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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서산시 용현리 소재 마애여래삼존상(磨崖如來三尊像, 국보 제84호, 서산9경 중 제2경)은 바위에 새겨진 삼존상으로 "백제의 미소"라고 불릴 정도로 아름답습니다. 석불은 10m가 넘는 거대한 암벽의 동면을 깎아 만들었는데, 석불의 높이는 중앙의 본존상 280㎝, 왼쪽 미륵보살입상 170㎝, 오른쪽 반가사유상 166㎝입니다. 7세기 초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백제뿐만 아니라 한국을 대표하는 마애삼존불로 조각 솜씨가 뛰어나면서 구도 측면에서 독특한 불상입니다.

 

 

 

 

 

삼존상은 618번 지방도로(봉운로)가 지나는 용현교에서 용현계곡의 마애삼존불길을 따라 남쪽으로 조금 가면 만날 수 있는데 상가인 용현집에서 좌측의 목조다리를 건너 약 200m를 더 가야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마애불까지의 오르막이 만만치 않아 노약자는 보호자의 안내가 필요할 것입니다.

삼존상 입구 상가

 

 

 

용현집에서 삼존상 가는 다리

 

 

 

마애불 가는 길

 

뒤돌아본 오르막

 

 

 

 

일단 위로 오르면 만나는 반듯한 기와집은 마애불 관리사무소인데 전 문화재청장 유홍준 교수가 서산에서 외국인도 꼭 봐야할 5곳의 명소에 서산마애불도 포함시키고 있습니다. 마애불을 보려면 불이문을 통과하면 됩니다. 불이문(不二門)은 사찰로 들어가는 3문(三門) 중 절의 본전에 이르는 마지막 문을 지칭하는 용어입니다. “불이”는 진리 그 자체를 달리 표현한 말로서 진리는 둘이 아님을 뜻합니다. 불이문을 지나 다시 돌계단을 오르면 드디어 국보 마애여래삼존상을 친견하게 됩니다.

관리사무소

 

 

유홍준 청장의 답사1번지

 

 

 

불이문

 

 

뒤돌아본 불이문

 

불상 아래 계단

 

 

 

 

 

삼존상이 1,400년의 세월동안 온전하게 남아 있는 것은 위쪽에 모자의 창 같은 큰 바위가 불쑥 튀어 나와 있고 마애불이 새겨진 돌이 거의 80도로 기울어져 있어 비바람을 정면으로 맞지 않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마애불의 방향도 경주 불국사 석굴암과 같은 동동남 30도로 일조량을 가장 폭 넓게 받아들일 수 있는 방향입니다. 문화재청장을 지낸 유홍준 교수는 마애여래삼존상이 미술사적으로 크게 주목을 받는 두 가지 이유는 삼존불형식이면서도 곁보살(협시보살)이 독특하게 배치된 점이며, 다른 하나는 신비한 미소의 표현이라고 지적했습니다.(자료/유홍준 저 나의 문화유산 답사가 3권 p.17)

 

 

 

 

 

 

30년 이상 이 삼존상을 관리해온 정장옥은 방문자들에게 불상의 미소를 설명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마애삼존불의 미소는 조석으로 다르고 계절에 따라 다르게 나타납니다. 아침에 보이는 미소는 밝은 가운데 평화로운 미소고, 저녁에 보이는 미소는 은은한 가운데 자비로운 미소입니다. 계절 중으로는 가을날의 미소가 가장 아름답습니다. (중략) 그래서 일 년 중 가장 아름다운 미소는 가을해가 서산을 넘어간 어둔녘에 보이는 잔잔한 모습입니다."(자료/ 유홍준 전게서 pp.27-28)

 

 

 

 

 

 

이 불상은 1959년 발견되었으니 역사적으로도 굉장히 오래도록 전문가의 눈에 띄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곳 골짜기의 바위(印岩)에 마애불이 있음을 인근 주민들은 알고 있었지만 문화재 관계자들은 모르고 있었는데 부여박물관장을 지낸 홍사준(洪思俊 1905-1980) 선생이 보원사지 유물조사 온 길에 마애불의 존재를 알고는 국보고적보존위원회에 보고함에 따라 관계전문가로 구성된 조사단이 이를 백제시대의 불상으로 확인한 것입니다.

 

 

 

 

 

 

홍사준 선생은 보원사지를 조사하러 올 때마다 마을사람들이나 나무꾼에게 산에서 부처님 새긴 것이나 석탑 무너진 것을 본 일이 있느냐고 묻곤 했었는데 어느 날 이곳 골짜기에서 만난 나이 많은 나무꾼의 이야기가 결정적인 단서가 되었답니다.

“부처님이나 탑 같은 것은 목 봤지만유, 저 인바위에 가면 환하게 웃는 산신령님이 한분 새겨져 있는디유, 양 옆에 본마누라와 작은 마누라도 있시유. 그런데 작은 마누라가 의자에 다리꼬고 앉아서 손가락으로 볼따구를 찌르고 슬슬 웃으면서 용용 죽겠지하고 놀리니까 본마누라가 장돌을 쥐고 집어 던질 채비를 하고 있시유.”(자료/ 유홍준 전게서 pp.16-19)

 

 

 

 

 

 

 

 

전문가들은 삼존상이 중국 교역로의 중심지였던 태안반도와 백제의 수도인 부여로 가는 길목에 위치하고 있어 중국과의 접촉이 빈번했던 지리적 요충지에 만들었던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여기서 남쪽으로 불과 1.4km 지점에 백제시대의 큰 절터인 보원사지(부지 약 3만 평)가 있는 것도 결코 우연은 아닐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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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ennpe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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