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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감탱! 밥통에 밥이 남아서 일부러 안 했다. 그러니 전자렌지에 데워 잡솨!
냉장고 열면 일렬로 반찬 뒀다. 보면 알 것이고.
전자(가스)렌지에 찌개 2종류, 된장과 김치찌개니까 알아서 잡수셔.』


저녁에 귀가하면 기계적으로 컴퓨터부터 먼저 켜게 된 것도 블로그를 운영하고 난 이후의 습관입니다. 이날도 웃옷을 벗어 걸고는 컴퓨터로 가니 뜻밖에도 사인펜으로 쓴 메모가 보입니다. 바로 아내가 쓴 것입니다.

읽어보니 아내가 저녁에 목요예배가면서 밥을 챙겨 먹으라고 남긴 메모입니다. 그냥 보면 남편에 대한 존경심이라고 하나도 없는 이런 메모는 이제 익숙해 졌습니다. 금년 연말이면 어언 결혼 28주년을 맞이하기 때문이지요. 

아내는 결혼 초에는 존댓말과 반말을 번갈아 사용하더니 첫 아이를 낳은 후부터 완전히 "야~ 자~ 모드"로 변했습니다. 그리고 부산여자 티를 내는지 상냥한 맛은 전혀 없습니다. 부부싸움을 하드래도 결코 지는 법이 없습니다. 이런 성격 때문에 처음에는 심각하게 다툰 적도 있었지만 어느새 아이를 둘 낳은 후부터는 아내는 원래 그런 사람으로 인정하고 말투에 대해 더 이상 시비를 걸지 않기로 다짐했습니다.  

우리부부는 스킨십이 거의 없습니다. 나는 이를 선호하는 편이지만 아내는 평소 몸에 열이 많아서 남편이라도 가까이 접근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자식은 언제나 품에 안으려 하는데 역시 모성애는 다릅니다. 대학생인 아이에게까지 가슴을 만지게 놔두니 말입니다. 

우리 부부의 대화는 언제나 겉돕니다. 아내는 공식적으로 한번도 나를 사랑한다는 말을 한 적이 없습니다. 혼인서약을 할 때도 자기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고 우깁니다.

식탁에서 내가 수시로 묻습니다.
"당신, 나 사랑해?"
"뭐? 사랑? 그런 것은 젊었을 때나 하는 거지!"
"아니 그럼 사랑하지도 않는단 말이야?"
"이 나이에 무슨 사랑 타령이슈. 그냥 자식 낳고 정으로 사는 거지."

매사가 이런 식입니다.
그래도 여기서 물러설 내가 아닙니다.
"사실 당신 말은 그렇게 해도 실제로는 나를 죽도록 사랑하는 거지?"
이러면 아내는 약간 꼬리를 내립니다.
"당신하고 똑 같아!"

이럴 때 내가 먼저 사랑한다고 한 수 접을 수는 없는 일입니다.
"난, 당신 하나도 사랑하지 않아!"
"나도 마찬가지요. 김칫국 마시지 마슈!"
"아니 그럼 남편을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왜 도망가지도 않고 집에 붙어 있어?"
"여기가 내 집이고, 아이들도 있는데, 내가 왜 집을 나가? 집을 나가려면 당신이 나가욧!"

이러니 결국은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들어보지 못한 채 말싸움은 끝나고 맙니다. 함께 가끔 외출을 할 때도 아내는 자기와 나란히 걷지 말고 부부가 아닌 것처럼 거리를 두고 뒤따라  오라고 강짜를 부립니다. 나의 머리가 희끗희끗하기 때문에 남이 볼 때 본 부인이 아니라 두 번 째 부인으로 오해한다는 것입니다. 이럴 때 처음에는 기가 막혔지만 여러 번 듣고 보니 이제는 만성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경제력이 부족한 남편을 만나 지금까지 함께 살아준 아내에게 늘 고마운 마음뿐입니다. 생판 모르는 남녀가 서로 가정을 이루고 사는 것은 참으로 신기한 일입니다. 부부간의 미움은 칼로 물 베기라는 말이 있습니다. 부모와 자식간에는 1촌이지만 부부간에는 촌수가 전혀 없습니다. 헤어지면 남인 것입니다. 따라서 부부는 서로 상대에게 다소 못마땅한 점이 있더라도 그냥 이해하고 감싸주면서 알콩달콩하게 사는 것, 이것이 바로 가정의 평화를 유지하는 지름길입니다.  

                                             <다음 첫 화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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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ennpe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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