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를품은달, 상선내관 정은표의 백만불짜리 표정연기

 

                                                                     상선내관 형선 역의 정은표 

조선의 임금에게 상선내관은 어떤 존재일까요? 현재로 미루어 보면 아마도 대통령 수행비서쯤 될 것입니다. 사극 드라마에서 이 상선의 존재는 비록 조역이지만 상당히 자주 등장합니다. 왜냐하면 바늘에 실 가듯 임금이 있는 곳에는 대전이든 침소든 외부행차든 항상 수행하여 곁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미 종영된 MBC <동이>에서 상선 역을 맡은 배우 정선일은 인기를 독차지했습니다. 일개 궁녀에 불과했던 동이와 임금을 합방시키는데 결정적인 공을 세웠기 때문입니다. 정선일의 표정 하나 하나가 드라마를 명품으로 만드는데 크게 이바지했다고 생각합니다.

                                                                  <동이>에서 상선 역의 정선일  

MBC 수목드라마 <해를 품은 달>에서도 정선일에 필적할 만한 상선이 등장했습니다. 바로 상선내관인 형선을 맡고 있는 배우 정은표입니다. 왕세자 훤(여진구 분)이 저자거리에게 연우(김유정 분)를 만난 후 그녀를 못 잊어 상선을 보내 연우를 데려오게 하였습니다. 상선이 연우에게 다가가서 신원을 확인했지만 무슨 생각에서인지 연우는 자신의 신분을 부인했습니다. 나중에 상선이 중간에서 일을 그르친 것을 안 훤은 상선을 크게 질책했지만 미안하고 죄스러운 상선은 겸연쩍은 얼굴로 고개를 숙여야만 했습니다.

 

연우는 성조대왕(안내상 분)의 기지로 훤의 세자비로 간택되었지만 대왕대비(김영애 분)와 외척인 윤대형(김응수 분)의 술수로 국무 장녹영(전미선 분)의 주술을 받아 죽은목숨이었습니다. 그러나 장녹영은 먼저간 신력의 소유자 아리(장영남 분)의 유언을 실천하기 위해 연우를 죽이는 대신 기절시킨 후 다시 살려내어 자신의 딸로 변신시켜 무녀로 만들었습니다. 문제는 연우가 과거의 기억을 모두 상실한 것이었는데요. 몇 년의 세월이 흐르고 이제는 조선의 왕으로 등극한 세자 훤(김수현 분)은 윤대형의 딸 보경(김민서 분)을 중전으로 맞이했지만 합방도 하지 않은 채 연우에 대한 그리움에 마음을 열지 않습니다.

임금은 시름시름 앓다가 온양에 요양까지 다녀왔지만 아직도 몸이 매우 부실합니다. 대왕대비는 빨리 보경의 몸에서 원자아기를 생산해야 왕실의 안정과 자신의 세력을 지킬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하고는 왕실을 떠난 국무 장녹영을 데려오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런데 장녹영이 이를 거부하자 관상감을 비롯한 박사들은 장녹영의 딸인 무녀 연우(한가인 분)를 보쌈해 데리고 왔습니다. 대왕대비는 연우를 인간의 부적인 액받이무녀로 사용하라고 지시합니다.

시녀들은 연우를 목욕시키고 새옷을 입힌 다음 왕이 잠자고 있는 침소로 데리고 갑니다. 연우가 임금의 이마에 손을 얹고 있는 동안 임금은 꿈속에서 어렸을 적 연우와 함께 인형극을 보던 장면을 떠올리며 행복해 합니다. 기상한 임금은 몸이 한결 가벼워졌다며 누가 다녀갔는지 묻는데 상선은 관상감이 액받이 부적을 넣었다고 답변합니다. 다음날 왕궁에 나타난 장녹영은 연우가 액받이 무녀가 된 것에 대해 크게 놀라며 궁을 떠나야 한다고 말했지만 연우는 무녀인 자신이 누군가를 도와줄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무녀의 삶 아니냐며 머물겠다고 합니다.

 

임금은 상선이 보는 앞에서 엎드려 팔굽혀펴기를 계속하자 상선은 "기껏 자리 잡은 옥체의 기가 다시 흩어질까 두렵다"고 걱정했는데, 임금은 "참 말이 많구나. 피가 뜨거워 온 몸의 장기가 반란을 일으키니 이렇게 라도 운동을 해야 할 것이 아니냐? 과인은 그 누구보다도 그 어느 때보다도 강건해져야 큰 뜻을 이룰 수 있다"고 말합니다. 임금은 몸이 건강해야 윤대형을 비롯한 외척 및 비리를 일삼는 그 추종세력과 당당히 싸워 이기겠다는 결의를 천명한 것이지만 상선은 이를 다른 뜻으로 오해하여 엉뚱한 맞장구를 칩니다.

임금을 빤히 쳐다본 상선은 "이루실 것이다. 반드시 이루실 것이다. 분명 전하와 중전마마를 쏙 빼어 닮은 원자 아기씨를 생산할 것"이라고 오버한 것입니다. 임금은 상선에게 "어찌 임금의 깊은 어심(御心)을 읽지 못하느냐? 생각하는 것이 이리 저급해서야. 이래서 내가 너랑 말을 잘 섞지 않는다. 꼴도 보기 싫으니 당분간 돌아서 있어라"고 질책합니다. 임금이 상선에게 내리는 가장 엄한 벌이 바로 돌아서라는 것입니다. 민망하고 무안한 상선이 엉거주춤 돌아서며 짓은 표정은 정말 백만불 짜리 입니다. 앞으로 상선의 연기를 지켜보는 것도 드라마를 보는 재미를 더해 줄 것으로 판단합니다.  

 

다시 왕의 침실로 들어간 연우가 왕의 이마를 손으로 짚고 있는데 임금은 연우와 팔베개를 하며 놀던 시절을 떠올리고는 미소를 짓습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눈을 뻔쩍 뜨고 연우를 잡아 쓰러뜨리고는 "네 정체가 무엇이냐? 말해보라!"고 물었습니다. 왕의 물음에 연우는 당연히 액받이 무녀라고 대답하겠지만 왕은 점차 연우의 존재를 알게 될 것입니다. 

솔직히 연우는 기억력을 상실했기에 임금을 알아보지 못한다 손치더라도 임금이 지난번 온양에서 짙은 안개로 길을 잃고는 연우를 만나 여러 가지 대화를 나누며 "월"이라는 이름까지 붙여주고서도 옛 정인(情人)을 알아보지 못한 것은 다소 어색했습니다. 물론 임금은 어린 왕세자시절 연우를 매장하는 현장을 직접 목격했으니 그녀가 살아있으리라고 생각할 수는 없겠지요. 그래서 왕도 당시 "죽은 아이가 살아있을 리가 없다. 그저 닮은 여인일터. 내가 착각했겠지. 그리움이 나를 홀리고 있다"고 한탄했을 것입니다.

 

                                       [다음 메인에 게재되었던 글입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