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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의전 전경

 

정전인 숭의전

 

 

 

 

 

조선시대의 사극을 시청한 이들은 극중에서 종묘사직(宗廟社稷)이라는 말을 들어보았을 것입니다. 종묘사직은 왕실과 나라를 통틀어 이르는 말입니다. 종묘(宗廟)는 왕실조상의 신주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던 곳이며, 사직(社稷)은 토지의 신과 곡식의 신에게 제사를 지내던 제단을 말합니다.

 

조선시대 역대 왕의 위패를 모신 사당인 종묘(宗廟)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 있으며 서울도심의 5대궁궐과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어 이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반면 고려왕조에도 이와 유사한 사당인 숭의전(崇義殿)이 있는데 경기도 연천군 아미리 임진강변의 외진 곳에 자리 잡고 있어 이를 아는 이는 별로 많지 않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숭의전(崇義殿, 사적 제223호)은 조선시대에 고려 태조와 8왕(후일 4왕으로 축소)의 신위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던 사당입니다. 조선 태조 때인 1397년 귀의군 왕우에게 이 지역의 봉토를 주면서 고려 태조의 묘를 세우도록 했습니다. 정종 때인 1399년 숭의전 건물을 짓고 고려 태조를 포함한 8왕(태조·혜종·성종·현종·문종·원종·충렬왕·공민왕)의 제사를 받들도록 했으나 세종 때인 1425년 조선의 종묘에는 5실(五室)을 제사하는데 고려의 8위는 부당하다 하여 태조·현종·문종·원종 4위만을 받들도록 했습니다.

 

 

 

 

 

 

 

1451년 문종은 고려 현종의 후손이 공주에 사는 것을 찾아내 그에게 순례란 이름을 지어주고 3품관직과 토지·노비를 지급하여 제사를 받들도록 하고 숭의전이라 명명했습니다. 당시에는 정전·후신청·전사청·남문·수복사 등이 있었으나 6·25전쟁 때 모두 소실되었으며, 1973년 왕씨 후손이 정전을 복구했습니다. 현재 재건된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3칸 규모의 숭의전을 비롯하여 배신청, 이안청, 전사청 등 5동의 부속건물과 내신문, 외신문, 협문 3동, 운조문 등 6개의 문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숭의전 정문입구에는 어수정(御水井)이라는 약수터가 있고 신성한 곳임을 나타내는 홍살문이 보입니다. 한 구비를 돌아가면 임진강변의 잠두봉 자락에 숭의전이 나타납니다. 이곳은 원래 고려 태조 왕건(王建)의 원찰이었던 앙암사[仰巖寺]가 있었던 자리인데 여기에 사당을 건립했습니다. 경내에는 숭의전과 관련된 각종 자료들을 현황판처럼 제작해 가지런히 세워놓아 매우 유용한 참고자료가 됩니다.

숭의전 입구

 

약수터인 어수정

 

홍살문

 

 

 

 

 

 

 

 

 

 

 

맨 좌측에 보이는 건축물은 앙암재(仰巖齋)인데 이는 봄·가을 제례 때 입는 각종 의복과 관물 등을 보관하는 장소입니다. 우측 건축물 전사청(典祀廳)은 제례를 지낼 때 제기를 보관하는 장소입니다. 그 안쪽의 반듯한 건축물은 정전인 숭의전입니다. 이곳에는 4왕의 위패를 모시고 있습니다.  

앙암재 출입문

 

앙암재

 

 

전사청 출입문

 

전사청

 

 

숭의전

 

 

 

 

 

 

 

 

그런데 정전을 비롯한 모든 건축물의 문이 잠겨 있어 내부를 볼 수 없었습니다. 현지 관리인에 의하면 매년 봄(음력 3월 3일)과 가을(음력 9월 9일) 두 차례 대제를 지내는데 오늘이 하필이면 춘계대제일 하루 전이어서 내부에 제례준비를 해 놓았기 때문에 내부 개방이 불가능하다고 말했습니다. 다행히 필자는 2008년 이곳을 방문한 적이 있어 당시 찍은 사진을 참고로 게재합니다.

