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빙초의 원료인 투구꽃
KBS 수목드라마 <제빵왕 김탁구>의 두 주인공 김탁구(윤시윤 분)와 구마준(가명 서태조/주원 분)의 악연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2차 경합에서 도저히 탁구를 이길 수 없으리라고 생각한 마준은 거성식품의 연구소에 의뢰해 이스트 없이 빵의 발효점을 찾지만 구일중(전광열 분) 회장에게 들켜 망신만 당합니다. 그는 탁구에게 2차경합은 서로 합심하여 함께 통과하고 3차경합에서 결판을 내자고 제의했고 탁구는 흔쾌히 응합니다. 탁구를 안심시킨 마준은 결국 책에서 보았던 설빙초를 구해 탁구가 마시는 물병에 타려고 하다가 바람개비의 사나이 조진구(박성웅 분)의 출현으로 실패합니다.
설빙초를 상의 주머니에 넣어 둔 채로 벗어 놓고 가족회의에 참석하고 돌아오니 팔봉제과점 식구들이 이 설빙초를 꺼내들고 수군거리고 있습니다. 감기약이라고 둘러대고는 이를 빼앗아 방으로 들어오자 책상 위에 카세트가 놓여 있네요. 양미순(이영아 분)이 탁구가 한푼 두 푼 저축한 돈을 찾아 이를 구입했다고 합니다. 마준은 마음이 짠해 탁구에게 설빙초를 먹이려던 계획을 보류(?)하고 그냥 책상서랍에 넣어 두었지요. 아직도 일말의 양심은 남아있는 모양입니다.
다음 날 탁구는 제빵실에서 쓰러진 모습으로 발견됩니다. 신유경(유진 분)이 하필 마준의 편으로 돌아섰다는 사실에 탈진한 것입니다. 그의 머리에 열이 펄펄 납니다. 사람들은 탁구를 방으로 옮깁니다. 오영자(황미선 분)는 마준이 감기약을 가지고 있었음을 기억하고 이를 찾아 서랍에서 꺼냅니다. 제빵실의 사람들은 이미 오영자가 마준의 감기약을 찾아 탁구에게 먹였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 말을 들은 마준은 "안 돼!"라고 소리치며 방으로 달려갑니다. 이 순간 양미순은 설빙초를 숟가락에 담아 탁구에게 먹입니다.
탁구에게 설빙초를 먹이는 오영자와 양미순
자, 이제 설빙초를 먹은 탁구는 어찌 될까요? 약제상 관계자는 설빙초 한 병을 다 먹으면 영원히 미각과 후각을 잃는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탁구가 먹은 것은 한 숟갈뿐입니다. 그러니 크게 장애를 입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블로거들은 이미 이 약초의 해독제까지 알아냈고 봉빵을 연구한 팔봉선생도 이를 알고 있을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설빙초(舌氷草)는 도대체 무슨 약초일까요? 이에 대해 파워블로거 Sun'A님은 "설빙초의 원료는 미나리아재비과의 초오속으로서 여기에 속하는 대표적인 식물이 놋젓가락나물과 투구꽃이라는 것"입니다. 글쓴이는 놋젓가락나물은 본적이 없지만 투구꽃은 등산을 다니며 자주 보았습니다.
투구꽃
그러면 먼저 투구꽃에 대하여 살펴보겠습니다.
『투구꽃은 미나리아재비과에 속하는 다년생초로 꽃이 투구처럼 생겨 이런 이름이 붙었다.투구꽃은 깊은 산골짜기에서 높이 약 1m로 자란다. 뿌리는 새 발처럼 생기고 줄기는 곧게 선다. 잎은 어긋나며 손바닥 모양으로 3∼5개로 갈라진다.
꽃은 9월에 자주색으로 피고 총상(總狀)으로 달리며 작은 꽃줄기에 털이 난다. 꽃받침조각은 꽃잎처럼 생기고 털이 나며 뒤쪽의 꽃잎이 고깔처럼 전체를 위에서 덮는다. 수술은 많고 수술대는 밑 부분이 넓어지며 씨방은 3∼4개로서 털이 난다. 열매는 골돌과로서 3개가 붙어 있고 타원 모양이며 10월에 익는다.
