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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궁지의 외규장각과 강화유수부 동헌

 

 

 

 

 

인천시 강화군은 9개의 유인도와 17개의 무인도로 이루어진 수도권 제1의 청정지역입니다. 강화나들길은 강화도 14개코스(174.9km), 교동도 2개코스(33.3km), 석모도 2개코스(26km), 주문도 1개코스(11.3km) 및 볼음도 1개코스(13.6km) 등 모두 20개코스 310.5km에 달하는 도보길입니다.

 

 

 

 

여행자들은 나들길을 걸으며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선사시대 고인돌, 고려시대 왕릉, 외세의 침략으로부터 나라를 지키려 했던 조선시대 진지와 돈대, 선조의 지혜가 살아 숨 쉬는 역사와 문화생활, 광활한 갯벌과 천연기념물 철새(저어새, 두루미 등)가 서식하는 자연생태환경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2022년 6월 나들길 1코스를 시작으로 약 1년만인 금년 5월말 20개 코스를 완보했습니다. 20개 코스 중 주문도와 볼음도 코스는 배편의 시각을 맞추기 어려워 산악회 주관의 행사에 참여했고, 교동도 2개 코스는 기종점이 동일장소라서 승용차를 운전했으며, 나머지 16개 코스는 나 홀로 대중교통을 이용해 동반자 없이 외롭게(?) 걸었습니다.

 

강화나들길 완보에 즈음해 이 길을 걸으며 만났던 강화군 명소 52곳을 소개합니다. 그런데 명소가 너무 많아 2차에 걸쳐 게재하겠습니다. 제1부는 1코스에서 9코스까지의 명소 29곳, 제2부는 10코스에서 20코스까지의 명소 23곳입니다.

 

 

(1) 한국최초 전통한옥형식으로 지은 대한성공회 강화성당(1코스)

 

강화군 강화읍 관청리 소재 "대한성공회 강화성당"(사적 제424호)은 구한말인 1900년 건립된 한국 최초의 성공회성당으로 “성베드로와 바우로 성당”이라고도 하는데 고요한(Charles Jone Corte) 초대 주교가 건립하였습니다. 보통 성당(교회 포함)이라고 하면 종루(鐘樓)가 뾰족한 첨탑의 형태로 된 건축물을 떠올리는데 성당의 용마루 위에 십자가와 천주성전(天主聖殿) 현판만 없었다면 성당이라기보다는 전통한옥 또는 조선시대 향교와 유사한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강화성당은 한국 전통건축양식과 서양식인 바실리카가 혼재된 목조건물로 동서로 10칸, 남북으로 4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기와지붕은 한국 전통양식으로 지었고 예배당은 서양식으로 설계했습니다. 이 성당은 경복궁 중건에 참여했던 도편수가 백두산에서 자란 100년생 소나무를 구해지었습니다.

 

 

 

 

 

 

(2) 고려가 몽골의 침입에 대항해 세운 도읍터-고려궁지(1코스)

 

강화군 강화읍 관청리 소재 고려궁지(사적 제133호)는 고려가 고종 19년(1232) 몽골군의 침입에 대항하기 위하여 최우의 권유로 왕도를 천혜의 요새인 강화도로 옮겼는데 이때 옮겨진 도읍터입니다. 고려궁지는 원종 11년(1270) 개성으로 환도할 때까지 39년간 고려의 궁으로 사용되었습니다.

 

고려궁지는 송도궁궐과 비슷하게 만들어 졌고, 궁궐뒷산 이름도 송악이라하여 왕도의 제도를 잊지 않으려 했습니다. 1636년 병자호란으로 강화성이 함락되는 등 수차례의 전란을 겪으면서 궁궐과 성은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조선시대에는 이곳에 행궁과 강화유수부 건물 및 외규장각을 건립해 많은 장서와 문서를 보관했으나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이 책과 서류를 약탈해갔으며 많은 건물이 불탔습니다.

 

고려궁지 외규장각

 

 

 

 

 

 

(3) 900년 역사의 국립교육기관-강화향교(1코스)

 

강화군 강화읍 관청리 소재 강화향교는 고려 인종 5년(1127) 성현들에게 제사지내고 지방민의 교육을 위해 세웠던 국립교육기관입니다. 그 뒤 여러 차례 옮기고 복원하였는데, 지금 있는 위치는 영조 7년(1731년) 유수 유적지가 옮긴 것입니다.

