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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 부평리 소재 봉선사는 운악산(275m) 남단에 있는 고려전기인 광종 20년(969) 법인국사 탄문((坦文)이 창건한 천년고찰로 대한불교조계종 제25교구 본사입니다. 창건 당시에는 운악사라고 하였으나 조선 예종 1년(1469) 세조의 비 정희왕후(貞熹王后) 윤씨(尹氏)가 세조를 추모하여 능침 보호를 위해 89칸의 규모로 중창한 뒤 봉선사(奉先寺)로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봉선사의 현판은 예종이 직접 썼다고 합니다.
조선 명종 6년(1551) 문정왕후에 의해 교종의 중심사찰로 지정되어 여기서 승과를 치르기도 하는 등 전국 승려와 신도에 대하여 교학을 진흥하는 중추적 기관 역할을 담당하였습니다. 그러나 임진왜란 때 불타 여러 번 증축되었으며, 6.25 전쟁 때 다시 법당과 함께 14동의 건축물이 소실된 이후 1959년부터 화엄(華嚴), 운경(雲鏡), 능허(凌虛), 운허(耘虛), 월운(月雲) 스님이 꾸준히 재건해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봉선사 입구에는 운악산 봉선사 현판이 걸린 큰 규모의 솟을대문이 있는데 얼핏 보면 일주문 형식이지만 실제 일주문은 주차장을 지난 안쪽에 있습니다. 안쪽 일주문에는 敎宗本刹奉先寺(교종본찰봉선사) 현판이 걸려 있네요. 일주문 좌측에는 운악산 봉선사 표석과 함께 3.1운동 만세시위지라는 안내문도 보입니다. 이곳은 봉선사 스님들이 3.1독립만세시위를 계획하고 선언문을 제작한 곳이랍니다. 일주문 바로 뒤에는 디딜방아 내력관련 안내문도 있군요.
일주문을 들어서면 우측에 부도군이 있는데, 부도(浮屠)는 고승의 사리나 유골을 안치한 묘탑으로 불탑(부처님의 사리를 장치한 묘탑)은 사찰 중심부에 위치하지만 부도는 가람배치와 관계없이 사찰 변두리나 경내 밖에 설치합니다. 이곳 부도와 비석군을 보면 그간 얼마나 많은 고승들이 봉선사를 거쳐 갔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이곳에는 춘원 이광수 기념비도 있군요. 춘원(1892-1950)은 일제강점기에 불교문학의 초석을 다진 인물로 1922년 석왕사에서 <화엄경>, 1923년 금강산에서 <법화경>, <금강경>, <원각경> 등 불경을 읽고 더욱 불교에 심취하여 <이차돈의 死>(1935), <꿈>(1938), <무명>(1939), <사랑>(1939), <원효대사>(1942) 등 많은 불교관련 소설을 집필했습니다. 해방이 되자 춘원은 팔촌인 봉선사 운허스님에게 의지해 머물며 지난날의 친일협력에 대해 번민하면서 살았다고 합니다. 이 기념비는 1976년 그의 유족들이 세웠습니다.
부도군을 지나면 좌측에는 승과사험을 치렀던 정원 승과원(僧科園) 표석이 있습니다. 안쪽 오름 길에는 봉선사 느티나무가 있는데 이 느티나무는 세조의 비 정희왕후가 세조가 죽은 후 그를 기리기 위해 절을 중창하면서 심은 나무로 수령 540년이 지난 것입니다. 이 느티나무는 임진왜란과 6.25전란 중에도 훼손되지 않아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었답니다.
느티나무 바로 뒤에는 하마비가 있는데요. 하마비는 사원이나 종묘, 궐문, 성현들의 출생지나 무덤 앞에 세워 놓은 석비로 노소를 막론하고 말에서 내려 걸어감으로써 예의를 표시하라는 뜻입니다. 하마비에는 대소인원개하마(大小人員皆下馬)이라는 글이 대리석에 새겨져 있지요. 사찰에 하마비가 있는 곳은 매우 드문 일입니다.
청풍루 아래쪽에는 당간지주의 초석만 남아 있는데 당간지주는 사찰에서 법회 따위의 의식이 있을 때 쓰는 기(旗)를 달아 세우는 장대인 당간을 지탱하기 위하여 세운 두 개의 기둥을 말하며, 승과고시를 치를 때도 승과기를 달았다고 합니다.
