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주말드라마 <내 마음이 들리니>는 MBC 홈페이지에서 "후천성 청각장애를 딛고 일어서는 남녀의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를 그린 휴먼 드라마"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또 드라마 제목처럼 봉영규(정보석 분)와 그의 친구인 이승철 아버지간의 끈끈한 우정은 분명히 휴먼드라마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출생의 비밀을 이용한 잔인한 복수를 다룬 극입니다.
이 스토리의 근간은 한 여인의 남편에 대한 무자비한 복수에서 출발합니다. 어찌 보면 뻔한 이야기인데도 22회까지 묵묵히 이를 시청한 것은 7세 정도의 지능을 가진 정보석(봉영규 역)의 소름끼치는 바보 연기, 매우 징한 전라도 사투리를 자연스럽게 구사하면서 치매노인을 연기하는 윤여정(황순금 역)의 신들린 연기, 약간은 어눌하지만 언제나 명랑하고 현실에 순응하는 황정음(봉우리 역)의 티 없는 연기에 매료된 때문입니다.
그런데 한 여인의 복수극은 이 드라마 전체를 암울한 구렁텅이로 몰아넣습니다. 물론 우경그룹 최진철(송승환 분) 회장의 본 부인인 태현숙(이혜영 분)은 남편 최진철이 충격으로 쓰러진 친정 아버지를 죽이고, 이를 목격한 아들 차동주(김재원 분)가 사다리에서 떨어져 기억상실증과 청각장애인이 되었기에 남편에 대한 복수의 칼을 간 것은 너무나도 당연합니다.
문제는 태현숙이 최진철과 여비서였던 김신애(강문영 분)사이에서 낳은 아이인 봉마루(남궁민 분)를 장준하로 이름까지 바꾸어 16년 동안이나 자신의 친아들처럼 키워 이를 이용하여 최진철에게 복수하려 한 것입니다. 최진철은 장준하가 자신의 친자인줄도 모르고 그를 철저하게 파멸시키려고 노력하였으니 세상에 이런 비극이 어디 있겠어요? 물론 최진철은 지은 죄의 값을 치러야 하겠지만 아무것도 모르고 이용당한 봉마루의 인생은 엉망이 되고 맙니다.
◆ 잔인한 복수극에 모두 미친 군상들
▲ 가장 큰 피해자인 장준하의 복수극
봉마루는 어렸을 때부터 바보 아버지 봉영규가 싫었습니다. 더욱이 봉영규가 청각장애인인 미숙(김여진 분)을 새엄마로 들였을 때 봉마루는 미칠 것만 같았습니다. 그는 장학금을 주던 최진철의 부인 태현숙의 따뜻한 마음씨에 이끌려 미국으로 함께 가서는 그녀의 아들 노릇을 하며 의사로서 성공합니다. 태현숙이 원수의 아들인 봉마루(장준하)를 이렇게 극진하게 대하며 의학박사까지 공부시킨 것은 청각장애자가 된 친아들 차동주의 형으로 동주가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할 수 있도록 보살피게 하고, 나중에 장준하 스스로 친부인 최진철에게 복수하도록 하려는 일석이조를 노린 것입니다. 이런 태현숙의 음모를 꿈에도 모르는 장준하는 17년 후 성인이 되어 귀국한 뒤에도 봉영규의 아들인 봉마루가 아니라 철저하게 태현숙의 아들인 장준하로 살아간 것입니다.