 

경내에는 중국의 5성과 한국 18현의 위패를 모신 대성전과 강의를 하던 명륜당 및 내·외삼문 등이 있고, 동·서무는 터만 남아 있는데 현재의 건물들은 근래에 중수 또는 신축된 것입니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노비·책 등을 지원받아 제사와 교육의 기능을 담당했으나, 갑오개혁이후 교육기능은 사라지고 지금은 제사의 기능만 남아 있습니다.

 

 

 

 

 

 

(4) 강화도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연미정과 월곶돈대(1코스)

 

강화군 강화읍 월곶리 소재 월곶진은 한강 하구에 위치하여 염하를 통하여 인천 방면을 거쳐 삼남지방으로 왕래할 수 있었고, 중국과도 교통할 수 있는 중요한 요충지에 위치하고 있어 한국전쟁 이전에는 매우 번성한 포구 중 하나였습니다. 이곳에는 월곶돈대, 황형택지, 연미정 등 유적이 있습니다.

 

연미정(燕尾亭)은 최초 건립연대는 미상이지만 고려시대에 지은 것으로 보고 있으며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및 6.25 전쟁을 거치며 여러 차례 시련을 겪고 파손된 것을 현재와 같이 복원하였습니다. 이곳을 흐르는 임진강과 염하강의 모양이 제비 꼬리 같다하여 연미정이라 이름이 붙여졌으며 월곶돈대 꼭대기에 세워져 있어 파주시, 김포시, (북한)황해도 개풍군 일대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습니다. 정묘호란 때는 조선 인조가 후금과 굴욕적인 형제관계의 강화조약을 맺었던 아픈 역사의 현장입니다.

 

 

 

 

 

 

(5) 강화해협을 지키던 요새-갑곶돈대(1코스)

 

갑곶돈은 고려 고종 19년(1232)부터 원종 11년(1270)까지 도읍을 강화도로 옮겨 몽고와의 전쟁에서 강화해협을 지키던 중요한 요새로 대포 8문이 배치된 포대입니다. 돈대는 해안가나 접경지역에 돌이나 흙으로 쌓은 소규모 관측 및 방어시설로, 갑곶돈대(사적 제306호)는 제물진(갑곶진)에 소속된 돈대로 숙종 5년(1679)에 축조되었습니다.

 

고종 3년(1866) 병인양요 때 프랑스의 극동 함대가 600여명의 병력을 이끌고 이곳으로 상륙하여 강화성과 문수산성을 점령하였으나 정족산성에서 프랑스군은 양헌수 장군의 부대에게 패하여 달아났습니다. 이곳은 1977년 옛터에 보수와 복원이 이루어진 것으로 현재 돈대 안에 전시된 대포는 조선시대 것으로 바다를 통해 침입하는 왜적의 선박을 포격하던 것입니다.

 

 

 

 

 

 

(6) 강화에서 발생한 전쟁을 알리는 강화전쟁박물관(2코스)

 

강화군 강화읍 갑곶리 소재 강화전쟁박물관은 천혜의 지정학적 위치로 역사의 고비 때마다 국방상 요충지 역할을 수행하며 외세의 침략을 막아낸 강화의 호국정신을 널리 알리기 위해 강화에서 일어났던 전쟁을 주제로 각종 전쟁관련 유물을 전시하고 연구.보존.수집하기 위해 설립한 박물관입니다. 갑곶돈대 정문을 들어서면 좌측에 강화전쟁박물관이 있는데 건물 좌측에는 옛날복장의 포도대장(?) 같은 인물이 박물관을 지키고 있는 모습입니다.

 

 

 

 

 

 

(7) 신미양요 때 가장 치열한 격전지-강화 광성보(2코스)

 

강화외성은 고려가 몽골의 침입에 대항하여 개경에서 강화도로 천도한 때인 강도(江都) 시기(1232~1270)에 조성된 성으로 강화군 동쪽해안(선원면, 불은면, 길상면) 일대 23km에 걸쳐 쌓은 토성입니다.

 

인천광역시 강화군 불은면 덕성리 소재 광성보(사적 제227호)는 강화의 해안경계부대인 12진보 가운데 하나로 1658년 강회외성에 설치됐으며, 화도돈대, 오두돈대, 광성돈대, 오두정 포대를 관할하였습니다. 신미양요 때 가장 치열한 격전지였던 이곳 광성보에는 성문인 안해루, 광성돈대, 신미양요 순국무명용사비 및 쌍충비각, 신미순의총, 손돌목돈대, 용두돈대가 있습니다.

