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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1년 전만 해도 아내는 문자메시지를 볼 줄 만 알았지 보낼 줄은 몰랐다.

문자메시지 보내는 방법이 매우 쉽다고 하면서 내가 알려 주려고 해도
50대 중반인 아내는 골치 아프게 그걸 지금 배워서 뭐 하느냐고 반문하였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아들로부터 보내는 방법을 습득하고 난 후부터는
이젠 웬만한 용건은 문자로 처리한다.
양손으로 휴대폰을 잡고 문자를 보내는 모습을 보노라면
참으로 경천동지(驚天動地)할 일이다.
손가락 움직임이 마치 비호같다.

나는 아내의 문자메시지를 볼 때마다 미소를 짓는다.
휴대폰에 찍한 몇 마디의 메시지 속에 아내의 진솔한 모습이 반영(투영)되기 때문이다.
몇 개의 사례를 보자.


(1)
『탱감! 오늘 비바람 너무 쳐서 교회에서 오지말라고 연락왔다.
 요로콤 좋은 교회가 어딨냐』

아내는 매주 일요일(낮)과 목요일(저녁)은 교회를 나간다.
지난번 서울에서 약 200mm의 폭우가 내린 날,
교회에서 목요예배를 취소한 모양이었다.

퇴근할 경우 아내가 집에 없으면 허전하여 나는 목요예배 가는 것을 싫어한다.
이를 아는 아내가 자신이 집에 있음을 알리는 고마운 메시지이다.


(2)
『영감, 길동(가명)이 잔다. 저녁밥은 해놨는데
당신 밥은 콩을 다 걷어서 퍼났고, 감자국,
큰 후라이팬에 마파두부 해뒀다. 냉장고에 김치 내났고, 구운 김은 식탁에』 

목요예배를 가면서 남긴 메시지이다.
길동이는 잠자는 시간이 일정치 않은 아들 녀석인데 잠을 깨우지 말라는 신호이다.

평소 아내가 둔 반찬을 잘 찾지도 않고 그냥 눈에 보이는 것만
한두 가지 골라 식사를 하는 남편을 배려한 알림이다. 
  

(3)
『감탱, 청소하고 빨래하다보니까 시간이 좀 늦을 것 같아
12시 넘는다. 기다려잉』

오랜만에 아내와 함께 점심을 먹기 위해
낮 12시에 약속을 했는데 늦는다는 연락이다. 

 

(4)
『갈치조림 가스렌지에 있고 냉장고 문열면 김치와 콩장 등 보일거요.
식탁에는 우엉조림.  애들은 다 늦게 온데요.
기다리지 말고 식사하숑. 왕비로부터』

처음으로 받은 존댓말 문자메시지이다.
아내가 자칭 왕비라니 그럼 남편인 나는 자동적으로 왕이 되는 게다.
목요예배 가면서 애들을 기다리지 말고 저녁을 먹으라는 신호다. 


(5)
『감탱! 부엌냄비에 갈치조림, 식탁에 마늘쫑볶음이 있고
냉장고에 반찬그릇이 있으니 찾아서 길동이랑 같이 드시구랴.
여왕님은 교회간다』

지난번에는 왕비라고 하더니 이제는 여왕이란다.
자신의 호칭도 제멋대로다.

 

(6)
『비가 곧 올 듯 한데도 산에 가는 사람들이 꽤 되네.
오늘은 쉬시구랴. 밥은 해놨고 냉장고 열면 콩장 보인다.
김치 들어서 냄비에 순두부랑 드슈』

일요일이지만 비가 올 징조여서 산에 가지 않고 집에서 고민하고 있는 중이다.
교회 간다고 집을 나간 아내가 서울 양재역에서 보낸 메시지이다.

양재역은 청계산을 가는 사람들이 많은 장소이기에 이들을 보고하는 말이다.
이번 메시지는 아무런 호칭도 없는 게 특이하다.
 

(7)
『샘샘이구마. 건강하게 오래오래 돈벌이하면서 살자구잉』

지난 5월 21일 부부의 날을 맞이하여 나는 아내에게
다음과 같은 문제메시지를 보냈다.

『할멈/오늘이 부부의 날이라고 하는구려/사랑하오
/당신도 날 사랑하지? 하늘』

아내가 나를 영감이라고 부르니
나도 아내에게 자연스럽게 할멈이라는 말이 나온다.

맨 마지막의 "하늘"이라는 말은
"남편은 하늘이고, 부인은 땅이다"라는 생각에서 따온 내 스스로의 호칭이다.  

이에 대한 답장이 바로 위 메시지이다.
샘샘이라는 말은 영어의 [same]을 경상도 식으로 강조하면서 반복 표현한 말이다.

지금까지 한번도 아내로부터 먼저 나를 사랑한다는 말을 들어 본적이 없다.
그렇지만 나와 생각이 같다니 엎드려 절 받았다.       

 

지금까지 아내의 문자메시지 몇 개를 살펴보았다.
이런 시시콜콜한 이야기가 다음 뷰로 올릴 만한 뉴스거리가 되는 지 모르겠지만
이처럼 기상천외한 문자를 주고받으며
사는 부부가 있다는 것 자체가 뉴스라면 뉴스이다.

위 아내의 문자는 문법과 어법에는 맞지 않지만
전달하려는 뜻은 전부 표현되었다.
또한 남편에 대한 호칭은 제각각이다.
영감탱이, 감탱, 영감, 탱감 등 아내 마음대로 부른다.

행여나 이 글을 보고 아내가 우리 글의 문법도 모르는 무식한 사람이라고
매도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내는 경상도여성이니 사투리가 심하다.
더욱이 문자메시지는 약칭을 많이 사용한다.

나는 아내가 남편을 무슨 호칭으로 부르든 상관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호칭 문제로 티격태격하기에는 하루해와 인생이 너무 짧은 탓이다.  


                                                               [ 다음 메인에 게재된 글입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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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ennpe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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