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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산 무봉사 일주문

 

 

 

 

 

경남 밀양시 내일동 소재 아동산(88m) 기슭의 무봉사(舞鳳寺)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5교구 본사인 통도사의 말사로 원래 통일신라시대 혜공왕 9년(773) 법조대사가 현재의 영남루 자리에 있었던 영남사의 부속 암자로 세운 천년고찰로 고려 공민왕 8년(1359) 화재로 영남사가 소실되자 이 암자를 무봉사로 승격시킨 것입니다.

밀양강 남쪽 둔치에서 본 영남루(청색 동그라미)와 무봉사(적색 사각형)

 

 

 

창건설화에 따르면 통일신라시대 고승 법조대사가 현재의 영남루 자리에 있던 영남사를 방문했다가 큰 봉황새가 날아와 무봉사 자리에 앉는 것을 목격함을 계기로 그곳이 상서로운 자리라 생각하고 무봉암이라는 암자를 만들었으며, 후일 영남사가 불에 타 없어지면서 무봉암은 무봉사로 승격됐다는 것입니다.

 

이후 무봉사는 조선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1605년에 혜징이 새로 짓고, 1899년에 경봉이 중건했으며 1942년에 중수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현존 당우로는 대웅전·삼성각·종루·요사채 등이 있으며 대웅전에는 석조여래좌상(보물)이 봉안되어 있습니다. 무봉사(舞鳳寺)라는 이름은 봉황이 춤추는 형국이라는 의미입니다.

 

무봉사에 가려면 우리나라의 3대 누각인 밀양 영남루 경내를 거쳐야합니다. 영남루 동쪽 밀양아리랑 표석이 있는 곳의 우측에는 무봉사 이정표가 보입니다. 진입로에는 공덕비와 반듯한 일주문이 있습니다. 일주문 뒤 무량문에는 사청왕상의 그림이 그려져 있어 사천왕문의 기능을 하는 듯합니다.

밀양아리랑 표석

 

무봉사 이정표

 

 

공덕비

 

일주문

 

무량문

 

 

무량문의 사천왕상

 

 

 

 

 

 

위로 올라서면 바로 대웅전입니다. 대웅전에 안치된 석조여래좌상(보물)은 영남사 터에 남아 있던 몸체와 근처에서 출토된 광배(부처의 몸에서 나오는 광명을 형상화한 장식물)와 대좌(불상을 올려놓는 대)를 수습해 모신 것입니다. 네모난 얼굴에 가는 눈과 입, 넓적한 코, 짧은 목 등이 전체적으로 단정한 느낌을 주는 불상입니다.

 

대웅전 내 석조여래좌상(보물)

 

 

 

 

 

 

 

 

이곳 아동산 무봉사에는 태극나비의 전설이 전해옵니다. 왕건이 고려를 건국하기 전 어느 날 봄이 아님에도 태극문양의 날개가 달린 나비 떼가 사방에서 날아와 영남사를 뒤덮었습니다. 나라가 혼란스럽던 시절이라 사람들은 태극나비가 길조일거라고 기대했는데 곧 고려가 건국 되어 나라가 안정을 되찾았고 그 후에도 태극나비가 찾아보면 나라에 경사스러운 일이 생겨 고려 초에는 이 나비 보호령을 내리고 국성접(國城蝶)이라 불렀답니다. 1945년 8.15광복 때도 태극나비가 아동산에 출현했다는군요.

 

 

 

 

 

대웅전 우측에는 석탑이 있고 그 위쪽에는 작은 전각(삼성각)이 있습니다. 대웅전 좌측에는 종무소가 있는데 그 사이에도 작은 불상이 있습니다. 여기 불상은 희미하지만 왼손에 약함을 들고 있고 오른손은 항마촉지인 수인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석조약사여래불로 생각되며 마모가 너무 심해 조성연대는 알 수 없으나 전해오는 이야기로는 현존하는 무봉사 본존불인 석조여래좌상(통일신라후기 보물 493호)보다 먼저 무봉사에 조성되었다고 합니다.(자료/무봉사 홈페이지)

 

 

 

 

종무소 옆 불상(석조약사여래불)

 

종무소

 

 

 

 

 

종무소 좌측 범종각에는 범종과 법고가 있고 여기서 출구로 나가면 사명대사 유정의 동상을 만납니다. 사명대사 유정(1544-1610)은 밀양출신으로 조선 중기의 승려이자 승장(僧將)이며, 본명은 응규, 법명은 유정, 호는 사명당으로 오늘날에는 존경하는 뜻을 담아 사명대사(泗溟大師)라고 부릅니다. 승려의 몸으로 국난이 닥치자 몸소 뛰쳐나와 의승(義僧)을 이끌고 전공을 세웠으며 전후의 대일 강화 조약 등 공훈을 세워 민족의식을 발현하는 데 크게 이바지한 승려입니다.