 

 

 

 

 

 

(8) 자연지형을 이용한 요새 품은 강화 덕진진(2코스)

 

인천광역시 강화군 불은면 덕성리 소재 덕진진(德津鎭, 사적 제226호)은 고려시대 강화해협을 지키던 외성의 요충지로서 병자호란 이후 강화도를 보호하기 위해 세운 12진보 중의 하나입니다. 덕진진은 1679년에 축조된 용두돈대와 덕진돈대, 1874년(고종 11)에 축조된 남장포대와 덕진포대를 관할하는 강화해협에서 가장 강력한 포대였습니다.

 

1866년 병인양요 때는 양헌수(梁憲洙)가 이끄는 부대가 이 진을 통하여 정족산성으로 들어가 프랑스군을 격퇴하였고, 1871년 신미양요 때는 치열한 포격전 끝에 미국함대를 격퇴시켰으나, 초지진에 상륙한 미국해병대에 의하여 점령당하는 비운을 맞기도 했습니다. 이 때 성첩과 문루가 모두 파괴되고 문루지(門樓址)만 남게 되어 1976년 돈대와 성곽을 보수하였으며 성문인 공조루도 다시 세웠습니다. 현재 덕진진에는 성문과 남장포대 및 대포, 덕진돈대, 덕진진경고비 등 유적이 있습니다.

 

 

 

 

 

 

(9) 1870년대 전쟁당시 포탄흔적 간직한 강화 초지진(2코스)

 

강화군 길상면 초지리 소재 초지진(사적 제225호)은 바다로 침입하는 외적을 막기 위하여 조선 효종 7년(1656년)에 구축하고 1679년 조선 숙종 때 성으로 지은 요새입니다. 1866년 천주교 탄압을 구실로 침입한 프랑스 극동 함대(병인양요)와 1871년 무역을 강요하며 침략한 미국의 아세아 함대(신미양요), 그리고 1875년 침공한 일본 군함 운요호를 맞아 치열한 전투를 벌였던 격전지입니다. 그러나 당시 프랑스·미국·일본의 함대는 우수한 근대식 무기를 가진데 비하여 조선군은 빈약한 무기로 대항하여 싸웠기에 매우 고전했습니다.

 

이처럼 잇따른 외적의 침입으로 초지진 포대는 완전히 파괴되어 돈대와 터의 기초만 남아 폐허가 되었다가 1973년 초지진의 성곽을 보수하고 당시의 대포를 진열하여 역사 교육 현장으로 이용하고 있습니다. 현재 타원형의 돈대에는 포좌 3개, 총좌 100여개, 실제 조선시대 말기에 사용하던 대포가 1문 전시되어 있습니다.

 

 

 

 

 

 

(10) 한옥형식으로 지은 강화온수리 성공회성당(3코스)

 

인천광역시 강화군 길상면 온수리 소재 강화 온수리 성공회성당은 1906년에 건립된 대한성공회의 한옥성당으로 “성 안드레 성당”이라고도 합니다. 당시 대한성공회 “조마가” 주교 때 지은 건물입니다.

 

성당은 솟을 대문형식의 종루와 정면 9칸 측면 3칸의 본당으로 이루어진 건물인데 한국의 전통적인 건축기법을 활용하여 종교적인 성당건축 방법과 공간구성을 확립한 동서 절충식 강당형의 목조건물입니다. 지붕은 팔작지붕으로 되어있고, 용마루 양끝에는 연꽃 모양으로 된 곡선미를 살린 돌십자가가 달려 있습니다.

 

 

 

 

 

 

(11) 고려중기의 문장가인 이규보의 묘소와 사당(3코스)

 

강화군 길상면 길릭리 소재 이규보의 묘는 고려시대의 문신이자 문장가인 백운거사(白雲居士) 이규보 선생의 묘소입니다. 이규보(1168-1241)는 고려의 무신정권 하에서 태어나 무신정권에 적극 협력했던 문인의 한 사람으로, 명종 19년(1191) 진사시에 합격한 후 여러 관직을 거쳐 문하시랑평장사에 올랐습니다.

