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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흔히 낚시꾼의 대명사로만 알고 있는 강태공(姜太公)! 그의 본명은 강여상(姜呂尙)입니다. 그는 자기를 알아주는 제후를 만나지 못하고 몇 십 년 동안 방랑생활로 세월을 보내다가 팔순가까이 되어서 주나라 도성근방의 큰바위에서 낚시를 하면서 때를 기다렸는데요. 마침 인재를 구하려는 주나라 문왕의 초빙으로 재상이 되었고, 산동성의 치박시(市) 동쪽 땅을 받아 제(齊)나라를 세웠습니다. 제나라는 춘추시대 환공 때에 관중이라는 걸출한 인물이 등장하여 부강한 나라로 발전하게 되지요. 

우리는 강태공을 흔히 "낚시꾼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라고 알고 있지만 그를 단순히 낚시를 즐기는 인물로 묘사하는 것은 오류입니다. 강태공은 모든 공직을 은퇴하고 노후를 편하게 보내기 위해 낚시를 즐긴 게 아니라 낚시를 하면서 때를 기다렸고, 결국 주나라 문왕의 눈에 들어 재상이 되었기 때문이지요.

강태공이 제나라를 세운 중국 산동성 치박시를 찾아 강태공 사당을 방문했습니다. 치박시는 산동성의 성도(省都)인 제남에서 동쪽으로 약 100여km 거리에 위치한 소도시입니다. 강태공 사당은 강태공 기념관과 나란히 있는데 기념관은 보수 중이어서 사당만 둘러봅니다.  

 강태공 기념관


 기념관 및 사당 입구


사당 안으로 들어서니 비석과 묘지가 반겨줍니다. 비석에 새겨진 글씨 중 강태공사묘(姜太公祠墓) 밖에는 읽을 수가 없네요. 비석 뒤 큰 무덤에는 "강태공의관총"이라는 표석이 놓여 있습니다.

 강태공 묘소

                                          강태공 묘비

 강태공 의관총


묘지 옆에 강태공 사당이 있습니다. 강태공사(姜太公祠)라나 현판이 걸려 있어 헷갈릴 염려는 없네요. 흰 수염을 휘날리는 분이 바로 강태공입니다. 강태공 죄우에는 제나라 환공의 상(像)과 광중 상도 모셔져 있습니다. 

 강태공 사당

 사당의 현판


                                         강태공 상

                                                 제 환공 상

                                                  관중 상

이웃 건물은 구조전(丘祖殿)입니다. 구목공은 강태공의 아들인데 세계구씨의 대시조라고 합니다. 우리나라 평해구씨 대종친회에서 추모비를 건립하고 주춧돌을 놓아두었네요. 또 각종 자료 전시관에는 노태우 전 대통령의 친필휘호도 걸려 있습니다. 세계는 정말 매우 좁습니다. 한국 사람의 발자취라고는 전혀 없을 것 같은 이곳에 벌써 전직 대통령과 구씨 종친회에서 다녀갔으니 말입니다. 

 구조전 비석

 구조전


 구조전 현판


 

강태공(姜太公)은 누구인가?

본명 강상(姜尙)이다. 그의 선조가 여(呂)나라에 봉하여졌으므로 여상(呂尙)이라 불렸고, 태공망이라고 불렀지만 강태공이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주나라 문왕(文王)의 초빙을 받아 그의 스승이 되었고, 무왕(武王)을 도와 상(商)나라 주왕(紂王)을 멸망시켜 천하를 평정하였으며, 그 공으로 제(齊)나라 제후에 봉해져 그 시조가 되었다.

강태공은 동해(東海)에서 사는 가난한 사람이었고, 집안을 돌보지 않아 그의 아내가 집을 나갔다고 전한다. 하루는 웨이수이강[渭水]에서 낚시를 하고 있는데, 인재를 찾아 떠돌던 주나라 서백(주나라 문왕이 됨)을 만났다. 서백은 노인의 범상치 않는 모습을 보고 그와 문답을 통해 인물됨을 알아보고 주나라 재상으로 등용하였다고 전해진다. 그를 태공망이라고 불렀는데 이는 주나라 무왕의 아버지인 태공(太公)이 바랬던(望)인물이었기에 그렇게 불렀다고 전해진다.

강태공 대한 전기는 대부분이 전설적이지만, 전국시대부터 경제적 수완과 병법가(兵法家)로서의 그의 재주가 회자되기도 하였다. 병서(兵書) 《육도》(6권)는 그의 저서라 하며, 뒷날 그의 고사를 바탕으로 하여 한가하게 낚시하는 사람을 강태공 혹은 태공이라 하는 속어가 생겼다. (자료 : 두산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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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ennpe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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