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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원극장과 철원역

 

철원노동당사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사요리 소재 철원역사문화공원은 1930년대 당시 경제적으로 번성했던 철원읍 시가지를 관람 및 체험할 수 있도록 축소판으로 재현한 것으로 옛 철원 시가지에 있던 건물들을 당시 사진을 토대로 똑같이 복원해 놓았습니다. 1930년대 철원군은 인구 8만 명 이상이 거주하였던 강원도 3대 도시였으며, 철원읍 시가지에는 철원군청, 철원경찰서, 철원극장, 철원역, 학교, 은행 등 근대적인 시설이 운영되었던 곳이었습니다. 철원역에서는 소이산으로 올라가는 모노레일을 탑승할 수 있습니다.

 

 

 

 

 

대형주차장에서 출입문 방면으로 가면 철원역사문화공원 관련 각종 안내문이 보입니다. 안으로 들어서면 종합안내소(입장료 무료)인데 여기서 안내 책자를 받아서 둘러보면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중앙거리를 따라 이동하면 양쪽으로 기념품이나 지역 특산물을 파는 문화상점, 복고다방 등이 옛 분위기를 물씬 풍깁니다. 근대 문화거리와 역사 전시체험관으로 나누어 관람 및 체험을 할 수 있습니다.

 

주차장

 

 

 

 

 

 

 

 

 

 

 

각종 시설마다 상세한 안내문(설명문)이 붙어 있어 당시의 상황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며 특히 내부를 관람할 수 있는 게 이점입니다. 철원양장점은 1920년-30년대 서울을 중심으로 형성된 서양식 패션의 영향이 철원에도 전해져 문을 열었습니다. 철원금융조합은 1914년 경원선 부설이후 철원군이 경제적으로 발전하면서 서립된 근대적 의미의 금융조합이었습니다.

철원양장점

 

 

 

철원금융조합

 

 

금융조합 내부

 

 

 

 

 

 

철원공립보통학교는 1899년 개교한 공립소학교가 1906년 공립보통학교로 명칭을 변경한 후 광복당시에는 24학급 2,600명의 학생을 자랑하는 대규모 근대교육의 중심지였습니다. 내부에는 머리가 희끗한 분들이 교실 의자에 앉아 담소를 나누며 추억에 젖은 모습입니다. 철원떡전거리장터는 이름이 참 생소하군요.

철원공립보통학교

 

 

보통학교 내부

 

 

 

 

 

 

 

 

강원도립철원의원은 1920년 철원제일교회의 설립과 함께 서양인이 주재소 선교사로 부임하면서 시작되어 1931년 개원된 의료기관입니다. 철원약국은 철원의원 개원을 계기로 근대적 의미의 서양식 약국이 운영되었을 것으로 여겨집니다. 철원극장은 1930년대 우리나라 최고문화예술인들의 공연장이자 북부지방 순회공연의 마지막 여정지였습니다. 철원극장 옆 오정포는 정오가 되면 포(砲)를 쏘아 시간을 알리다가 나중에는 사이렌을 울렸습니다. 이외에도 화재발생 또는 비행기 공습 등 위험을 알리는 신호로도 사용되었습니다.

강원도립철원의원

 

 

철원의원 내부

 

철원약국

 

 

철원극장과 오정포

 

오정포

 

 

 

 

 

 

근대기와집은 신흥부자들이 살았던 주택입니다. 철원에는 일본인들과 조선인 자본가들이 많이 살고 있었는데 현관과 함께 유리문을 사용하였으며 건너방과 사랑채가 복도로 연결되기도 했습니다. 초가집은 평범한 사람들의 주택으로 일반인들이 가장 많이 살았던 우리민족의 전통주택입니다. 초가집은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했습니다. 강원도지방에는 ㄱ자형태의 집이 많았습니다.

