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닥 역의 배우 이태곤
사극(역사 드라마)은 역사적인 사실에 충실해야만 하는가!
KBS 1TV의 대하역사드라마 <광개토태왕>은 80부작 중 14회가 끝난 현재 10% 중반의 시청률(7월 16일 기준 14.8%)로 비교적 무난한 출발을 보이고 있습니다. 무난하다는 것은 <김수로>와 <근초고왕>이 종영당시 겨우 두 자리 숫자의 시청률을 기록한 것과 비교할 때 성공적이라는 의미입니다. 이와 관련 어느 블로거(가명 A씨)는 이 드라마가 정통사극과는 많은 부분에서 괴리를 보여 시청료가 아깝다고 혹평했습니다. 그가 지적한 문제를 요약해 보겠습니다.
1) 용어사용의 혼란이다. 중국 같은 황제를 둔 나라에서 신하가 임금을 부를 때는 폐하라고 하고 그 아들은 황태자이며, 우리나라처럼 왕정국가는 왕을 전하라고 부르고 그 아들은 왕자라고 한다. 그런데 광개토태왕의 아버지 고국양왕을 폐하라고 하면서 그 아들인 담덕을 왕자라고 부르는 것은 용어를 잘못 사용한 것이다.
2) 실제 고국양왕에게는 아들이 담덕뿐인데 그의 형인 담망왕자를 둔 것은 역사적인 사실을 왜곡한 것이며, 담덕은 유일한 왕자이기에 궁에 남아서 군왕이 되기 위한 수업을 쌓아야지 전장을 누비면서 후연과 말갈족을 물리치는 설정은 어불성설이다. 그리고 삼남매의 이름을 담망-담덕-담주로 항렬을 널어 지은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3) 담덕은 18세에 광개토태왕에 오르는데 지금 배우 이태곤은 30-40대의 포스가 느껴지며 그의 연기도 소리만 빽빽 지르고 있다.
위에서 본 것처럼 A씨의 지적에 일부는 공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드라마와 다큐멘터리(기록영화)를 혼동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사실 사극에서 퓨전사극을 표방할 경우 이는 허구를 가미한 것이기에 역사적인 내용이 달라지는 것은 당연하지만, 정통사극은 역사적인 사실에 충실해야 한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는 듯 합니다. 그런데 글쓴이가 보기에 정통사극을 표방하고서도 역사적인 사실을 과장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생각합니다. 어찌 보면 이를 구분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할 정도이지요.
<동이>에서 동이는 궁중에서 벌어지는 모든 사건의 해결사 역할을 했을 뿐만 아니라, 몰래 궁을 빠져 나와 궁궐로 들어가기 위해 밖에서 만난 숙종의 등을 밝고 담장을 넘는 장면이 연출되기도 했습니다. 일개 궁녀가 임금의 등을 밟는다는 게 있을 없는 일이거든요. <선덕여왕>의 경우 덕만공주는 공주가 되기 전 남장을 한 채 군에 들어가 백제군과의 치열한 싸움에 뛰어 들었는데 이도 약간 비현실적이었다고 생각됩니다.
또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였던 <추노>의 경우 도망노예의 얼굴에 노(奴)와 비(婢)자 문신을 찍어주던 것도 실제로는 지어낸 것이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성균관 스캔들>에서 김윤희(박민영 분)는 남장여자로 성균관에 입학하여 남자유생들과 동고동락했는데, 누가 보아도 곱상하고 가슴이 볼록한 그녀를 남자로 오인한 것도 웃기는 일이지요. 이 모두는 극의 재미를 배가시키기 위한 작가의 상상력이 동원된 결과라고 믿고 싶습니다.
추노와 선덕여왕
A 씨의 지적 중 1)번은 제작진이 확실히 실수한 게 맞습니다. 국어사전을 봐도 폐하는 "황제나 황후에 대한 경칭"이라고 풀이하고 있기에 황제제도를 채택한 적이 없는 우리 역사에서 폐하라는 말은 사용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다만, 조선의 26대왕은 고종황제, 왕비는 명성황후라고 불렀음). 반면 2)번과 3번은 좀 재고해 볼 여지가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역사드라마는 주인공의 영웅 만들기사업이 거의 대부분 포함됩니다.
고국양왕(좌)과 국상 개연수(우)
광개토태왕도 예외는 아닙니다. 담덕왕자가 할아버지인 고무대장군(김진태 분) 밑에서 무예를 쌓고 전장을 누비며 후연의 황태자를 사로잡았으며, 책성의 국경지역에서 노예시장에 팔려갔다가 탈출해 말갈족을 물리치는 등 그야말로 18세 이하인 청년으로서는 놀랄만한 활동을 펼칩니다. 국내성 왕궁에서도 담덕왕자는 반대파인 국상(오늘날 국무총리 해당) 개연수 및 여소이(국방장관 해당) 등과 맞서기 위해서도 어른스러운 카리스마가 필요했을 것입니다. 따라서 담덕이 왕위에 오르기 전 그의 영웅 만들기 때문에 아역을 동원하지 않은 듯 한데 사실 좀 아쉬운 대목이기는 합니다. 좀 어른스럽고 몸집이 큰 아역을 출연시켰더라면 좋았을 것입니다.
제작진은 담덕이 왕궁을 떠나있는 동안 왕궁을 지키는 왕자가 필요해 가공의 인물인 장남 담망을 만들었습니다. 이를 역사적인 사실과 다르다고 비난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우리가 이 드라마에서 봐야 할 것은 고구려 시대에 만주를 정벌한 훌륭한 군주가 있었음을 다시금 상기하는 것이지 그가 몇 째 아들인지는 중요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담덕이 즉위할 즈음 담망은 자연스럽게 사라지겠지요. 또 3남매에게 같은 항렬을 사용해 지은 이름을 비판한 것도 조금은 도가 지나친 듯 합니다.
담망-담주 남매와 담덕의 어머니 노예성채에서의 생할
드라마는 다큐멘터리가 아닌 픽션입니다. 따라서 이야기 속에는 작가의 상상력이 동원됩니다. 드라마는 현실적으로 발생하지는 않지만 가상현실 속으로 시청자들을 유인합니다. <제빵왕 김탁구>나 <욕망의 불꽃>같은 드라마가 대표적입니다. 그런데 유독 역사드라마(사극)에서는 이를 인정하지 않으려 합니다. 사실 감수성 예민한 청소년들이 사실과 부합하지 않은 사극을 보고 이를 진실인양 받아들이는 것은 큰 문제입니다. 드라마를 드라마로만 보지 않은 것이지요. 따라서 제작진으로서도 시청률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이야기를 지어낼 경우 이런 사극에는 정통사극이라는 말을 붙이지 말고, 역사적 사실과 부합하지 않음을 알리는 노력이 필요해 보입니다. 또 가공의 이야기를 만들더라도 큰 역사적인 줄기를 훼손하지 않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 글쓴이는 드라마 <광개토태왕>을 흥미진진하게 보고 있습니다. 이미 리뷰도 5회 작성했습니다. 그런데 형편없는 드라마로 비판을 받으니 기분이 이상해 이 글을 썼습니다. 그러나 사실 사극은 잘 모르는 평범한 시청자입니다. 이 글의 오류에 대하여는 그 지적을 달게 받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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