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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원사 불상

 

 

 

 

 

인천시 강화군은 9개의 유인도와 17개의 무인도로 이루어진 수도권 제1의 청정지역입니다. 강화나들길은 강화도 14개코스(174.9km), 교동도 2개코스(33.3km), 석모도 2개코스(26km), 주문도 1개코스(11.3km) 및 볼음도 1개코스(13.6km) 등 모두 20개코스 310.5km에 달하는 도보길입니다.

 

 

여행자들은 나들길을 걸으며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선사시대 고인돌, 고려시대 왕릉, 외세의 침략으로부터 나라를 지키려 했던 조선시대 진지와 돈대, 선조의 지혜가 살아 숨 쉬는 역사와 문화생활, 광활한 갯벌과 천연기념물 철새(저어새, 두루미 등)가 서식하는 자연생태환경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강화나들길 6코스는 “화남생가 가는 길”로 강화버스터미널에서 출발해 선원사지와 화남생가를 거쳐 광성보에 이르는 18.8km의 도보길로서 강화버스터미널에서 남쪽으로 이어지는 여정입니다. 화남생가는 화남 고재형 선생이 살았던 집으로 그는 강화나들길을 조성하는데 밑그림을 제공한 강화의 여행자입니다.

 

 

 

 

6코스의 들머리는 강화군 강화읍 남산리 소재 강화버스터미널입니다. 터미널 내 관광안내소에는 이곳에서 출발하는 1코스와 5코스 및 6코스의 출발점 도장함이 놓여있습니다. 밖으로 나와 우측으로 가면 사거리인데 여기서 우측으로 조금 가면 6코스 공식 이정표가 있고, 강화풍물시장 입구를 지나면 실개천(동락천)이 보이는 곳에 6코스 안내지도가 세워져 있습니다.

강화버스터미널

 

터미널 내 관광안내소

 

인증 도장함

 

 

6코스 지도

 

 

 

 

 

여기서 실개천(동락천) 둑을 걸어갑니다. 강화나들길 공식 홈페이지에 의하면 둑을 따라 가다가 징검다리를 건너 우측으로 가야하지만 현재 건널 수 있는 징검다리가 보이지 않아 수문을 지나 계속 진행합니다. 한참을 가다가 동락천에 걸린 이름 없는 다리를 건너 직진해 차도를 만나 우측으로 갑니다. 창1리마을회관을 지난 후 6코스 공식 이정표를 만나 안도했습니다.

실개천(동락천) 둑을 걷는 길

 

다리를 건너 직진하는 길

 

6코스 공식 이정표

 

 

 

 

 

창리감리교회와 송림빌라를 지나 좌측에 있는 강화정신요양원 쪽으로 진입하면 이제부터는 이정표와 리본이 잘 걸려 있어 길을 찾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요양원 갈림길에서 6코스는 요양원 반대방향인 우측으로 이어집니다. 현재 영업을 하지 않는 강화스파랜드를 돌아 숲으로 진입합니다. 통나무계단을 올라 소나무 숲길을 걷습니다. 그런데 공식 이정표를 보니 시점에서 2.4km를 지나왔으며 목적지까지 남은 거리는 12.6km라고 표기되어 있어 전체거리는 15km입니다. 강화나들길 홈페이지에는 6코스 거리가 18.8km인데 15km라니 거리가 단축되어 안도합니다.

강화정신요양원 입구

 

강화스파랜드

 

숲길 통나무계단

 

소나무숲

 

6코스 전체거리가 15km라는 이정표

 

 

 

 

 

산길은 U자형으로 돌아 능선으로 이어지다가 국원리 방면의 이정표를 보고 좌측으로 방향을 바꿉니다. 소나무숲길을 걸으며 우측을 바라보니 고려산 남쪽의 혈구산(466m)이 우뚝하네요. 소나무 숲길을 빠져 나오니 드디어 선원사지입니다.

반듯한 능선길

 

서쪽의 혈구산

 

소나무숲길

 

 

 

 

 

강화군 선원면 지산리 소재 선원사지(사적 제259호)는 고려시대 대몽항쟁 당시 고려대장경 목판을 조각하던 곳으로 추정되는 사찰터입니다. 선원사는 고려시대에 몽골의 침략을 받아 강화도로 도읍을 옮긴 후 1245년(고려 고종 32) 당시 최고 권력자였던 최우(崔瑀)가 대몽항쟁의 정신적 지주로 삼고자 창건한 곳으로 대장도감(大藏都監)을 설치하여 팔만대장경을 조각했으며 팔만대장경 목판은 현재 합천 해인사에 봉안되어 있습니다. 다만 이곳이 조선왕조실록에서 전하는 고려 팔만대장경을 판각했던 선원사(禪源寺)터로 볼 수 있는 고고학적 자료가 확인되지 않아 이에 대하여는 장기적인 조사연구가 필요하다는군요.(자료/다음백과사전에서 발췌인용).