근대기와집

 

 

초가집

 

 

 

 

 

 

철원역은 경제발전의 원동력입니다. 철원역은 1912년 서울과 원산을 잇은 경원선 연천-철원간 개통으로 문을 열었으며, 1931년 금강산 전기철도의 개통과 함께 서울 용산에서 철원과 내금강까지 연결됨으로써 철원은 강원북부의 교통과 산업 및 물류의 중심지로 원주와 춘천과 함께 강원도 3대도시로 급성장했습니다. 현재 철원역에서는 소이산 정상까지 올라가는 모노레일(유료)을 운영하고 있는데, 소이산 정상을 오르는 동안 드넓은 철원평야를 감상할 수 있습니다.

 

 

 

철원역 내부 소이산 모노레일 매표소

 

운행중인 모모레일

 

 

 

 

 

관동여관은 일출여관과 함께 개화기 철원의 여관을 복원한 것입니다. 연간 관광객 수가 15만 여명에 달했던 금강산 전기철도의 환승역인 철원역은 금강산 관광을 위한 대표적인 역으로 철원을 방문하는 여행객들의 단골숙소가 필요했습니다. 철원소방조기구치장은 철원지방에 보급된 근대적 의미의 소방제도였습니다.

 

 

 

 

철원소방조기구치장 내부

 

 

 

 

 

철원우편국은 근대적 우편제도의 시작이었습니다. 구한말 1884년 우정총국 설치를 계기로 1897년 철원지역에도 금성우체사가 개국하였고 후일 1898년 철원으로 옮겨져 철원우체사가 되었으며 1907년 우편전신취급소로 확대개편된 후 1954년 철원우체국이 탄생했습니다.

 

 

 

 

 

 

 

 

철원독립운동거리는 철원 독립운동의 역사를 볼 수 있는 공간입니다. 철원은 강원도 제일의 항일독립운동 도시로 대한제국시기에는 보개산 줄기를 중심으로 연기우, 홍범도 장군 등이 의병을 이끌고 사생투쟁을 벌였으며, 3.1 만세운동이 벌어졌을 때는 한강 이북에서 가장 먼저 태극기를 들고 우리 산천이 감격하도록 만세를 외쳤습니다. 만세운동은 화천, 통천, 이천, 춘천등지로 번져나갔고, 그 항일정신은 광복을 맞이할 때까지 지속되었습니다.

 

 

 

 

 

 

 

 

 

 

애국선열추모비는 일제 강점기 강원도에서 최초로 가장 성대하게 거행되었던 3.1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한 철원군민과 철원출신 독립운동가들의 숭고한 넋을 기리기 위해 설립한 비입니다. 추모비의 서체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친필이며 비문은 노산 이은상이 지은 것으로 철원출신 모든 애국자들의 업적과 그들의 고귀한 애국정신을 기리는 비석입니다.

 

 

 

 

 

 

철원역사문화공원의 동쪽에는 철원노동당사가 있습니다. 철원군 철원읍 관전리 소재 노동당사 1946년에 완공된 건물로 6.25전쟁)이 일어나기 전까지 북한의 노동당사로 이용되었습니다. 이 건물은 6.25전쟁 때 큰 피해를 입어 건물 전체가 검게 그을리고 포탄과 총탄 자국이 촘촘하게 나있지만 이런 모습이 6.25전쟁과 한국의 분단현실을 떠올리게 해서 유명가수의 뮤직비디오 촬영지나 유명 음악회의 장소로 활용되기도 했습니다. 이곳은 철원군이 안보관광코스에 포함해 운영하고 있으며, 2001년 근대문화유산에 등록된 문화재입니다.

 

 

 

 

 

 

 

 

철원역사문화공원 주차장 입구에는 구 철원군 도로원표가 있는데 도로원표는 도로의 기점, 종점 또는 경과지를 표시하는 것으로 이의 위치는 도청, 시청, 군청 등 행정기관의 중심지, 교통의 요충지, 역사적.문화적 중심지로 정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이곳 도로원표에는 평강 16.8km, 원산 181.6km, 평양 215.1km, 이천 51.4km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만 너무 낡아 육안으로 식별이 어려운 실정입니다.

 

도로원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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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ennpe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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