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영암군 학산면 학계리 소재 충효사(국가지정 문화재 209호)는 임진왜란 공신 김극희(金克禧) 장군과 김함(金涵) 장군 부자의 거룩한 충효정신을 기리는 묘역과 사당이다.
김극희 장군(1532-1598)은 당대의 석학인 남명 조식 선생으로부터 수학한 후 무과에 급제하여 거제부사를 지냈다.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아들 함에게 명하여 의사(義士)를 모으고 무기와 군량 천여 석을 조달하여 좌수영에 참전하여 이순신 장군을 도왔다.
많은 전투에서 이순신 장군을 도와 많은 전공을 세웠으며, 절이도(현 전남 고흥)에서 적을 섬멸시키고 달아나는 적을 쫓다 향년 66세로 순국하였다.
그의 아들 김함(1568-1598)은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을 지낸 뒤 임진왜란을 맞아 부친과 함께 참전하였다.
부친이 순국하자 부친의 원수를 갚겠다는 기치를 높이 들고 적진에 들어가 적장을 한 칼에 참한 뒤 승승장구 추격하다 흉탄에 맞아 순국하였다.
도로변에 위치한 안내표석에 따라 안으로 들어서니 사당임을 알리는 문이 서 있고 그 안쪽에 장군의 어록비와 석등이 있다.
사당의 정문은 정의문(正義門)인데, 휴일이어서 그런지 문이 굳게 닫혀 있다. 담장 곁으로 가서 발뒤꿈치를 들고 안쪽의 사진을 몇 찍었는데 사진이 제대로 나올 리가 없다.
사당의 왼쪽 산기슭에는 이들 부자와 가족의 묘소가 조성되어있다. 김극희 장군은 선무공신 통훈대부에, 김함은 선무공신에 서훈되었음을 알리는 비석이 세워져 있다.
학계리는 남으로는 가학산과 흑석산이 병풍처럼 서 있고, 북으로는 호남 제일명산인 월출산이 멋진 능선의 파노라마를 그리고 있는 중간에 위치한 마을이다.
이처럼 풍치 좋은 곳에서 임진왜란 때 나라를 지킨 김극희 장군 부자의 넋은 오늘도 말없이 영암 벌판을 지켜보며 잠들어 있다. 그로부터 약 400여 년이 지난 지금, 조국은 두 동강이 난 채 새로운 대통령이 취임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국론은 분열되어 있는 실정이다. 고귀한 목숨을 버리고 나라를 지킨 선현들의 거룩한 뜻이 헛되지 않도록 국민의 뜻을 한 곳으로 모으는 지혜가 그 어느 때 보다 필요한 시점이다.(2008. 5. 10). 끝.
☞ 스크랩 안내 : 다음 블로그(http://blog.daum.net/penn1570)
'역사.문화.예술'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남미지방의 환상적인 선물용 나비표본 (8) | 2008.06.18 |
---|---|
공룡의 입 속에서 놀아요! 서울공룡그랜드 쇼! (15) | 2008.06.16 |
줄타기 명인 권원태의 연속동작 감상 (5) | 2008.06.12 |
조선시대 궁중여인들의 헤어스타일 (6) | 2008.06.11 |
현충일을 앞둔 국립서울현충원(국립묘지)의 표정 (7) | 2008.06.05 |
제1회 한국·홍콩·마카오 미술교류전 (7) | 2008.05.24 |
여주세계생활도자관 둘러보기 (1) | 2008.05.20 |
여주도자기를 한 눈에 감상하기 (2) | 2008.05.19 |
추상적 디자인과 시(詩)를 새긴 도자기 (11) | 2008.05.18 |
여주군 도예명장 김영길의 작품세계 (14) | 2008.05.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