 

시문에 능하였던 선생은 중국의 모방이 많았던 당시에 고구려의 시조 동명성왕 이야기를 서사시로 엮는 등 민족정신에 바탕을 두고 글을 썼습니다. 또한 몽고군의 침입으로 강화도로 천도해서 대장경을 만들 때 민족수호의 충정이 담긴 『대장경각판군신기고문(大藏經刻板君臣祈告文)』을 남겼습니다. 선생이 남긴 문집은『동명왕편』을 비롯하여『동국이상국집』『백운소설』등 55권으로 모두 고대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습니다.

 

 

 

 

 

 

(12) 고려시대 왕비의 능인 가릉(4코스)

 

강화군 양도면 능내리 소재 강화 가릉(사적 제370호)은 고려 24대 원종의 왕비인 순경태후(1222~1237)의 능입니다. 그녀는 불과 14세에 태자비가 되어 15세에 아들과 딸을 낳고 16세에 세상을 떠난 비운의 왕비입니다. 왕릉의 주인인 순경태후는 무신정권 최고권력자 최우의 외손녀라고 합니다. 이 가릉은 곤릉과 함께 남한에 단 2기만 남아 있는 고려시대 왕비의 능으로 중요한 문화유산입니다.

 

 

 

 

 

 

(13) 건평항 천상병 귀천공원(4코스)

 

강화군 양도면 건평리 소재 천상병귀천공원은 시인 천상병(1930-1993)이 평생 가난과 시대와의 불화로 고통스러웠을 인생에도 불구하고 소풍을 와서 즐겁게 놀다가 하늘로 돌아간다는 그의 시 “귀천”을 모티브로 조성한 공원입니다. 이곳의 바다와 노을빛을 사랑한 시인의 맑은 문학정신과 강화해안의 아름다운 풍경을 오래도록 기리고 보전하기 위함입니다. 이곳에는 그의 대표작인 귀천과 동상이 세워져 있으며 건평항의 하늘이 시인이 돌아갈 하늘과 하나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한 이곳에는 강화나들길 조형물이 세워져 있어 사진촬영명소이기도 합니다.

 

 

 

 

 

 

(14) 삼별초군호국항몽유허비와 망양돈대(4코스)

 

강화군 내가면 외포리 소재 삼별초군호국항몽유허비는 강화군에서 봉기한 삼별초군이 진도로 이동해 항쟁했으며 다시 제주도로 거점을 옮겨 여몽연합군에게 무너질 때까지 항쟁을 계속한 갓을 기념하는 비입니다. 이웃한 망양돈대는 조선 숙종(1679) 때 쌓은 돈대로 해안으로 상륙하는 적군을 처단하기 위해 설치한 중요한 방어시설물이었습니다.

 

 

 

 

 

 

(15) 강화에서 두 번째로 큰 고려저수지(5코스)

 

강화군 내가면 고천리 소재 고려저수지는 만수면적 28만평 규모의 강화도에서 두 번째로 큰 저수지로 고려산 및 혈구산으로부터 흘러내린 물줄기를 담은 담수호로서 한때 호수의 오염이 심각하였으나 강화군에서 특별관리하여 현재는 깨끗한 저수지로 옛 명성을 되찾은 곳입니다. 특히 토종붕어, 잉어 ,메기 등 다양한 어자원이 풍부하며 겨울철 빙질의 상태에 따라 얼음낚시를 즐길 수 있고 저수지의 밤낚시 등불은 강화팔경의 하나로 불릴 정도로 아름답다고 합니다.

 

 

 

 

 

 

(16) 고려 대몽항쟁 시 고려대장경 목판을 조각한 선원사지(6코스)

 

강화군 선원면 지산리 소재 선원사지(사적 제259호)는 고려시대 대몽항쟁 당시 고려대장경 목판을 조각하던 곳으로 추정되는 사찰터입니다. 선원사는 고려시대에 몽골의 침략을 받아 강화도로 도읍을 옮긴 후 1245년(고려 고종 32) 당시 최고 권력자였던 최우(崔瑀)가 대몽항쟁의 정신적 지주로 삼고자 창건한 곳으로 대장도감(大藏都監)을 설치하여 팔만대장경을 조각했으며 팔만대장경 목판은 현재 합천 해인사에 봉안되어 있습니다.