 

 

 

 

 

 

 

 

선원사지 동남쪽에는 선원사가 있는데 옥외에는 대형 좌불상이 있고 사찰의 전각 하나와 한옥 1채가 전부입니다. 그런데 이곳에는 고려팔만대장경 박물관과 선원사복원추진위원회가 있고 과거 연꽃축제를 개최했을 당시의 안내문이 그대로 남아 있네요.

 

 

 

 

 

 

 

 

 

선원사 입구에서 도로를 건너 직진하면 선원사연꽃축제장을 알리는 대형표석이 세워져 있는데 실제로 약 15년 전 이곳을 방문해 화려한 연꽃을 보며 감탄한 적이 있었지만 당시 연꽃단지는 지금은 전부 다른 용도로 변경된 듯합니다. 남산대마을 표석을 지나 월하공원방향으로 진입합니다. 월하공원은 석탑과 불상 등이 보이는 사유지 같은 공원이네요. 이곳에는 6코스의 그림안내지도가 세워져 있습니다.

 

10여 년 전 선원사 연꽃축제당시 찍은 사진

 

 

 

월하공원 이정표

 

 

 

 

 

 

연리보건진료소를 지나 좌측의 숲으로 들어선 다음 잠시 후 숲을 빠져나와 남쪽으로 이어진 일직선 도로를 걷습니다. 상암동천에 걸린 다리를 건너 계속 가는 데 갑자기 옆의 논에서 철새 떼가 날아오릅니다. 철새들이 필자의 인기척 소리를 들은 모양입니다. 얼른 카메라를 꺼내 이들을 담았습니다. 농로를 지나가며 환경농업교육원(?)으로 추측되는 건축물을 봅니다.

연리보건진료소

 

남쪽으로 뻗은 일직선 도로

 

상암동천에서 본 혈구산

 

날아오른 철새 떼

 

농업환경교육원으로 추정되는 건축물

 

 

 

 

 

도로를 건넌 후 걷는 발걸음이 매우 조심스럽습니다. 왜냐하면 이곳 인근에 화남생가가 있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유감스럽게도 다른 이들의 답사후기에서 화남생가 사진을 보지 못했습니다. 강화나들길 공식 홈페이지에는 슬레이트의 지붕을 한 집이 화남생가로 현재 후손이 직접 살고 있다고 했지만 홈페이지 지도에 화남생가로 표기된 곳 주변을 살펴보아도 이와 유사한 집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다만 폐가로 보이는 기와집 하나만이 보일 뿐입니다.

화남생가로 표기된 지점에 있는 기와집

 

강화나들길 홈페이지의 화남생가

 

 

 

 

여기서 잠시 강화군의 무성의를 지적하고자 합니다. 강화나들길 6코스의 이름이 “화남생가가는 길”인데 지도로 표기된 곳 주변에 화남생가 관련 안내문이나 이정표 하나 없다는 게 정말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럴 바에는 6코스의 이름을 “선원사지 가는 길”로 바꾸는 게 좋을 것입니다. 여기서 강화군과 백과사전 등에서 밝힌 화남선생이 어떤 분인지 다시한편 살펴보겠습니다.

 

화남생가는 화남 고재형(1846-1916) 선생이 살았던 집입니다. 화남 선생은 강화나들길을 낳게 한 장본인입니다. 왜냐하면 강화나들길은 그가 1906년 강화도의 수려한 자연을 노래하며 걸었던 강화의 길을 이어서 연결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강화 나들길의 밑바탕에는 강화 지역의 유래와 풍광, 인물 등을 노래한 강화도 선비인 화남 고재형 선생이 남긴 “심도기행”이란 기행시집이 있습니다. 심도기행은 화남 선생이 1906년 복사꽃이 흐드러진 어느 봄날 고향인 두두미 마을(현 불은면 두운리)을 출발해 강화도 전역의 100여 마을을 여행하며 남긴 256수의 7언 절구의 기행시가 담긴 시집입니다.