그렇지만 세상에는 어떤 비밀도 반드시 밝혀집니다. 특히 드라마에서는 더욱 그러합니다. 봉마루는 자신의 생모가 김신애이며, 생부가 최진철임을 알고는 진저리를 쳤습니다. 김신애는 최진철과 불장난으로 임신을 했지만 최진철은 원치 않은 아이를 지우라고 했습니다. 그렇지만 김신애는 언젠가는 본처인 태현숙을 밀어내고 최진철의 아내가 되기 위해 아이가 필요했고, 출산한 후 이 아이를 어머니인 황순금에게 맡겼던 것입니다. 황순금은 이 아이를 봉영규의 호적에 올리고 봉마루라고 이름을 지었지요. 봉마루로서는 친부와 친모 모두가 자신들이 살기 위해 어린 아이를 버렸음을 알고는 부모에 대한 원망으로 몸서리친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장준하는 주가조작혐의로 검찰에 구속된 상태입니다. 태현숙이 일을 저지르고는 이를 장준하에게 뒤집어씌운 것입니다. 장준하가 자신의 친자임을 모르는 최진철은 지검장을 만나 장준하를 무겁게 처벌하라고 당부까지 합니다. 사정이 이러하니 태현숙은 속으로 쾌재를 부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장준하는 이 모든 것을 태현숙이 꾸민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난 17년 동안 태현숙이 천사의 탈을 쓴 이리임을 장준하가 알았으니 복수의 대상이 더 늘어난 셈입니다. 장준하는 태현숙이 최진철과 결혼할 때 데리고 온 아들 차동주도 자신을 속인 것이라고 의심합니다. 이제 장준하는 모든 비밀을 알아 버렸습니다.
장준하는 면회 온 태현숙에게 더 이상 나를 가지고 장난치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최진철은 정준하를 보석으로 석방시킨 부두에서 부자지간으로 처음 만납니다. 최진철이 무엇을 해주면 지난 세월이 보상되겠느냐고 하자 장준하는 당신의 가장 소중한 것을 달라고 합니다. 장준하는 아무리 부정해도 내가 당신 핏줄이라면서 "아버지, 도와달라!"고 천연덕스럽게 말합니다. 아무래도 장준하의 비열한 표정으로 봐서 최진철을 아버지로 받아들인 것 같지는 않은데 그가 어떤 꿍꿍이속을 가지고 있는지 현재로서는 알 수가 없습니다.
장준하는 차동주에게 "네가 태현숙 아들이기 때문에 밉다"고 합니다. 그리고 생모인 김신애에게는 "사람 같지 않은 인간이기에 사람 취급 할 수 없다"며 최진철이 붙여준 비서를 시켜 집에서 끌어냅니다. 또한 차동주가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에너지 셀의 공장가동을 중단시키는 등 차동주에 대한 복수를 시작합니다. 복수는 복수를 가져온다는 말은 진리입니다. 장준하의 복수극이 어디로 튈지 모르겠습니다.
▲ 결코 떳떳치 못한 김신애의 업보
김신애란 여자는 결코 동정 받을 인물은 아닙니다. 그녀는 본부인이 있는 최진철과 정을 통해 온 여자이니까요. 그녀는 우선 자신이 살기 위해 아들 봉마루를 일단 버렸습니다. 그렇지만 남편인 최진철과 내연관계임을 알게 된 태현숙은 갖은 방법으로 김신애를 무시하고 골탕먹입니다. 최진철과 김신애는 아들인 봉마루를 찾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면서 경찰에 의뢰해 그의 몽타주까지 그렸지만 항상 옆에서 보는 장준하가 봉마루임을 모르는 바보들입니다. 최진철은 봉마루에게 자꾸만 아들 같은 느낌이 든다고 했지만, 김신애는 어떻게 그토록 자기자식을 알아보지 못하는지 정말 한심할 따름입니다.
장준하가 구속된 날 태현숙은 최진철과 김신애가 함께 있는 자리에서 와인잔을 김신애의 얼굴에 끼얹으며 수모를 줍니다. 속이 상한 김신애는 황순금 집으로 왔지만 누구도 환영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가족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으며 장준하가 바로 봉마루임을 알게 됩니다. 그녀는 단숨에 최진철에게 달려가 사실을 털어놓습니다. 소스라치게 놀란 최진철은 이 모든 음모를 태현숙이 꾸민 것으로 알고는 그녀를 죽여버리겠다고 악을 씁니다. 김신애는 검찰에서 풀려난 봉마루가 자신을 집에서 좇아내자 하늘이 노랬을 것입니다. 자신이 살기 위해 아들을 버렸던 그 업보를 지급 받고 있는 중이네요.