청풍루 우측에는 2층으로 지어진 범종루가 있는데 보물로 지정된 봉선사 대종이 모셔져 있지만 사진에 담지는 못했습니다. 청풍루도 2층 누각인데 입구에는 사천왕상이 보여 아마도 사천왕문으로서의 기능도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청풍루 쪽으로 오르니 큰법당(대웅전) 쪽으로는 설법전(說法殿)이라는 현판도 붙어 있는데 내부는 상당히 넓습니다. 모서리를 돌아가니 불천회관(佛泉會館) 현판이 걸려 있어 이 전각은 여러 기능을 가지고 있는 모양입니다.
무엇보다도 누각 2층에서 바라본 큰법당과 백색의 연등이 펼쳐진 모습의 풍경이 일품입니다. 큰법당 마당에는 1975년 운허스님이 스리랑카에서 모셔온 부처님 사리 1과를 봉안한 5층탑(3층석탑?)이 있습니다. 큰법당은 불교대중화에 앞장선 운허스님이 1970년 조성한 건물로 대웅전이라는 이름 대신 큰법당이라는 한글편액을 달았습니다. 큰법당은 한국전쟁 때 전소된 대웅전을 철근콘크리트 구조로 다시 지은 것으로 우리나라 사찰 중 최초로 한글 현판을 붙인 뜻 깊은 전각입니다. 봉선사에는 보물인 “남양주 봉선사 비로자나 심신괘불도”가 있다고 하지만 실물을 눈으로 확인하지는 못했습니다.
청풍루 우측에는 단풍나무 연리지가 보이고 그 앞에는 약사전의 다른 이름인 대의왕전(大醫王殿)에 약사불을 모시고 있습니다. 대의왕전 우측 다경실은 차를 마시며 경전을 읽는다는 의미를 지닌 곳으로 역대 조실스님(선禪으로 일가를 이루어서 한 파의 정신적 지도자로 모셔진 스님)께서 거처하던 장소입니다.
큰법당 우측 전각에는 지장전(地藏殿)과 어실각(御室閣) 현판이 걸려 있는데 원래는 어실각으로 세조대왕과 정희왕후의 위패를 모셨던 건물이었지만 1999년에 복원하여 지금은 지장전(지장보살을 모시는 법당)으로 사용 중입니다. 지장전 위쪽 개건당(開建堂)은 봉선사를 창건하여 개산(開山)한 개산 대공덕주 정희왕후 윤씨, 중건 공덕주인 계민선사를 모시는 당우로 개산과 중건의 머릿글을 따서 이름 지은 것으로 현재는 납골당(봉안당)으로 사용 중입니다.
개건당 위쪽 조사전은 원래 개건당에 모셨던 봉선사의 개산(開山)과 중건(重建)의 공덕주들을 포함해 계민선사와 월초(月初)스님을 비롯한 근대의 봉선사 조사스님들의 영정을 모시고 있는 당우입니다. 큰법당 좌측 관음전은 관세음보살을 주불로 무시는 당우이며, 삼성각은 월초(月初)화상에 의해 1926년에 건립되어 6.25때 소실되지 않은 유일한 전각으로서 산신, 칠성, 독성 세 분의 성인을 모셔 삼성각이라 합니다.
대웅전 앞쪽 마당 좌측 운하당은 대중방으로 사용하면서 봉선사 신도들의 교육장소이기도 합니다. 그 옆의 판사관무헌은 어실각(御室閣)으로 인해 봉선사 주지는 조선왕실로부터 봉향판사(奉香判事)의 작위를 수여받았으며 봉향판사가 머물던 이곳은 봉선사 주지실입니다. 큰법당 진입로의 봉향당은 매점입니다.
봉향당에서 좌측으로 진입하면 미륵불이 있는데 미륵불은 은진미륵처럼 머리에 돌을 이고 있는 모습입니다. 미륵불 우측에는 용도를 알 수 없는 육화당과 휴월당이 있네요. 연못가에는 5층석탑이 보이고 정원에는 해태상이 놓여 있습니다. 정원 아래 연꽃단지(연지)에는 아직도 연꽃이 피어 있습니다.
봉선사는 남양주 소재 운악산(275m) 남쪽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포천의 명산인 운악산(938m)과는 다른 산입니다. 처음 방문한 봉선사의 경내는 엄청 넓고 전각도 많은 대가람이어서 깜짝 놀랐습니다. 나름대로 사찰 곳곳을 꼼꼼하게 살펴보았지만 일부 누락된 곳도 있어 삼복더위에는 사찰탐방도 쉽지 않음을 실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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