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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은 조선왕조 세 번째 왕인
태종 때(1405) 건립한 조선왕궁입니다.
처음에는 법궁인 경복궁에 이어 이궁(離宮)으로 건립했지만
임금들이 주로 창덕궁에 거주하면서
실질적인 법궁의 역할을 담당하였습니다.

임진왜란으로 인해 한양도성의 궁궐들이 모두 불에 탄 후
경복궁은 그 터가 불길하다는 이유로 재건되지 않고
광해 2년(1610) 창덕궁이 먼저 재건되어
후일 경북궁이 재건될 때까지
무려 270여 년 법궁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창덕궁은 인위적인 구조를 따르지 않고
주변지형과 조화를 이루도록 자연스럽게 건축하여
가장 한국적인 궁궐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창경궁과 함께 동궐이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한국을 대표하는 궁궐이 되었습니다.

창덕궁의 정문인 돈화문(보물 제383호)으로 들어가
우측의 금천교를 건너면 진선문(進善門)입니다.
진선문을 통과하면 좌측에 보물 제813호인
인정문(仁政門)이 보이고 그 안쪽이
창덕궁의 중심건물인 인정전(仁政殿)입니다.

 돈화문

 금천교

 진선문

 인정문


 

창덕궁에서 가장 크고 화려한 인정전은
국보 제225호로 조선의 왕권을 상징하는 으뜸 건물입니다.

인정전의 높은 천장은 봉황으로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고
정면에는 왕의 자리인 어좌가 있는 가운데,
바닥에는 마루를 깔았습니다.

내부에 서양식의 커튼과 전등 및 유리창 등이 보여
다른 궁궐과 모습이 다른 것은
대한제국 말기(1908) 내부를 서양식으로 고친 때문입니다. 


 


 


 


 


 


 


 



 

창덕궁의 정전인 인정전은 왕의 즉위식, 신하들의 하례,
외국 사신의 접견 등 중요한 국가적 의식을 치르던 곳입니다.

조선의 27명 국왕가운데 무려 8명(연산군, 효종, 현종, 숙종,
영조, 순조, 철종, 고종)이 인정문 앞 공간에서 즉위식을 시작하여
인정전에서 신하들의 하례를 받으며 왕위에 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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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ennpe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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