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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의 중심부에 자리잡은 자유공원은 우리나라 최초의 서구식공원으로서 인천시민의 휴식처이자 인천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방문하고 싶은 공원이다. 이 공원에는 6.25전쟁 당시 인천상륙작전을 지휘한 맥아더 장군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이 동상은 자유공원을 상징하는 기념물이다.

                                                     맥아더 장군 동상
 

 


맥아더는 제1-2차 세계대전에 참가하여 1945년 일본을 항복시킨 후 일본점령군 최고사령관이 되었다. 1950년 6·25전쟁이 일어나자 국제연합군(UN군) 최고사령관으로 부임하여 인천상륙작전을 지휘, 전세를 역전시켜 적을 한만국경까지 몰아내는 데 성공하였다.

그러나 중국군의 개입으로 다시 후퇴를 하게 되자 그는 만주폭격과 중국연안봉쇄, 대만의 국부군(國府軍)의 사용 등을 주장하였고, 이로 인해 트루먼 대통령과의 대립으로 1951년 4월 사령관의 지위에서 해임되었다.

귀국 후에는 레밍턴 랜드 사장으로 취임하였고, 정치적으로는 공화당 보수파(保守派)에 속하여 공화당의 대통령후보로 지명된 적도 있다. "노병(老兵)은 죽지 않고, 사라질 뿐이다"라는 명언을 남겼다. (자료 : 두산백과사전)     
 

                                                     맥아더 장군
 

2005년 노무현 정부시절 맥아더 동상철거 논란이 있었다. 그 당시 집권층 주변인물들은 미국과 맥아더가 없었더라면 분단이 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김정일의 그릇된 통일논리에 물들었고, 이들 친북좌파단체들은 정권에 영향력을 행사하여 이런 일이 벌어졌다고 한다.

그 당시 미국을 방문한 노무현대통령이 뉴욕에서 한 발언 중 "맥아더 동상에 대하여 좋은 것은 좋은 대로 나쁜 것은 나쁜 역사로 알아두자"라는 모호한 발언을 하자 미국 조야(朝野)는 극심한 반발을 하였다고 한다.(자료 : 네이버 지식에서 일부 인용)   

동상이 서 있는 진입로는 양쪽의 화단에는 기와를 얹은 담이 조성되어 있어 서구식 정원에 한국식 멋을 가미한 흔적이 보인다. 동상 옆에는 인천시민헌장비, 통일목 표석과 향나무, 서구식공원표지석이 놓여 있다.




인천시민헌장비  

통일목 향나무 

 


공원광장에는 붉은 유니폼을 입은 사람들이 확성기소리에 따라 체조를 하고 이고 그 주변으로 사람들이 삼삼오오로 모여 앉아 오후의 한 때를 즐기고 있다.



 


차이나타운으로 이어지는 거리에는 연오정(然吾亭)과 한미수교 100주년(1982)을 기념하는 헌수비가 보인다. 이곳은 벚꽃길이라 봄에 찾으면 더욱 좋을 듯 하다. 차이나타운과 자유공원을 연계하여 둘러보면 매우 뜻 깊은 나들이가 될 것이다.(2009. 8. 1)

연오정 

 헌수비 

 자유공원 밪꽃길  

 

인천 자유공원

인천 앞바다와 인천항, 인천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인천광역시 중구소재 응봉산의 6만 4,480㎡ 면적에 조성된 우리나라 최초의 서구식 공원이다. 1883년 인천의 개항과 함께 응봉산 일대에 일본·청나라를 비롯한 미국·영국·러시아 등 여러 나라들이 어울려 형성한 '만국지계'가 들어서게 되자, 1888년 11월 이들에 의해 만국공원이 공동명의로 조성되었다.

그러나 일본 세력의 확장으로 각국 거류지가 철폐되고 공원 관리권이 1914년 인천부로 이관되어 서공원이라 불렸다. 그 후 인천상륙작전을 지휘한 맥아더 장군의 동상이 1957년 세워지면서 자유공원으로 개칭되었다.

인천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자유공원은 민족상잔의 뼈아픈 기억을 되살리며, 인천시민의 안식처로 각광을 받고 있다. 공원 정상의 맥아더 동상과 한미수교 100주년 기념탑을 비롯해 자연보호헌장탑, 충혼탑, 자유의 여신상, 연오정, 석정루 등이 세워져 있으며, 학익동 언덕에 묻혀 있던 선사시대의 유물인 지석묘를 옮겨놓았다. 그밖에 1,000여 점의 유물을 소장하고 있는 인천시립박물관과 교육청·측후소 등의 문화기관이 들어서 있다. 각종 시민을 위한 행사도 열리고 있다. (자료 : 다음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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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ennpe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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