2025. 4. 7 춘계대제 모습(자료/연천뉴스 )

 

 

숭의전 내부(고려 태조 영정과 위패- 2008년 촬영)

 

 

숭의전 삼문

 

 

 

 

 

숭의전 우측의 배신청(陪臣廳)에는 복지겸, 홍유, 신숭겸, 유금필, 배현경, 서희, 강감찬, 윤관, 김부식, 김취려, 조충, 김방경, 안우, 이방실, 김득배, 정몽주와 같은 고려조의 충신 16명을 배향하였습니다.

배신청

 

배신청 내부(고려공신 16인의 위패, 2008년 촬영)

 

 

 

 

 

 

이웃한 이안청(移安廳)은 정전이나 배신청을 수리할 때 위패를 잠시 보관해 곳으로, 벽면에는 임진강변 잠두봉 벼랑바위에 새겨진 암각화 사진과 글씨가 붙어 있습니다. 임진강 건너 쪽에서 이곳을 보았을 때 산세가 마치 누워있는 누에의 머리 같이 생겼다고 하여 잠두봉이라고 불리게 되었다는군요. 이 시는 1789년(정조 13년) 마전군수였던 한문홍(韓文洪)이 숭의전의 수리를 마치고 옛 왕조의 영화와 쇠락 속에 담긴 무상함을 시를 지어 강변 절벽에 새겨 둔 것입니다.

이안청

 

잠두봉 암각화

 

 

 

 

 

밖으로 나오니 수령 650년이 지난 보호수 느티나무 두 그루가 숭의전의 역사를 기억하는 듯합니다. 이 나무가 철따라 웅웅 소리를 내며 울면 비나 눈이 많이 오고, 이 나무에 까치가 모여들면 마을에 경사가 나며, 까마귀가 모여들면 초상이 난다고 합니다.

 

 

 

 

 

 

 

 

 

또 느티나무 밑에는 시인 전윤호가 지은 숭의전 관련 시가 있어 여기에 옮겨 적습니다.

숭의전 (글 전윤호)

 

왕들은 죽어서 어디로 가나

고려에서 조선을 지나

아직도 입시 중인 신하들

 

나라는 사라져 어디에 있나

개성은 길이 막히고

잠두봉 아래 임진강만 흐르는데

 

대문 앞 오백 살 먹은 느티나무

아직도 희망이 남아

솔부엉이 부부 새끼 둘 품었다

 

부엉부엉 연천 하늘을 날아

철조망을 넘고 시간을 건너

비단 배 넘치는 벽란도로 가려나

 

왕들은 죽어서 어디로 가나

 

 

 

 

 

임진강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고려왕조를 멸망시킨 조선왕조에서 고려왕조의 위패를 모신 사당을 세운 것은 두 가지 이유가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는 이곳에 있던 앙암사는 고려 태조 왕건이 자주 들러 기도를 드리던 사찰이었기에 종묘(사당)를 여기에 둠으로서 고려왕조를 예우한다는 명분을 세웠으며, 다른 하나는 전조(고려왕조)의 상징인 사당을 개경 밖으로 둠으로서 민심의 동요를 예방하려는 목적이었습니다. 배신청에 16공신을 배향한 것은 고려조의 충신들을 아우르려는 의도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특히 조선 태종(이방원)이 죽인 고려의 충신 정몽주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는 사실은 놀라울 따름입니다.

 

 

 

 

 

숭의전은 연천9경 중 제8경에 선정된 명소입니다. 참고로 연천9경은 1) 재인폭포,   2) 호로고루성,   3) 임진강 주상절리,   4) 연천전곡리 유적,   5) 태풍전망대,   6) 전곡선사박물관,   7) 연천그리팅맨,   8) 숭의전,   9) 차탄천 주상절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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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ennpe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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