▲ 친모 태현숙에 대한 차동주의 반감
최진철의 의붓아들 차동주는 어렸을 때 최진철이 외할아버지를 살해하는 현장을 목격하고는 사다리에서 떨어져 청력을 잃었습니다. 그는 어머니 태현숙에 의해 의붓아버지 최진철에 대한 복수를 하도록 길들여집니다. 그런데 봉우리로부터 하필이면 형으로 의지하면서 생사고락을 함께 했던 장준하가 최진철의 아들이라는 말을 듣고는 믿을 수가 없습니다. 어머니가 이런 사실을 숨기고 장준하를 복수의 도구로 삼은 데 대하여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참을 수가 없을 지경입니다.
차동주는 장준하를 면회하고는 동생으로서 아무것도 모른 채 형을 힘들게 한데 대하여 사과하지만 장준하는 이런 차동주의 진정성을 믿지 못합니다. 차동주는 제발 진정하기를 원하는 태현숙의 전화를 받고는 이어폰 수신기와 음성기록기를 집어 던지며 절규합니다.
▲ 영혼이 맑은 남자 봉영규의 한탄
봉영규는 비록 지적연령은 낮지만 모든 사람들을 편하게 해주려고 노력합니다. 치매에 걸린 노모를 기쁘게 해주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마다하지 않습니다. 사장통을 오가며 노모에게 자전거를 태워주기도 하고 또 어머니가 우울할 때면 "저 푸른 초원에서~"란 노래를 신나게 부릅니다. 그는 김신애의 아들 봉마루를 친아들처럼 여기고, 잠시 함께 산 미숙의 딸 봉우리를 친딸처럼 귀여워합니다. 노모인 황순금이 치매에 걸려 자신을 알아보지 못할 때 어머니의 기억력을 깨우기 위한 그의 처절한 노력은 시청자들의 눈물샘을 자극합니다.
▲ 봉우리를 짝사랑하는 이승철의 회한
이승철은 치킨대학(치킨 학원)을 졸업한 후 가게를 열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자기의 색시로 봉우리를 점찍어 두었건만 어느 순간부터 봉우리의 마음속에는 피아노를 가르쳐 주던 얼굴이 하얀 남자 차동주가 차지합니다. 이승철은 봉우리 할머니와 아버지가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내 가족처럼 돌봐줍니다. 이승철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봉우리에게 그만 확 결혼하자고 농담반 진담반으로 말하지만 봉우리는 이 말을 애써 외면합니다. 급기야 이승철은 나중에 자기처럼 멋진 남자를 떠나보낸 후 후회하지 말고 지금 꼭 붙들라고 회유하지만 봉우리의 마음은 이미 차동주 뿐입니다. 이승철은 차동주와 따귀 한 대씩 교환했지만 이런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겠지요. 봉우리의 사랑을 차지하지 못하는 이승철의 마음이 안쓰러울 따름입니다.
◆ 제작진에게 제갈공명의 지혜를 기대하며
형제처럼 서로 믿고 의지하면서 지냈던 장준하와 차동주는 이제는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넌 듯 합니다. 장준하에게 차동주는 자신의 인생을 엉망으로 만든 태현숙의 아들이며, 차동주에게 장준하는 자신의 어머니 원수인 최진철의 아들이기 때문입니다. 차동주는 장준하를 이해하려고 했지만 이제 복수의 화신으로 변한 장준하는 이를 용납하지 못합니다. 사실 최진철에게 차동주는 처 태현숙이 데리고 온 호적상 아들이며, 장준하는 친자입니다. 최진철의 의붓자식과 친자가 벌이는 복수극은 참으로 잔인한 이야기입니다.
봉우리의 생모인 미숙(김여진 분)은 공장화재사고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런데 몇 회전부터 나미숙이라는 이름으로 재등장해 에너지 셀의 본부장으로 일하면서 자꾸만 봉영규 가족과 접촉하고 있습니다. 나미숙이라는 캐릭터도 제작진이 막판 반전용으로 숨겨둔 게 아닌지 의문입니다. 아직도 8회의 방송이 남아 있으니 제작진은 어떻게 제갈공명의 지혜로 잔인한 복수극으로 꼬인 실타래를 휴먼드라마로 승화시킬지 두고 보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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