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우록길 218(우록리 585번지)소재 녹동서원은
임진왜란 당시 왜장으로 출전했다가 귀순한
김충선(본명 사야가)을 기리기 위하여 지어진 서원입니다.
조선 정조 13년(1798) 지방 유림들에 의해 창건된 녹동서원은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가 1914년 재건된 것입니다.
김충선의 호는 모하당, 자는 선지였으며,
1592년 임진왜란 당시 가등청정 휘하의 좌선봉장으로
3,000여 군사를 이끌고 침입했다가 경상도병마절도사
박진에게 귀순한 후 동래·울산·진주 등에서 일본군을 여러 차례 무찔렀습니다.
도원수 권율 등의 주청으로
선조로부터 성명(본관 김해 김씨)을 하사 받았습니다.
이괄의 난 진압과 병자호란 발발 시에도 전과를 올렸습니다.
후일 그는 대구(달성)로 내려와
목사 장춘점의 딸과 혼인하여 터를 잡고 살았습니다.
녹동서원 앞 어디에도 녹동서원이라는 현판이 보이지 아니합니다.
서원입구의 솟을대문과 뒤쪽의 서원도 새로 개축한 듯 했는데
때어낸 서원현판을 다시 부착하지 않은 듯 보여집니다.
다만 맨 뒤쪽의 전각에 붙어 있는 녹동사(鹿洞祠)라는 현판만이
이곳이 녹동서원이었음을 알려줄 뿐입니다.
대문도 굳게 잠겨 있어 출입을 할 수 없음도 아쉬웠습니다.
서원 앞에는 그의 유적비와 한일우호관이 있네요.
2001년 방한한 와까야마현 한일 문화교류단 일행은
"정의를 실천한 김충선 장군을 높이 찬양하고 한일양국의 우호친선을
기원하면서 이곳을 참배"했다는 표석을 새겨 놓았습니다.
한일우호관에서 본 서원
한일우호관
사실 사야가는 조선에게는 충신이었지만
왜국으로서는 역적이었을 텐데 약 400여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그는 정의를 실천한 투사로 둔갑해 칭송을 받고 있으니
사람의 운명이란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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