 

강화군은 화남 선생이 대한제국의 운명이 기울어가던 암울한 시대에 급속히 사라져가는 풍속을 개탄하며 자신이 나고 자란 고향 땅을 걸었던 길을 100여년이 흐른 지금 인문지리지로 되살려 생태문화탐방로로 새롭게 탄생시켰습니다. 강화 나들길은 화남 선생이 고향을 노래한 시(詩)의 길이자 우리의 역사와 문화의 흔적이 살아있는 길입니다.(자료/다음백과)

 

기와집을 돌아 숲으로 진입해 잠시 후 빠져 나오면 고씨 영모사 유지회에서 세운 사당이 보이네요. 지나는 길목에는 수령 300년이 넘은 보호수 물푸레나무가 있고, 좌측으로 돌아가니 이번에는 수령 300년이 지난 상수리나무가 있는데, 물푸레나무와 상수리나무가 보호수로 지정된 것은 처음 봅니다.

고씨 종친회 사당

 

보호수 물푸레나무

 

보호수 상수리나무

 

 

 

 

 

누군가 정성을 들려 쌓은 돌탑군을 뒤로하면 산수유가 열매를 맺고 있군요. 눈이 부실만큼 빨간 백량금의 열매가 여행자의 발길을 사로잡습니다. 두운2리마을회관 옆길을 따라가면서 두운2리 장안마을회관을 지나갑니다. 비슷한 이름의 마을회관이 둘이로군요. 길을 가면서 좌측 언덕을 바라보니 그야말로 그림 같은 녹색의 전원주택이 보이는데 이곳에는 동화 속 인물이 살고 있을 것만 같습니다.

돌탑군

 

산수유열매

 

백량금 열매

 

 

두운2리장안마을회관

 

그림 같은 전원주택

 

 

 

 

 

사북천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너 좌측으로 가다가 붉은 지붕의 건물에서 우측 산으로 들어섭니다. 오늘 나들길의 반 정도는 숲길인 듯합니다. 오두리 간이상수도시설에서 좌측으로 몸을 돌려세운 후 숲을 나와 오두보건진료소 및 오두리경노당을 지나 우측 동남쪽으로 뻗는 일직선 도로를 따라 걷습니다. 강화해안도로를 가로지르면 강화해변인데 이 길은 강화나들길 2코스(호국돈대길)와 만나는 길이어서 눈에 익습니다. 여기서부터 광성보까지는 2코스와 6코스가 함께 가는 길입니다.

사북천

 

산길

 

오두보건진료소

 

해변의 2코스 이정표

 

송전철탑

 

 

 

 

 

송전청탑을 뒤로하고 아취형 대문을 지나 광성보교차로에 있는 어재연장군에게 경의를 표한 후 좌측으로 들어가면 광성보입니다. 광성보(사적 제227호)는 강화의 해안경계부대인 12진보가운데 하나로 1658년 설치되었습니다. 신미양요(1871)때 광성보는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 격전지로 해병 450명으로 초지진과 덕진진을 점령한 미군은 극동함대의 함포 지원사격을 받으며 광성보로 쳐들어왔습니다. 조선군은 화력의 열세에도 끝까지 싸워 중군장 어재연과 그의 아우 어재순, 군관을 비롯한 49인의 장사와 200여명의 군사가 전사했습니다. 이때 파괴된 누각과 성곽 등은 1976년 복원되었으며, 현재 광성보에는 어재연 등 장수들의 용맹을 기린 쌍충비각과 무명 병사들의 무훈을 기린 무명용사비가 있습니다. 또한 이곳에는 광성돈대, 손돌목 돈대, 용두돈대가 있습니다.

 

광성보 옆의 모텔

 

 

광성보 안해루

 

 

 

 

 

 

광성보 관리사무실 앞에 6코스 완보 인증도장함이 있지요. 오늘 17.5km를 걷는데 약 5시간이 소요되었습니다. 실제의 거리는 홈페이지거리(18.8km) 및 중간 이정표 거리(15km)와도 차이가 나서 보완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또한 나들길 앞부분에 리본이 거의 없어 길을 찾느라 애를 먹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이미 지적했듯이 호남생가의 위치에 대한 정확한 이정표와 안내가 없어 이 길을 걸으며 실망한 분들이 많을 것이므로 이 점은 꼭 개선되기를 희망합니다.

광성보 관리사무실

 

광성보 관리사무소 앞 인증도장함

 

 

 

 

 

 

《강화나들길 6코스 개요》

 

▲ 일자 : 2022년 12월 7일 (수)

▲ 코스 : 강화버스터미널-강화풍물시장 입구-동락천-강화정신요양원-소나무숲-선원사지(선원사)-상암동천-화남생가(추정)-두운2리마을회관-숲길-오두보건진료소-강화해변-광성보

▲ 거리 : 17.5km

▲ 시간 : 4시간 45분

▲ 안내 : 나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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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ennpe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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