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희 역의 전인화
20년 이상 외국에 머물다가 최근 귀국한 고준영(성유리 분)의 친오빠 하인우(진태현 분)는 친구인 최재하(주상욱 분)에게 다음과 같은 말로 자신의 심경을 토로한 적이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모르는 여자 애 데리고 와서 이 순간부터 얘가 네 동생 인주라고 선언하고, 엄마는 처음 본 애한테 인주라고 정성을 쏟고, 착한 인주라고 연기하는 그 애나 모두 다 미친 사람들 같은데, 우리 식구들 모두 미쳤다고 광고할까? 그래서 내가 도망친 거야! 지금 이 순간부터 인주 이야기하지마!"
사실 정신이 바로 박힌 사람들이라면 이런 말도 안 되는 설정에 가족인 인우뿐만 아니라 시청자들도 답답해서 미칠 지경이었거든요. 그렇지만 사고가 발생할 당시의 상황을 되돌아보면 인우가 미친 사람들이라고 말하는 그런 장면을 제작진은 참 잘도 연출했습니다. 남편의 외도와 이혼요구라는 충격적인 사실에 자살미수사건을 저지른 성도희(전인화 분)가 딸인 하인주가 사고를 당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미친 듯이 찾아 헤매다가 어린 송연우를 발견하고는 친딸 인주라고 해 버렸으니, 남편이었던 하영범(정동환 분)은 이 모든 사태의 원인제공자로서 정신나간 아내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러니 하인우로서는 기가 막힌 일이지요.
문제는 가짜 하인주(서현진 분)입니다. 무희였던 생모가 죽고 홀로 내버려진 인주로서는 자신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졸지에 유복한 가정의 딸로 둔갑하고 말았으니 불행 중 다행이었겠지요. 어린 가짜 하인주는 양모인 성도희가 자신을 진짜 하인주로 기억하도록 오빠 하인우의 일기장에서 인주에 관한 모든 것을 알아내 그대로 행동합니다. 물론 불우한 환경의 인주가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눈물겨운 노력을 한 것을 영악하다고 나무랄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문제는 성인이 되어서도 그 집착을 버리지 못했다는 것이지요. 하인주와 고준영이 공생할 수 있는 길이 없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인주는 자신이 송연우임을 아는 하영범과 하인우에게 만약 진짜 딸이 나타나거나 성도희의 잃었던 기억이 정상적으로 돌아올 경우 이를 기꺼이 받아들인다고 했더라면 성도희-하영범 부부는 낳은 정(고준영)과 기른 정(하인주)을 모두 인정하고 정말 한 가족으로 살아갈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인주의 제자리를 지키겠다는 그릇된 집착이 그녀를 악의 화신으로 만들고 말았습니다. 물론 고준영이 너무 늦게 나타난 탓도 있지요. 하인주로서는 20년 이상 성도희의 친딸로 살아오며 아리랑 명장후계자까지 올랐으니 이제는 그 자리를 내어주기 싫었을 것입니다. 하인주가 최재하에게 지금까지 자신의 생일에는 "엄마의 기억이 안 돌아오기를 빌었다. 기억이 돌아와 '넌 누구니?'라고 말할까 두려웠다"고 실토했으니까요.
이 답답한 상황에 종지부를 찍은 이들은 하영범-인우 부자입니다. 하인우가 가족 외식장소에 고준영을 데리고 나타난 것입니다. 고준영을 본 성도희는 가족모임에 나타난 준영을 예의 없는 애로 매도했는데, 준영이 인우를 무심코 오빠라고 부른 게 화근이었습니다. 성도희는 오빠라는 호칭에 "가족 모임에 초대할 만큼 가깝다는 사이냐"고 되물었는데, 인우는 누구보다도 가까운 사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이런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던 성도희와 고준영이 서로 나가려고 하자 보다 못한 하영범이 소리쳤습니다. "그만해! 준영이 당신 딸이야!" 놀란 성도희에게 얄미운 인주가 나서 "엄마, 아빠와 오빠가 장난치고 있다"고 했습니다. 이 순간까지도 인주는 마음을 내려놓지 못한 탓입니다. 성도희는 모두들 미쳤다며 인주를 데리고 나갔습니다. 정작 미친 사람은 자신임을 모른 채 말입니다.
술집으로 따라온 인주가 인우에게 엄마가 받을 충격은 생각지 않고 비밀을 폭로해 버렸으니 속이 시원하냐고 물었는데요. 인우는 정색하고 쏘아 붙였습니다. "오늘 네 훌륭한 연기가 정말 엄마 때문이니? 넌 하인주가 되고 싶었어! 너 때문에 내 동생이 엄마-아빠 소리를 못해! 소름끼치고 징그러운 네 욕심 때문에!"
한편, 백설희(김보연 분)는 "친딸을 버리고 세상을 속인 비정한 모정"이라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만들어 고준영에게 보여주며 성도희를 곤경에 빠뜨리려 하였습니다. 이에 준영은 아리랑주방으로 가서 음식조리방식의 변경을 지시했고 이를 거부하는 주방장 임도식(박상면 분)을 해고했습니다. 성도희가 나타나 준영에게 당장 나가라고 소리쳤지만 준영은 "명장님은 나를 해고할 권한이 없다"며 대들었습니다. 그리고 준영은 어렸을 적 숨바꼭질하던 일, 엄마가 요리할 때 인주가 북을 치며 입으로 소리내던 일, 봉선화로 손톱에 물들이던 일, 지난번 약재창고에서 안겼던 일 들을 상기시키며 다시금 성도희를 포옹하고는 엄마의 기억을 되살리려고 노력하였습니다. 지금까지의 상황을 어렴풋이 기억한 도희는 준영에게 "넌 뭐냐?"고 말하며 준영을 밀치고는 정신을 잃었습니다. 이런 와중에 하인주는 쿠킹 스토리라는 TV 프로그램에 성도희 명장의 딸 하인주로 출연하여 요리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주어 하인우를 더욱 화나게 만들었습니다.
이 일로 정신의 혼란을 겪은 성도희는 잠을 자다가 깨는 현상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하영범은 어렸을 적 진짜 인주의 사진 두 장을 도희의 침대에 놓아두었는데, 사고당시를 기억하다가 깨어난 도희가 이를 보고는 크게 놀랐습니다. 주방으로 간 도희는 요리에 집중하려 하지만 자꾸만 어린 인주 생각 그리고 그동안 자신이 준영을 혼내는 장면을 떠올리며 고통스러워했습니다. 도희는 고준영의 환영을 보고 손짓했지만 준영이 떠나려 하자 "인주야!"라고 부르며 제26회가 끝났습니다. 고준영을 보고 인주라고 부르며 절규하는 성도희는 이제 과거기억을 되찾은 듯 보여집니다.
사실 성도희의 기억이 돌아올 것을 기다리기 이전에 이 답답한 상황을 끝낼 수 있는 방법은 있었습니다. 의사인 하영범이 고준영과 유전자 검사를 하여 그 결과를 성도희에게 보여주었더라면 오케이이거든요. 그런데 드라마에서는 거의 언제나 손쉬운 방법을 두고 빙빙 돌아가는 경향이 있습니다. 물론 하영범의 진실폭로에 미친 사람들이라고 매도한 성도희가 유전자 검사결과도 조작된 것이라고 인정하지 않으면 그만이기에 제작진은 기억력 회복이라는 정도를 택한 것이겠지요. 이제 기억을 되찾은 성도희가 친딸 고준영에게 그동안 구박하고 오해한 것을 사과할지 다음 주말까지 기다려보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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