 

 

 

 

 

 

(17) 장화리 갯벌 및 일몰조망지(7코스)

 

강화군 화도면 장화리 일몰조망지인 낙조대 인근에는 하트조형물과 포토존 안내문이 있습니다. 이곳의 일몰은 작은 섬들 사이로 저무는 태양이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고 하는군요. 낙조대에는 강화나들길 공식 조형물과 저어새 보호 안내문이 있습니다. 저어새는 멸종위기종으로 몸 길이가 약 80cm 내외, 몸무게는 약 1.5kg내외입니다.

 

 

 

 

 

 

(18) 외적의 침입에 대비한 북일곶돈대(7코스)

 

화도면 장화리 소재 북일곶돈대는 1679년(숙종 5년)에 쌓은 48돈대 가운데 하나로 미루지 돈대·장곶돈대·검암돈대와 함께 장곶보에 속했습니다. 돈대의 둘레는 122m, 석벽 높이는 130~350㎝로 시야각이 매우 넓어 경계 초소로서 탁월한 위치입니다. 숙종 때 강화유수 윤이제가 쌓은 것으로 함경도·황해도·강원도의 승군 8,000명과 경상도군위어영군사 4,300명이 동원되어 40일 만에 지었다고 합니다.

 

 

 

 

 

 

(19) 갯벌관찰과 교육장인 강화갯벌센터(7코스)

 

강화군 화도면 여차리 소재 강화갯벌센터는 강화군이 강화도 갯벌의 중요성을 알리고자 여차리 갯벌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곳에 2005년 설립한 자연친화적인 통나무 갯벌 교육장입니다. (7코스)강화갯벌의 전체면적은 약 353㎢이며, 특히 여차리-동막리-동검리를 잇는 강화남단 갯벌은육지로부터 최대 약 6km, 면적은 약 90㎢로 강화도 전체갯벌의 약 25%를 차지합니다. 강화남단 갯벌은 천연기념물이기도 합니다. 강화도는 많은 섬 분포로 해안선의 굴곡이 심하고 해수면이 잔잔한 만(灣)이 많아 갯벌이 잘 발달됩니다.

 

 

 

 

 

 

(20) 외침에 대비한 후애돈대(8코스)

 

강화군 길상면 선두리 소재 후애돈대는 조선 후기 숙종 5년(1697) 강화유수 윤이제가 쌓은 돈대로 1998년 완전하게 복원했습니다. 돈대는 외침의 방비를 위하여 강화도 섬 전체에 마치 톱니바퀴처럼 둘러쌓은 진지입니다.

 

 

 

 

 

 

(21) 초승달 모형으로 쌓은 분오리돈대(8코스)

 

강화군 화도면 사기리 소재 분오리돈대는 조선 숙종 5년(1679) 강화유수 윤이제(尹以濟, 1628∼1701)가 왕실의 명령을 받아 쌓은 48개 돈대중 하나입니다. 돈대는 적의 동태를 살피거나 공격에 대비하기 위해서 접경지역이나 해안지역 등의 군사 요충지에 세운 초소입니다. 강화도 돈대는 대부분 원형 또는 사각형인데 비해 이 돈대는 자연지형을 그대로 이용해 초승달 모양으로 축조한 것이 이채롭습니다.

 

 

 

 

 

 

(22) 교동도 입도의 관문이었던 월선포 선착장(9코스)

 

강화군 교동면 상용리 소재 월선포(선착장)는 교동대교가 개통되기 전까지 강화도 창후항에서 교동도로 입도하는 관문역할을 하던 곳으로 상업이 발달한 포구였으나 지금은 쓸쓸함이 묻어나는 추억의 장소로 변모했습니다. 그러나 앞으로 이곳에서 해변을 따라 교동대교 서단으로 이어지는 도로가 완공될 경우 예전의 영화를 되찾을 것으로 보여집니다.

 

월선포에서 본 북쪽의 교동대교

 

 

 

 

 

(23) 우리나라 최초향교인 교동향교(9코스)

 

강화군 교동면 읍내리 148번지 소재 교동향교(喬桐鄕校)는 조선 시대의 향교로 우리나라 최초의 향교이기도 합니다. 마침 문이 열려 있어 내부를 둘러보았지만 명륜당과 대성전의 문은 닫혀 있더군요. 필자는 관리인에게 향교의 문이 열려 있어 잘 둘러보았다고 감사를 표했는데, 그는 “전에는 명륜당과 대성전 문도 열었지만 방문객들이 전시품을 만지는 등 부주의한 행등을 하는 바람이 부득이 문을 닫았다”고 대답합니다.