유독식물로서 뿌리에 강한 독이 있는데, 초오(草烏)라고 하며 한약재로 쓴다. 한국의 속리산 이북, 중국 동북부, 러시아에 분포한다. 한방에서는 극약으로 분류한다.』(자료 : 두산백과사전)
한방에서 극약으로 분류된 투구꽃은 조선시대 임금이 극약을 내려 처형하는 사약(賜藥)의 원료로도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사실 내의원에서 사약을 만들 때는 비밀리에 제조하여 기록을 남기지 않았기 때문에 사약의 재료도 명확히 밝혀진 것은 없습니다. 극약의 재료로 비소(砒素), 생금(生金: 정련하지 않고 캐낸 그대로의 황금), 생청(生淸: 불길을 쐬지 아니하고 떠 낸 꿀), 게의 알(蟹卵) 등을 혼합하여 조제하였다는 설이 있으며, 일반적으로 부자(附子), 비상(砒霜), 초오(草烏), 천남성 등을 응용했을 것으로 보고 있는데, 여기서 말하는 초오가 바로 투구꽃인 것입니다.
사약의 원료로 사용된 천남성
사극을 보면 죄인은 사약을 먹은 직후 바로 피를 토하고 죽는 것으로 묘사되지만 실제로는 30분 이상의 시간이 걸렸다고 합니다. 위를 통해서 흡수된 후 독 작용을 나타내기까지의 시간이 필요하니까요. 예를 들면 조선조 숙종 때 사사한 송시열의 경우 두 사발의 사약을 마셔도 죽지 않아 항문을 막고 사약을 먹게 한 결과 죽고 난 뒤에도 부릅뜬 눈을 감기지 못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러면 이게 어떻게 사람을 죽게 만들까요? 부자, 초오 등에서 독작용을 일으키는 성분은 알칼로이드 성분인 "아코니틴"이랍니다. 이 아코니틴은 몸 속에서 신경전달물질인 아세틸콜린의 저해제로 작용한답니다. 아세틸콜린은 신경과 근육을 이어주는 곳에서 분비되는 물질로서, 만일 아코니틴의 작용에 의해 이것의 분비가 부족해지면 근육마비가 일어나 죽게 된다고 합니다.
위에서도 지적했듯이 탁구는 한 숟가락의 설빙초를 먹었습니다. 그것도 탁구를 짝사랑하는 미순이 직접 먹인 것입니다. 한바탕 소동이 일어나겠지만 마준이 만류해서 더 이상 먹이지 않는다면 큰 후유증은 없으리라고 생각됩니다. 제작진은 극적인 효과를 강조하기 위해 탁구가 사경을 헤매도록 할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미각과 후각의 마비가 겉으로 드러나는 외상이 아니기에 지금 당장은 아무 일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다가 나중에 후각을 잃고 고통스러워하는 탁구를 보게 될지 걱정이 됩니다. 제발 이런 일은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오영자는 왜 마준이 감기약이라는 말만 믿고 이를 탁구에게 먹었을까요? 마준이가 그토록 신뢰할 만한 인물인가요? 마준은 2년 전 제빵실을 엉망으로 만든 후 이를 탁구에게 뒤집어씌우려다가 팔봉선생의 기지로 적발된 전력이 있습니다. 늘 함께 생활하지 않는 오영자는 그렇다손 치더라도 양미순의 행동도 이해할 수 없습니다. 미순은 이미 탁구가 좋아하는 신유경과 마준의 포옹키스장면을 잡 앞에서 지켜보았습니다. 그렇다면 마준은 탁구와 적일 수밖에 없는데 그가 가지고 있는 약을 확인하지도 않고 먹일 수 있겠느냐 말입니다. 특히 그 약병에는 감기약임을 표시하는 아무런 글도 없기에 더욱 그러합니다. 감기에도 여러 종류의 증상이 있는데 이 약을 그냥 종합감기약이라고 생각했을까요? 이미 조진구가 약을 구입하려 나갔으니 조금만 기다리면 될 일을! 정말 안타깝습니다.
구마준(서태조)과 신유경의 키스와 이를 지켜본 양미순
한편 구마준의 행동도 의아합니다. 마음이 급해서 마루에서 미끄러진 것은 인정하지만 제빵실에서만 "안 돼!"라고 소리지르고 왜 문 앞에서는 아무 말을 하지 않았는지 의문입니다. 양미순이 어머니로부터 받은 설빙초를 탁구의 입에 넣는 절제절명의 순간, 문 밖에서 마준이 "안 돼!'라고 소리질렀다면 분명히 먹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이 모든 사건은 드라마니까 발생가능한 일이겠지요.
독자들이 아무리 설왕설래해봐도 실제 탁구에게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제작진의 손에 달렸습니다. 오는 수요일 제21부를 기다리는 마음이 무척 지루하게 느껴지는 것은 저 혼자만은 아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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