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전철 1호선 전동차는 금정역을 지나 복상중입니다.
노약자석에 앉아 있는 한 할아버지가
주머니에서 꼬깃꼬깃한 종이를 꺼내드니 한참동안 들여다봅니다.
그는 일어나서 전동차출입문 위에 붙어 있는 전철노선도를 한참동안 바라봅니다.
그래도 안심이 안 되는지 젊은이에게 묻습니다.
"가산 디지털역까지 가야하는데, 이 열차가 맞아?"
"예, 맞습니다. 앞으로 한참을 가야하며, 나중에 방송이 나옵니다."
노인은 자리에 다시 앉아 오래된 책을 읽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안내방송에 유심히 귀를 기울이기도 하고
또 바깥을 내다보며 역의 이름을 확인하는 모습입니다.
노인은 옆 사람들이 들리도록 말합니다.
"내가 대림역까지 가야 하는데, 가산디지털역에서 갈아타라고 해서요!"
이 때 전철노선도를 보던 젊은이가 노인에게 대답합니다.
"가산디지털 역에서는 두 정거장을 가야하지만 신도림역에서는 한 정거장만 가면 바로 대림역입니다.
그러니 신도림역에서 갈아타세요!"
"아, 그러는 게 좋겠습니다."
젊은이의 말에 옆자리의 할머니도 맞장구를 칩니다.
노인은 이제 안심이 되는지 조용히 앉아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정보입니다.
젊은이와 할머니에게는 미안하지만 할아버지가 길을 돌아가는 것을 모른다고 할 수가 없습니다.
나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말을 꺼냅니다.
"저어, 어르신, 대림역으로 가시려면 당초 계획대로 가산디지털 역에서 갈아타는 게 맞습니다.
신도림역을 경유하려면 가산디지털역에서 구로역을 지나 가야하고
또 신도림역은 갈아타기가 매우 복잡합니다.
따라서 신도림역을 경유하면 세 역을 가야하지만,
가산디지털 역에서는 바로 두 역만 가면 됩니다."
그랬더니 할머니가 제 말에 동의합니다.
"맞아요. 요즘 노인들은 전철을 자주 이용하니까 잘 알아요!"
졸지에 글쓴이도 노인의 반열에 오르고 말았지만,
할아버지는 나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는 가산디지털역에서 내립니다.
사실 젊은이나 할머니도 지하철노선을 정확히 몰랐을 뿐
할아버지를 도와주려고 했던 것은 사실입니다.
다행히 이해하고 잘 넘어갔지만 이들의 대화에 잘 못 참견할 경우
서로 얼굴을 붉힐 우려가 있으므로 매우 조심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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