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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천사는 서울 은평구 진관외동 북한산 삼천사계곡에 위치한 천년고찰입니다. 조계사의 말사로 신라 문무왕 1년(661년) 원효(元曉)가 창건하였습니다. 한때는 3,000여 명이 수도할 정도로 번창했다고 하며, 사찰이름도 이 숫자에서 따온 것으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조선 선조 때 임진왜란 발발 시 승병들의 집합소로 활용되었으나 이후 불에 타 없어졌답니다.

1950년 6·25전쟁 때 불에 탄 것을 1960~1978년 중수했으며, 1988년 미얀마에서 부처님 사리 3과를 얻어와 석종탑을 세워 모시고 있습니다. 삼천사계곡 안으로 들어서면 "삼각산 적멸보궁 삼천사"라는 표석이 세워져 있는데 이는 바로 위 사리를 모셨기 때문입니다.

사찰의 경내로 들어서면 가운데는 5층석탑, 그리고 좌측에는 사찰의 연혁과 보물로 지정된 마애여래입상에 대한 안내문이 붙어있는데, 하필이면 어느 몰지각한 방문객이 승용차를 이곳에 주차해 놓아 사진을 찍을 수 없을 지경입니다. 24mm의 광각렌즈로 겨우 사진을 찍었지만 이런 차주를 보면 정말 한심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꼭 사진을 찍지 않더라도 안내문을 읽기도 매우 불편하니까요. 이곳은 공사 중이어서 분위기가 매우 어수선합니다. 

 5층석탑

 안내문 앞의 승용차


삼천사 안내문


 마애여래입상 안내문(자동차로 인해 정면에서 찍지 못하고 측면으로 찍음)


   

삼각산 삼천사라는 현판이 붙은 건축물은 사천왕문을 겸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느 사찰과는 달리 사천왕상을 조각품 대신 대문에 그림으로 나타낸 게 매우 특이하네요.

 삼각산 삼천사 현판



 사천왕상 그림


 

뒤쪽의 대웅보전은 정면 5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건물로 내부에 석가모니불과 관세음보살·대세지보살의 삼존불이 모셔져 있지만 문이 닫혀져 있어 내부는 살펴보지 못했습니다.
 대웅보전

 

뒤로 들어가면 적멸보궁과 형통무량불전(亨通無量佛殿)이라는 현판이 붙어 있습니다. 정주상의 초서체 글씨로 알아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좌측에 석종탑이 있고 그 뒤로 마애여래입상(보물 제657호)이 보입니다. 이 불상은 통일신라 때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며, 양각과 음각을 섞어 조각한 독특한 작품으로서, 전체 높이는 3m이고, 불상 높이는 2.6m에 달합니다. 여성 신도 한 사람이 무엇을 간절히 갈구하는지 계속하여 절을 올리고 있군요. 나중에 응봉능선을 오르며 내려다보니 약 1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자리를 뜨지 아니한 모습입니다. 

 형통무량불전

 적멸보궁


 산령각 조각 


 마애여래입상과 산령각


마애여래입상에 이어 두 번째로 유명한 전각은 바로 산령각(山靈閣)입니다. 산령각은 정면 2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 건물인데 다른 사찰의 산신각보다 규모가 커서 북한산의 산신을 적극적으로 수용했음을 알 수 있는 건물이므로 삼천사를 "산신이 보좌를 튼 절"이라고 불러 이 글의 제목으로 인용했습니다. 유명한 펜 화가인 김영택 화백이 이를 펜화로 그릴 정도로 이는 역사적인 가치를 지닌 기념물입니다. 

 산령각

 산령각


                                                       김영택의 펜화(자료 : 중앙일보) 


김영택 화백의 마애불에 대한 해설을 한번 볼까요. "삼천사 마애불의 얼굴은 바로 인심 좋은 시골 아저씨의 얼굴입니다. 복스런 코와 입술, 지그시 감은 눈에서 온화하면서도 엄숙한 표정을 볼 수 있습니다. 법복은 두 어깨를 가린 형식으로 통견(通肩)이라고 합니다. 칠을 하였던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머리 위에 큰돌이 튀어나와 있어 모자 역할을 합니다. 그 밑으로‘ㅅ'자 모양의 홈을 낸 것은 지붕을 달아냈던 흔적으로 보여 집니다. 마애불 좌우로 깊게 뚫린 구멍도 지붕을 달아내기 위하여 나무를 박았던 자리입니다."

 마애여래불상


 ☞ 삼천사 해설관련 자료는 현지 안내문과 네이버 백과사전을 참고로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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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ennpe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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