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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과 원경왕후가 잠든 쌍릉인 헌릉 


 

서울 서초구 내곡동(헌인릉길) 소재 세계문화유산 <헌릉>은
조선왕조 제3대 태종과 원경왕후의 능이며,
<인릉>은 제23대 순조와 순원왕후의 능입니다.

도로(헌인릉길)변에서 화훼농가가 줄지어선 도로를 따라 들어가면
좌측에 반듯한 한옥건물이 보이는데
헌릉인릉 봉향회(奉香會)라는 현판이 붙어 있습니다.

 헌인릉 봉향회


 

매표소를 들어서면 먼저 <인릉>입니다.
홍살문을 통해서 바라보는 정자각과 비각의 모습이 여느 능과 같습니다.

그렇지만 신록이 우거진 계절에 보니 담쟁이덩굴이
감겨 올라간 나무가 마치 원시림을 방불케 합니다.
또한 새하얀 산딸나무와 불두화 꽃도 왕릉을 더욱 돋보이게 합니다.  

 매표소


 


 

 홍살문

 정자각과 비각

 정자각

 울창한 나무숲

 산딸나무

 불두화
 


또 하나는 능침공간을 관람할 수 있는 계단을
오른쪽에 조성해 둔 게 이채롭습니다.

막상 올라가 보니 곡장 안으로 진입하는 대신
관람대에 서서 바라보기만 해야하므로 문무인석을 포함한
각종 석물과 능을 가까이서 볼 수는 없지만
그래도 문화재보호를 이유로 관람을 제한하는 것과 비교하면 천양지차가 납니다.

 능침공간 관람로

 관람로에서 뒤돌라본 정자각

 능침공간
 


<헌릉>은 인릉의 우측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조선 태종 이방원은 태조 이성계의 5남으로서
이성계를 도와 조선을 건국하는데 큰공을 세웠습니다.

제1-2차 왕자의 난을 치르고 왕위에 오른 태종(재위기간 1400-1418)은
3남인 충녕대군(세종)에게 왕위를 물려주었습니다.

 원시림 같은 나무



그런데 왕세자로 책봉된 맏아들 양녕대군은

왕도의 수업에는 관심 없이 서도와 주색잡기에만 열중해 태종을 애태우게 하자
결국 태종은 양녕을 세자에서 폐하고 충녕을 세자로 삼았다고 하는군요.
최근 복원한 숭례문의 현판이 양녕대군의 글씨임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태종은 글쓴이의 선대조상이기도 합니다.
우리 집은 전주이씨 양녕대군파의 후손이거든요.
한 시대를 풍미했던 태종은 600년이 지난 지금
비록 육신은 한줌의 흙으로 변했지만 그 이름은 역사 속에 남아 있습니다.

 홍살문

 정자각과 비각

 

헌릉도 인릉과 마찬가지로 능침공간으로 오르는 계단이 조성되어 있는데,
인릉보다는 관람대가 가까워 능과 석물을
더욱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이점이 있습니다.

 능침관람계단

 잔디 깎는 모습

 능과 석물  



헌릉과 인릉의 능침공간에 관람대를 설치해 개방한 것은 왕릉을 찾아

능침공간을 보려는 관람객들을 배려한 매우 모범적인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능침공간 관람을 제한하는 다른 왕릉에서도 이를 벤치마킹하면 좋겠습니다.
(2013. 5. 30) 

                                                          자료 : 헌인릉 홈페이지 (http://heonin.cha.go.kr/n_heonin/index.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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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ennpe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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