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일을 맞아 관악산에 올랐습니다.
서울 지하철 2호선 사당역에서 사당능선을 타고
남쪽으로 오르면 정상인 연주대입니다.
그런데 관악문을 오르기 전 살며시 꾀가 났습니다.
관악문을 거쳐 정상에 오르는 길은
매우 까다로운 암릉길이므로 이 길을 좌측으로 우회해
아직 한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택한 것입니다.
한 구비를 돌아가니 넓은 공터가 나왔는데
큰 바위에 "관악사지 암각문"이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이 자리는 관악사가 있던 사찰 터였던 것입니다.
관악사지 암각문
뒤쪽에 보이는 연주대 불꽃바위
관악사지(冠岳寺址)는
1999년 단국대 매장문화연구소의 발굴조사결과
15세기에 축조되어 18세기 말 산사태로 인해
폐사되기까지 존재한 큰 사찰이었으며,
출토유물로 미루어보아 조선왕실과 밀접하게
관련된 사찰임이 입증되었습니다.
이곳에는 서쪽과 동쪽에 각각 2동의 법당을 포함하여
적어도 6개 정도의 전각이 있었으며,
청산당대사(靑山堂大師)의 사리를 모신 석종형 부도,
관악사지 우물 등이 발견되어 조선시대 불교와
건축사연구의 귀중한 유적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관악사지 우물
등산객들은 이곳을 지나가면서
주변에 흩어진 석조물을 바라보며
옛 선인들의 체취를 느끼고
휴식을 취하며 무거운 발걸음을 쉬어갑니다.
관악사 창건에 관해 연주암지에 신라 문무왕 17년 의상조사가 의상대를 창건하는 동시에 관악사를 개산하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조선태종 11년(1411)양령대군과 효령대군이 충령대군에게 세자위를 전위한 후 관악산에 올라 전위에 따른 심정을 달랬다고 하는데 효령대군은 이곳에서 2년간 수양을 하며 관악사를 고지(古址자)로부터 현 위치로 이축하면서 40간의 가람을 건설하였다고 전하고 있다. 그러나 1999년 과천시가 단국대학교 매장문화연구소에 의뢰하여 발굴조사를 한 결과 도자기편, 기와편 등 출토유물이 15세기전반부터 18세기까지 나오고 있어 이곳 관악사지는 효령대군이 이전 조성한 것을 뒷받침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관악사지는 적어도 6개이상의 건물이 있었으나, 이는 일시에 건립된 것이 아니고 시기에 따라 일정한 가람을 건립하고 이것이 수해에 의해 폐사되며 인근으로 옮기거나 혹은 그 자리에 대지를 조성하여 새로운 가람을 건립하여 명맥을 유지하다 18세기에 폐사된 것으로 조사되었다. 사찰건물은 급경사 지역에 석축을 쌓아 평탄하게 만든 후 평탄대지를 따라 누층적으로 축조하였는데 이는 지형을 최대한 이용하면서 인공적인 건물과 자연지형과 조화를 꾀하려는 전통적인 산지 가람의 배치 방법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유일하게 소실된 것으로 조사된 연주대 바로 밑의 다지구 건물은 구국기도사찰이 있었던 곳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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