 

범종 및 법고

 

사명대사 유정 동상

 

 

 

 

 

 

참고로 이곳에는 “진해 천자봉과 무봉사 창건주 법조선사의 전설”관련 안내문이 있는데 좀 길지만 이곳에 옮겨 적습니다. 경상남도 진해의 천자봉은 명나라와 조선의 천자(天子)가 태어날 명당이라고 해서 천자봉이라고 하며, 전해오는 여러 전설 중에는 무봉사와 관련된 아래와 같은 전설도 전해져 오고 있답니다. ​

 

『신라 혜공왕 때 법조(法)선사가 밀양 무봉암을 창건할 당시의 일이다. 하루는 선사가 밤중에 뒷간을 가는데 호랑이 한 마리가 뒷간을 지키고 있어서 다른 곳에 가서 용무를 마졌다. 이든날 밤에도 뒷간을 갔는데, 호랑이가 또 그곳에 앉아 있는 것을 보고 화가 난 선사는 들고 있던 지팡이로 호랑이의 머리를 내리쳐 버렸고, 그러자 덤벼들 줄 알았던 호랑이는 사라지고 대신 흰나비 한 마리가 날아올랐다. 선사는 그 나비를 따라나섰는데, 나비는 새벽녘에 어떤 산봉우리(天)에 가서 앉았다가 다시 산 아래로 날아가 어떤 집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그 집에는 슬하에 자식이 없는 쉰 살 전후의 부부가 있었는데 지난 밤 똑같은 내용의 이상인 꿈을 꾸었고, 날이 밝자 꿈 이야기를 하며 서로 괴이하게 생각을 하고 있던 자에 마침 선사가 흰나비를 따라 이 집안으로 들어서는 것이었다. 두 사람의 꿈은 간밤에 선사가 겪은 흰나비와도 관련이 있는 꿈이었는데, 선사가 말하기를, "모일 모시에 다시한번 이곳을 찾아 주인장께 청을 하나 드릴 것이니 그때 가서 소승이 드리는 청을 절대로 거절하지 마십시오."하고 다짐을 하는 것이었다.

 

주인 부부는 도통한 선사의 말이라 거절할 수 없어 승낙하였고, 열 달이 지닌 어느 날 이 집 무인 해산을 하여 한 사내아이를 낳게 되는데, 약속한 날짜에 신사가 찾아와서 말하기를 "이 아이는 액(厄)이 있어 집에 있으면 머지않아 죽게 됩니다. 그러니 소승이 데려가 길러야 하겠으니 맡겨 주십시오." 하고 청음 하였다.

 

주인 부부는 예전의 약속과, 아이가 머지않아 죽을 것이라는 선사의 말에 아이를 건네주었고 선사를 따라간 아이는 절에서 공부하며 열심히 무예들 닦았는데, 이 아이는 보통 아이들과는 달리 매우 총명하고 용맹이 뛰어났지만 특이하게도 왼손 주먹을 꼭 쥐고 있는 버릇이 있어 밖에 나가 놀 적에나 잠잘 적에도 왼손 주먹은 여지를 않았다.

 

어느 날 선사는 아이가 잠든 틈을 타서 왼손 주먹을 보고는 깜짝 놀라 뒤로 물러앉고 말았는데, 아이의 손금에 임금 왕(王)자의 글자 무늬가 너무나도 선명하게 새겨져 있는 까닭인 것이었다. 그때 아이가 벌떡 일어나 앉으며 왼손으로 선사의 따귀를 후려쳤다. "에잇! 이 중놈아! 내 여태 감추고 있던 비밀을 네 놈이 눈치를 했구나. 그렇다면 할 수 없지. 내가 이곳을 떠날 수밖에“ 하고는 절간을 뛰쳐나가 행방이 묘연해졌는데, 뒷날 이 아이가 명나라의 태조 주원장이 되었다고하여, 그런 연유로 천자봉(天子)이라는 이름이 생겼다고 하는 전설이다.』(자료/현지 안내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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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ennpe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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