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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년 전 세느강 유람선에서 방뇨를 해?


문화와 예술의 도시라는 파리의 중심가를 유유히 흐르는 세느강은 파리의 시민들로부터 오래도록 사랑을 받아 온 강으로, 비록 외국인이라고 할지라도 그 이름만 들으면 괜히 낭만적이 되는 그런 강입니다. 그러나 글쓴이가 오래 전 처음 파리를 방문하여 느낀 첫 인상은 세느강은 한강에 비하여 강폭이 너무 좁다는 것이었습니다. 강둑에 서면 맞은 편 사람과 대화가 가능할 정도로 가까워 보였습니다. 세느강과 비교하면 우리의 한강은 바다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크기를 제외하고는 세느강은 모든 면에서 한강을 압도합니다. 세느강을 가로지르는 미라보 다리를 비롯한 교량은 예술작품이고(물론 다리가 짧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임), 강변에는 숲과 루브르 박물관 및 에펠탑 등 유명 건축물이 즐비하며, 강둑에는 각종 예술품이 전시되어 있어 걷고 싶은 거리를 형성합니다. 약 18년 전의 상황이라 지금은 어떻게 변모되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때는 1991년 여름, 글쓴이는 가족과 함께 파리를 여행 중이었습니다. 파리근교의 캠핑장에 여장을 푼 다음 3일간 사용할 수 있는 교통카드를 구입하여 시내관광에 나섰습니다. 세느강 유람선을 타는 일을 빠뜨릴 수는 없는 일이지요.

              출처 : 능서초등학교 36회동문회(http://cafe.daum.net/neungseo36)



유람선에 올랐더니 이외로 관광객이 적습니다. 이런 현상은 한 여름이 되면 파리의 사람들은 남쪽의 지중해로 피서를 떠나 파리에는 외래방문객 뿐이기 때문이랍니다. 그러니 유람선에 승객이 적은 것입니다. 유람선은 2층 구조인데 나는 가족과 함께 2층의 갑판 위로 올라갔습니다. 필름 카메라로 열심히 주변풍경을 렌즈에 담았습니다.


2층은 반 정도는 차일이 쳐진 가운데 의자가 놓여 있었지만, 반 정도는 그냥 노천이었습니다. 그런데 사위가 어두워지더니 갑자기 시원한 소나기가 힘차게 내리기 시작합니다. 갑판 위에 소나기가 떨어지는 소리가 천지를 진동하는 듯 요란합니다.


이때 별안간 소변이 마려웠습니다. 화장실은 아래층에 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애국심"이 발동했습니다. 88서울올림픽을 계기로 개최된 한국과 프랑스간 정상회담에서 그들이 약탈해간 우리의 귀중한 문화재인 외규장각 장서를 되돌려주기로 약속했음에도 불구하고, 담당직원이 반출을 거부한다는 해괴한 논리를 내세워 반환을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이 기억이 정확한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음).  

 출처 : 위와 같음

나는 이를 복수하고 싶었습니다. 혈기가 왕성할 때입니다. 그래서 차양이 쳐진 끝으로 가 바지의 지퍼를 내리고 갑판 한 가운데 서서 힘주어 소변을 보았습니다. 나의 소변줄기는 소나기의 힘찬 소음에 밀려 "새발의 피"에 불과했지만 갑판 위 빗물에 흘러가는 소변의 거품을 보면서 나는 마음속으로 부르짖었습니다.
"엿 먹어라! 이 약탈자들아!"


돌이켜보면 이런 행위는 정말 형편없는 오기였지만 지금도 그 일을 생각하면 쓴웃음이 나옵니다. 물론 내가 이런 오기를 부린 것은 갑판 위에는 아내와 단 둘 뿐이어서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었고(이 순간 아이 둘은 1층으로 내려갔음), 소나기로 인하여 주위가 어두웠으며, 소변소리가 빗소리에 묻혔기 때문입니다. 아내는 나에게 무엇을 하느냐고 물었지만 나는 그냥 다리가 아파 좀 서 있겠다고 둘러대었습니다.
 

아마도 세느강 유람선을 타면서 유람선 갑판 위에 오줌을 눈 사람은 대한민국국민 중에 내가 유일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이는 문화국민으로서 있을 수 없는 일이기에 입에 담기는 좀 거시기하지만, 프랑스의 만행에 복수하고 싶은 알량한 마음에 저지른 돌출행동이었으며, 18년이 지난 지금 처음으로 털어놓는 엽기적인 파리 여행담입니다.


끝으로 노파심에서 말씀드리지만 독자여러분도 야만적인 행동을 한 글쓴이를 너무 나무라지 말기 바랍니다. 아래층으로 소변 보러가기 싫어서 그랬다고 손가락질하여도 나는 변명하지  않겠습니다. 아무도 나의 행위를 목격한 사람이 없었기에 행여나 유람선 회사측에서 항의가 오면 이미 18년 전 일로 기억이 없으며, 나는 그런 적이 없었다고 오리발을 내밀 작정입니다. 

 

외규장각 도서의 약탈과정(병인양요)


외규장각 도서의 불법 약탈과정은 1866년(병인년) 당시 조선의 국법을 무시한 채 전도생활을 하던 프랑스 신부를 처형한 것에 대한 보복으로 프랑스 극동함대사령관인 로즈제독이 강화도를 무력 점령하고 양민을 학살하고 조선의 국립문서고이었던 외규장각을 불태워 5,000여 권 이상의 책이 소실되었고, 의궤를 비롯한 340여 책의 국가문서를 약탈하는 불법을 자행했으며 비상시 사용하려던 은궤 수천 량을 약탈해갔다.

후에 프랑스는 이들 조선의 문서와 책들을 국가재산으로 편입해 버리는 2차 불법을 자행하고 만 것이다. 또한 프랑스는 원산국 학자들의 학술적 연구목적으로의 접근까지 막아버리고 말았다. 프랑스 소장본은 174종 297건으로 이중 31종은 우리나라에도 없는 유일 본으로 파악되고 있다. (자료 : 다음카페 "오천 년의 향기"http://cafe.daum.net/dhcjssus)


 

외규장각 장서의 중요성

외규장각 장서 특히 의궤(儀軌)의 경우 근세를 통칭해서 600여 년 동안 꾸준히 기록된 예가 전 세계적으로 오직 조선왕조뿐이라는 사실이다. 의례의 전 과정은 천연색 그림으로 제작되었고 관청간의 업무 상황을 연구할 수 있으며 물자와 인건비까지 소상히 기록되어 생활사를 연구할 수 있는 소중한 자료이며, 각종 도구의 이름을 연구하다 보면 사라진 옛 어휘까지 연구할 수 있어 국어사 연구에도 매우 귀중한 자료이다.
                           (자료 : 다음카페 "오천 년의 향기 "
http://cafe.daum.net/dhcjss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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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ennpe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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