위해 순국한 호국영령들이 잠들어 있는 민족의 성역이다. 이 곳은 관악산 기슭의 공작봉(孔雀峰)을 주봉(主峰)으로 하여 정기 어린 능선이 병풍치듯 3면을 감싸고 앞으로는 한강수가 굽이쳐 도는 풍수상 명당으로 손꼽히는 43만여 평의 포근한 땅이다.
국군창설 이래 전사자들을 서울 장충단공원 내에 있는 장충사에서 모셔왔는데, 6.25동란이 발발하여 전사자 수가 증가하자 군묘지 설치 문제가 논의되어 1955년 7월 현재 위치하고 있는 동작동에 군묘지 업무를 관장할 '국군묘지관리소'를 창설하였다.
1956년 4월 군묘지령이 제정되어 전국 곳곳에 이름 없는 넋으로 산재하고 있는 국군장병들의 묘지를 안장하였다. 초기 국군묘지에는 군인과 군무원만을 안장하였으나, 1965년 3월 '국립묘지'로 승격되어, 애국지사, 경찰관 및 향토예비군까지 대상을 확대하여 안장함으로써 겨레의 성역으로서 국립묘지의 위상을 갖추게 되었다.
그리고, 1996년 6월에는 '국립묘지관리소'의 관리기관 명칭이 '국립현충원'으로 개명되었으며, 2006년 1월 서울국립묘지가 국립서울현충원으로 변경되었다.
2008년 5월 31일 현재 국립서울현충원에는 국가원수 2위, 임정요인 18위, 애국지사 212위, 국가유공자 62, 장군 355위, 장교 4,488위, 사병 46,554위, 경찰 814위의 묘소와 103,722위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다.
《교통정보》
△ 지 하 철 - 4호선 동작역 ②④번 출구
△ 일반버스 - 국립묘지 하차 361∼363, 4511, 5524, 6411, 9411, 9408, 9412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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