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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성룡 유물전시관 영모각 

 

 

 

안동 하회마을의 충효당은 임진왜란 때
징비록을 지은 서애 류성룡(1542-1607)의 종택으로 17세기에 지어졌으며
현재 보물 제414호로 지정된 문화재입니다.

 

벼슬을 마치고 낙향한 류성룡은 작은 초가집에서 임종을 맞았는데,
이 집은 그의 자손과 제자들이 그의 학덕을 추모하기 위해 지은 것입니다.

 

충효당 앞마당에는 1999년 이곳을 방문한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가
기념식수한 구상나무가 자라고 있군요.
외국의 국가원수로서는 부시 전 미국 대통령도 방문했답니다.

 충효당

 

충효당 현판

 

 

 

 


충효당 옆에는 서애 유물전시관인 영모각(별도로 소개)이 있습니다.
영모각의 현판은 고 박정희 대통령의 친필입니다.
전시관에는 류성룡의 생애와 그의 저술,
국왕으로부터 받은 교지, 그의 소품 등이 일목요연하게 잘 정리되어 있습니다.

 

 

 

 

 

 

 

 

 

 

 

 

 

 

 

 

 

 

 

 

 

 

 

 

 

 

 

 

 

 

 

 

 

 

 

 

 

 

 

 

 

 

징비록은 임진왜란 당시 전시 총사령관격인 영의정 겸 도체찰사였던 류성룡이
임진왜란 7년을 온몸으로 겪은 후 집필한 전란의 기록입니다.
지난해 방영되었던 KBS 대하드라마 징비록(50부작)에서 류성룡 역으로 열연한 
배우 김상중의 모습이 떠오르는군요.

 

 

 

 

서애 류성룡(1542-1607) 생애
 
류성룡(柳成龍)은 조선 중기의 문신, 인문학자, 의학자, 저술가이다. 본관은 풍산(豊山), 호는 서애(西厓),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경상도 의성(☞하회마을 홈페이지에는 마을에서 태어났다고 기술)의 외가에서 태어났다.

이황의 문하에서 후에 1590년 통신사로 갔던 김성일과 동문 수학하였으며 성리학에 정통하였다. 과거를 통해 관료로 등용되어 서인이 아닌 이산해와 같은 동인으로 활동하였다. 그러나 정여립의 난과 기축옥사를 계기로 강경파인 아계 이산해, 정인홍 등과 결별하고 남인을 형성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최고 지휘자인 도체찰사 직을 맡은 그는 이순신, 권율 같은 무명의 명장을 등용하고, 영의정으로 신분제와 조세 등 각종 불합리한 제도를 개혁하여 백성들에게 꿈을 심어줌으로써 암울했던 전황을 역전시키는 데 성공했다.

 

전쟁이 끝난 후 정인홍, 이이첨 등 북인의 상소로 인해 영의정에서 관직삭탈하게 된다. 안동으로 내려가 선조의 부름에도 올라가지 않고 임진왜란 때 겪은 후회와 교훈을 후세에 남기기 위해 《징비록》을 저술하였다. 이 책은 대한민국의 국보 제132호이다. 죽을 때까지 청렴하고 정직한 삶을 살았던 청백리이면서 <조선의 5대 명재상(名宰相)>가운데 한 사람으로 평가받기도 한다. (자료/워키백과, 다음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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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ennpe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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