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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섹스폰 노신사 유성준  역의  김용건 

 

<빛과 그림자>는 1960년대부터 그 후 50년 간 엔터테인먼트의 세계를 그린 복고풍 드라마로 50부작 중 이미 20부가 방영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등장인물에도 없는 섹소폰을 부는 노신사가 혜성 같이 나타나더니 그 후 거의 매회 등장하고 있습니다. 이 노신사의 이름은 유성준(김용건 분)입니다. 

이 섹소폰 사나이가 처음 등장한 것은 제17부에서 강기태(안재욱 분)의 어머니 박경자(박원숙 분)와 차수혁(이필모 분)의 어머니 김금례(김미경 분)가 공동으로 운영하는 순양식당입니다. 그는 국밥 한 그릇을 게눈 감추듯 비운 후 지금 당장 돈이 없으니 섹소폰을 맡겨두고 다음에 값을 지불해 찾아가겠다고 했습니다. 김금례는 섹소폰 연주도 하느냐고 묻고는 연주해주면 대신 밥값을 내 주겠다고 제의하자 그는 "인생은 나그네 길"이란 곡을 멋지게 연주했습니다.

다음날 다시 식당을 찾아온 유성준은 외상음식값을 내려했지만 두 여자는 이미 연주를 들은 것으로 밥값은 해결되었다고 사양하자 그는 오늘 음식값이라고 합니다. 두 여자는 이 노신사에 홀딱 반한 모습입니다. 그는 혹시 이 근처에 월세방이 없는 지 물었는데 박경자는 집에 문간방이 비었다고 합니다.


문간방으로 이사를 온 유성준은 10여 켤레의 구두를 매일 손질합니다. 왜 그렇게 열심히 구두를 닦느냐는 질문에 그는 "구두는 내 자존심"이라고 대답하네요. 그런데 어느 날 유성준이 연탄가스에 중독되는 사고가 발생합니다. 다행이 일찍 발견되어 마당으로 옮긴 후 김칫국물을 먹이는 등 정성을 다합니다.

그 후 유성준은 박경자에게 정색을 하고는 말합니다. "내가 법조계에 아는 지인(知人)이 좀 있다. 알아보니 세입자가 연탄가스에 중독되면 주인인 박 여사는 형사사건으로 구속이 가능하다고 한다. 왜냐하면 하자 없는 주택을 제공해야하는 의무를 소홀히 한 업무상과실치사 미수죄가 되기 때문이다. 적당한 선에서 합의를 해주면 고소할 생각은 없다." 겁이 덜컥 난 박경자는 그럼 어떻게 해 주면 되겠느냐고 물었는데, 유성준은 일단 식사부터 한 후 조건을 제시하겠다고 말합니다. 박경자는 청국장에 계란 후라이까지 준비하여 한 상 차려 줍니다.

박경자는 아침에 유성준에게 밥을 차려 주며 숭늉까지 대접합니다. 그는 "내가 제시한 조건이 무리라고 생각되면 언제든 말하라. 나도 구차한 것은 질색이라서 법적으로 깔끔하게 정리하는 게 좋다"고 하자 박경자는 "아니다"라고 극구 부인하는 것으로 보아 그 조건이라는 게 아마도 밥을 차려 주는 것인지도 모를 일입니다. 사실 나그네로서 객지에서 누가 따뜻한 밥을 차려주면 정말 행복이거든요. 밥상을 들고 나오는 어머니를 본 강기태는 "월세를 놓았다더니 하숙까지 치느냐"고 물어봅니다.

 

밖으로 나온 유성준은 기태를 보자마자 주인집 아들 같은데 인사가 늦었다면서 이름을 밝힙니다. 비로소 그의 이름이 알려지는 순간이군요. 그는 또 다시 구두를 닦기 시작하자 기태는 왜 매일 구두를 닦는지 그 이유를 묻습니다. 정색을 한 그는 "나한테 이걸 왜 하냐고 묻는 건 밥을 왜 먹나, 숨을 왜 쉬나 묻는 거나 다름없다"고 대답합니다. 유성준의 대답에 놀란 기태가 하는 일이 무엇인지 묻자 그는 한 때는 쇼단에 몸담았는데 지금은 은퇴했다"고 합니다. 놀란 기태가 "쇼단?"고 반문하자 그는 섹소폰 연주자였다고 하네요.   

박경자가 집에서 밥을 차려 주며 유성준의 호감을 사려고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그가 데이트 상대로 고른 여자는 김금례입니다. 그는 보리수다방에서 김금례를 앞에 두고 축음기에서 흘러나오는 감미로운 노래를 눈을 감은 채 조용히 음미하고 있습니다. 김금례가 식당을 오래 비울 수 없다며 할 말이 무언지 묻자 유성준은 "이 노래를 작곡한 길옥윤이나 이봉조가 모두 내 후배다. 내 앞에서 함부로 숨도 못 쉬던 친구들이 정말 출세했다. 나는  김 여사 처음 본 날 밥값대신 연주 청해 듣던 모습에 감동 받았다. 진정으로 예술을 사랑하는 분이라고 느꼈다. 김 여사에게 내 마지막 예술혼을 불태우고 싶다"고 고백합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유성준의 고백에 놀란 김금례는 서둘러 식당으로 왔는데, 순덕이로부터 문간방 유씨와 함께 나갔다는 말을 들은 박경자는 금례에게 무슨 볼일이 있었느냐고 시샘하며 싸늘하게 말합니다. 유성준을 사이에 두고 박경자와 김금례의 삼각 러브라인이 형성될 듯 하군요.

이정혜와 꿈 같은 데이트를 즐기고 귀가한 강기태에게 양동철(류담 분)은 한양구락부 첫 무대 서는 날인데 일진이 어떤지 물었습니다. 한약구락부 공연이야기가 나오자 유성준은 기태의 하는 일을 물었는데 양동철이 기태를 가리키며 빛나라 쇼단 단장이라고 소개합니다. 유성준은 빛나라 쇼단의 단장은 신정구(성지루 분)인데 어찌된 일이냐고 묻자 이번에는 기태가 놀랍니다. 유성준은 "신정구를 내가 키웠다"고 하는군요. 자리를 옮긴 기태일행은 유성준이 연탄가스 마신 후로 월세와 밥값도 안내고 생활하는 이상한 사람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노상택(안길강 분)이 신정구를 회유하기 위해 나눈 이야기를 보면 맨 처음 노상택-신정구 두 사람이 인연을 맺은 것은 지금으로부터 15년 전인 4.19때 대구 동성극장에서 상하이 쇼단의 유성준 단장을 만난 때라고 했습니다. 따라서 유성준의 이야기에는 거짓이 없어 보입니다. 사실 김용건 같은 비중 있는 배우가 등장하여 연탄가스 마신 일을 두고 박경자를 곤경에 빠뜨리는 짓은 하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월세 안내고 밥을 공짜로 얻어먹는 정도는 애교로 봐줄 수 있거든요.

유성준으로서는 무전취식(無錢取食)하는 동안 곤경에 처한 강기태를 도와줄 것으로 예상됩니다. 자기가 키워낸 신정구를 불러 설득할 수도 있고, 또 본인이 직접 한양구락부 무대에 설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가 김금례에게 길옥윤과 이봉조가 자기의 후배라고 했으니 그도 역시 유명한 작곡가일 가능성도 농후합니다. 현재 유명한 작곡가라는 방춘수 선생과도 잘 알지도 모릅니다. 유성준이 순양식당에 등장한 후 강기태의 집에서 생활한다는 것은 어려움에 처한 강기태에게 여러모로 희소식이 될 것으로 보여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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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ennpe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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