 

 

 

 

 

 

(24) 고려시대에 창건된 화개사(9코스)

 

강화군 교동면 읍내리 소재 화개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소속으로 고려 때 창건되었는데, 한때는 고려 삼은(三隱)의 한 분인 목은(牧隱) 이색(李穡, 1328∼1396)이 이곳에 머물며 독서를 즐겼다는 매우 유서 깊은 사찰입니다. 현재는 법당과 요사채만 있는 소박하면서도 고즈넉한 절집이지요.

 

 

 

 

 

 

(25) 저어새를 형상화한 화개산전망대(9코스)

 

강화군 교동읍 고구리 소재 화개산 전망대는 스카이워크형 전망대로 폭58.5m, 너비67m, 높이32m에 달하며, 전망대의 디자인은 강화군의 군조인 저어새의 눈과 부리를 형상화하였고, 손에 닿을 것 같이 가깝지만 갈 수 없는 북녘을 향한 비상(飛上)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전망대에 서면 북쪽으로는 고구저수지와 교동벌판 및 북한의 연백평야를 조망할 수 있고, 남쪽으로는 석모도와 볼음도 등 수려한 강화의 다도해 경관을 볼 수 있는 화개정원의 랜드마크입니다.

 

 

 

 

 

 

(26) 최근 개원한 화개정원(9코스)

 

강화군 교동면 고구리 소재 화개정원은 교동도의 최고봉인 화개산(260m)의 북서쪽에 조성된 정원입니다. 화개산 명칭은 “산정(山頂)의 형태가 솥뚜껑을 엎어 놓은 것”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입니다. 2014년 7월 교동대교 개통된 이후 교동지역(도서·접경지역) 주민들의 관광자원 개발요구가 높아지게 되면서 화개산 일대 관광자원화 사업이 추진되었고, 연산군 유배지를 포함한 화개산 북서쪽일대에 화개정원과 화개산 전망대를 조성해 2023년 5월 13일 정식으로 개원하게 되었습니다.

 

 

 

 

 

 

(27) 조선의 폭군 연산군유배지(9코스)

 

강화군 교동면 고구리 소재 연산군 유배지는 조선의 제10대왕인 연산군의 위리안치 장면을 재현하고, 교동도 유배문화관을 설치해 역사교육의 현장으로 꾸몄습니다. 위리안치는 중죄인에 대한 유배형 중의 하나로 죄인을 배소에서 달아나지 못하게 하기위해 귀양을 간 곳의 집둘레에 가시가 많은 탱자나무를 돌리고 그 안에 죄인을 가두는 것입니다. 참고로 연산군(1476-1506)은 조선 왕조 역사에서 광해군과 함께 반정으로 폐위된 후 복위되지 못하여 조(祖)나 종(宗)으로 끝나는 묘호를 영영 끝까지 받지 못한 둘 뿐이었던 임금 중 1명입니다.

 

 

 

 

 

 

(28) 세상에서 가장 작은 교동 순례자의 교회(9코스)

 

강화군 교동면 대룡리 소재 교동 순례자의 교회는 2011년 제주(올레길 13코스)에 세워진 교회에 이어 세 번째로 지어진 세상에서 가장 작은 교회입니다. 교동초등학교 동쪽에 위치한 이 교회는 2020년 6월 김태헌 목사가 설립했는데 예배시간이 따로 정해지지 않고 방문객을 맞이하는 시설도 없이 나홀로 조용한 명상과 묵상을 할 수 있게 마련된 예배당입니다.

 

 

 

 

 

 

(29) 교동도 주민보호를 쌓은 교동읍성(9코스)

 

강화군 교동면 읍내리 소재 교동읍성은 조선 인조 7년(1629)에 처음 쌓았으며, 영조 29년(1753) 고쳐 쌓았고, 고종 21년(1884)에는 성문을 다시 세웠답니다. 성의 둘레는 약 430m, 높이는 약 6m로, 동·남·북쪽 3곳에 성문을 두었고, 각 문에는 망을 보기 위해 문루를 세웠는데, 동문은 통삼루, 남문은 유량루, 북문은 공북루라고 하였습니다. 동문과 북문은 언제 없어졌는지 확실하지 않으며, 남문인 유량루는 1921년 폭풍으로 무너져 반원 형태의 홍예문만 남아 있던 것을 2017년 복원한 것입니다.

 

                                                (제2부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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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ennpe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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