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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시 연수구 송도동 소재 인천도시역사관은 개항기 근대도시로 시작해 현재의 국제적인 도시로 발전한 인천이라는 도시의 역사와 변화 과정을 소개하는 전시관입니다. 인천은 1883년 개항 후 우리나라 최초의 계획도시로 시작하여 140년이 넘는 시간이 흐르는 동안 다양한 변화와 확장을 거쳐 지금은 전국 8대 광역시 중 가장 넓은 면적에 300만 인구의 무한한 잠재력을 가진 도시로 성장해 왔습니다.

인천지하철 1호선 센트럴파크역 3번 출구로 나오면 바로 좌측에 인천도시역사관이 있습니다. 1층 로비에는 신진자동차 트리오 전시회가 열리고 있군요. 신진자동차는 연간 6,000여 대의 생산능력을 갖춘 새나라자동차를 인수해 1966년 신진자동차공업(주)로 상호를 변경해 본격적으로 자동차를 생산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일본 미쓰비시 자동차 부품을 들여와 조립하다가 이후 도요타자동차와 협력을 맺어 다양한 자동차를 선보였습니다. 이후 신진자동차의 대표모델인 코로나, 크라운, 퍼블리카 자동차는 일본에서 부품을 들어와 조립하는 방식으로 생산했는데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며 한 시대를 풍미했습니다. 그런데 토요타가 한국에서 철수하면서 부품의 수급이 어려워져 이들 자동차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1층 상설전시관인 근대도시관으로 들어섭니다. 이곳은 인천이 개항한 1883년부터 구한말인 1906, 일제강점기인 1914년과 1936년, 그리고 해방을 맞이한 1945년까지 인천의 역사를 다루고 있습니다. 1883년 조선 정부는 인천도호부 서쪽의 작은 포구인 제물포를 개항했습니다. 이로 인해 몇 척의 어선만 드나들던 제물포 해안은 무역을 위해 입항하는 외국 기선의 정박지가 되었고, 상인과 부두노동자들이 모여들면서 개항장이 되었습니다.


조선정부는 출입국 사무와 개항장의 질서유지를 위해 인천항 감리서를 설치하고 서쪽해안을 각국의 조계지로 설정했습니다. 각국은 조계지에 도로와 관공서, 주거지를 나누어 기반시설을 설치했습니다. 조계지의 동쪽인 내동 중심에는 조선정부의 관공서와 은행, 객주 상점이 들어서 한적한 어촌마을인 제물포는 개항을 기점으로 근대도시로 변모해 갔습니다.


개항장의 중심이었던 제물포는 개항이후 부두 노동자와 상인이 무여들면서 인구가 급증했습니다. 조계지로 유입되는 외국인도 늘어났지만 조계 너머 삶의 터전을 마련한 조선인의 수도 해마다 증가했습니다. 개항 직전 20여 호에 불과하던 조선인가옥은 1897년 2,300호를 넘어섰으며 인구도 9천 명에 달했습니다. 이로 인해 행정구역도 내동, 외동, 정동, 답동, 용동 등으로 세분화되었습니다. 이 중 내동 일대는 감리사를 포함한 조선 정부의 관공서와 은행 및 상점이 몰려 명실상부한 개항장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조계(租界)는 개항장의 특정지역에 외국인 전용거주공간을 정해 당해 행정권을 그들에게 위임하는 제도를 말합니다. 조계를 관할하던 국가의 수에 따라 전관조계와 공동조계로 구분되는데, 인천에는 2곳의 전관조계(일본, 청국)와 1곳의 공동조계(일본, 청국, 영국, 미국, 독일)를 두었습니다. 조선인는 조계 내에서 거주는 물론 상업행위도 금지된 만면 외국인은 조영수교통상조약(조선과 영국간 1883년 체결)에 따라 조계로부터 10리 이내에서는 토지와 가옥을 소유할 수 있었습니다.








을사늑약이후 한국관청 인천부와 일본 관청 인천이사청이 공존하며 유지되던 이중적 행정체제는 한일한방 이후에도 계속되었습니다. 과도기를 거친 후 1914년 조선총독부는 전국을 13도(道), 지방을 12부(府) 220군(郡)으로 개편했습니다. 이에 따라 인천에도 인천부와 부평군이 생겼으며 개항장 조계제도를 폐지했습니다. 이로 인해 인천은 다문화적인 성격에서 왜색이 짙은 도시 진센(인천의 일본식 발음)으로 변해 갔습니다.





일본인 거주지를 중심으로 설치된 전기, 수도, 항만 등 기반시설과 일본인 자본가들에 의해 세워진 대규모 산업시설은 인천을 화려한 근대도시로 치장하는 선전도구가 되었습니다. 1915년 한일합방 5주년을 기념해 개최한 조선물산공진회의 별관에 인천수족관을 개관해 일본학생들에게 수학여행지로 인천을 추천하기도 했습니다. 도시의 발전은 극장, 해수욕장, 유유원지 등 인천부민을 위한 위락시설도 들어섰지만 이러한 혜택은 대부분 일본인들에게 돌아갔습니다.



인천우체국과 조선은행 인천지점, 외양풍 건물(서양의 건축양식을 모방한 목조건물로 외벽은 목조로 마감하고 지붕은 일본식 기와를 얹었으며, 1900년대 초까지 인천에 이런 형태의 건축물이 들어섰음), 인천공회당, 홍예문을 재현한 시설물도 있습니다.











중일전쟁이 벌어졌던 중국내륙까지 무기와 군수물자 수송에 있소 인천은 최적의 입지조건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인천은 철도와 항만을 통한 운송과 전기 및 공업용수의 공급이 편리했고, 풍부한 노동력을 갖고 있었습니다. 또한 인천에는 전쟁수행에 필요한 다양한 군수공장이 건설되고, 수원과 인천을 잇는 수인철도 개통으로 경기내륙에서 생산된 미곡이 군수미가 되어 인천항을 통해 중국과 동남아의 전쟁터로 운송되기 시작해 인천은 일본군의 병참기지가 되었습니다.









2층으로 오르면 상설전시관인 인천모형관입니다. 이곳에는 영종도와 강화도 및 인천시의 모형을 만들어 전시하고 있습니다. 인천은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점차 구역이 확대되었는데, 1989년 김포군 계양면과 옹진군 영종.용유면이 편입되었고, 1995년 전국적인 행정개편으로 김포군 검단면과 강화군.옹진군이 통합되면서 인천의 영역이 크게 확대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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