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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부석사(浮石寺)라고 하면 보통사람들은 경북 영주의 부석사를 떠올립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영주 부석사는 본당인 무량수전이 배흘림기둥으로 되어 있어 국립박물관장을 지낸 미술사학자 최순우는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라는 제목의 책을 펴내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동일한 절 이름의 부석사가 충남 서산의 도비산(352m)자락에도 있습니다.
서산시 부석면 취평리 도비산(352m) 기슭에 있는 부석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7교구 본사인 수덕사의 말사입니다. 그런데 절의 창건에 대해서는 두 개의 전설이 전해옵니다. 하나는 신라 문무왕 17년(677년) 의상대사가 창건하고 그 뒤 조선조의 무학대사가 중건했다는 설입니다. 다른 하나는 고려가 멸망하고 조선이 건국되자 고려의 충신이었던 유방택이 망국의 한을 품고 낙향하여 이곳에 별당을 짓고 살다가 세상을 떠나자 그를 아끼고 따르던 사람들이 그가 쓰던 별당을 개조해 부석사라고 불렀다고 전합니다.
이 중에서 의상대사의 창건에 대해서는 좀 더 구체적인 이야기가 전해오는데, 이와 관련 서산 부석사 홈페이지에 게재된 글을 여기에 옮겨 적습니다. 그런데 의상대사 관련 설화는 영주 부석사에도 그대로 적용된다는군요. 다만 영주 부석사의 부석(浮石)은 무량수전 옆에 있지만 서산 부석사의 부석은 서해 앞 바다에 떠 있음이 다른 점입니다. 현재 절 앞 10㎞ 지점의 바다에 부석섬이 있고 이 절이 있는 산 이름을 “섬이 날았다”는 뜻에서 도비산(島飛山)이라 한 것이 모두 이 설화와 관련된 것이랍니다.
『의상대사가 큰 뜻을 품고 당나라로 유학을 가 지장사에서 열심히 공부할 때입니다. 지장사 아랫마을에는 젊고 예쁜 “선묘”라는 처녀가 살고 있었는데 의상대사를 흠모하였습니다. 이를 모르는 의상대사는 열심히 공부하였고 마침내 문무왕 1년에 신라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낭자는 떠나기 전날 의상대사를 찾아와 사랑을 고백하였습니다.
의상대사는 불도를 닦는 사람으로서 불가함을 알리자 그녀는 물러갔습니다. 다음날 의상대사가 배를 타려 하자 낭자는 “결혼은 못하더라도 스님 곁에서 나도 불도를 배우겠다”라고 말했습니다. 의상대사는 꾸짖으며 집으로 돌아갈 것을 권하였습니다. 아무리 애원해도 의상대사의 마음이 움직이지 않자 낭자는 죽음을 결심하고 바다에 뛰어들었습니다. 죽어서라도 스님 옆을 지키기 위해 용이 되어 의상대사가 가는 곳마다 숨어서 따라다녔습니다.
의상대사는 죽은 낭자의 혼을 위로하기 위하여 절을 세우기로 하였습니다. 절터를 찾던 중 풍광이 수려하고 앞에 바다가 보이는 도비산 중턱에 절을 짓기로 하였습니다. 그러나 동네 사람들은 절을 짓는 것을 반대하였고, 절이 다 지어져 갈 무렵 쇠스랑 등을 들고 와 절을 부수어 버리려 하였습니다. 그때 갑자기 큰 바위가 공중에서 둥둥 떠오더니 큰소리로 “모두 듣거라! 너희들이 계속 방해하면 이 바윗돌로 너희들 머리를 부수겠다. 지금 당장 물러가라”라고 하였습니다. 커다란 바위가 산이 흔들리도록 큰 소리로 꾸짖자 사람들은 무서워서 도망갔습니다.
사람들이 모두 사라지자 바위는 훌쩍 날아가 절이 보이는 바다에 떠 있으면서 절 짓는 공사를 지켜보았습니다. 사람들은 이 돌을 물 위에 떠 있다 하여 부석(浮石)이라 이름을 지었으며 다른 말로는「검은 여」라 합니다. 이때부터 절 이름도 부석사(浮石寺)라고 부르게 되었으며, 부석면 주민들은 해마다 검은 여에서 제사를 올리고 있습니다.』
부석사 주차장에 도착하면 도비산 부석사라는 현판이 새겨진 일주문이 반겨줍니다. 일주문의 기둥이 나무가 아닌 대리석이로군요. 현판의 글씨가 날아갈 듯한데 그 안쪽의 글씨는 읽기가 어렵습니다. 여기서 부석사까지는 차도로 약 500m 정도 걸어야합니다.
일주문 다음에 나오는 문은 보통 천왕문인데 여기는 금강문(金剛門)이네요. 금강문 양쪽에는 사천왕상이 출입자를 감시하고 있습니다. 계단을 오르면 사찰의 큰법당인 극락전입니다. 극락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 규모로 맞배지붕건물이며, 중앙 아미타삼존불상은 아미타 부처님을 가운데 모시고 관음보살상과 지장보살상이 좌우 협시로 있습니다.
극락전 우측은 종무소(심검당)로 안내자료가 비치되어 있군요. 부석사 현판은 만공스님의 친필휘호로 글쓴이를 70옹(翁)이라 표기한 게 참으로 재치 만점입니다. 종무소 앞에는 음수대가 보입니다. 여기서 우측으로 가면 작은 연못이 있고 그 위쪽에는 장독대가 있지요. 연못 옆 전각은 정진선원이며, 그 뒤쪽에는 7층석탑이 있습니다. 극락전 앞에는 안양루가 있으며 극락전 좌측에는 부석사 표석이 보입니다. 안양루는 영주 부석사에도 있기에 두 사찰이 닮은꼴임을 알 수 있네요.
설법전은 법회를 위한 공간이며 정면 5칸 측면 2칸 규모의 맞배지붕 건물로 1층은 콘크리트 건물이지만 2층은 목조건축물입니다. 내부에는 관세음보살을 주불로 모시고 좌우 협시로 용왕과 남순동자를 두고 있습니다.
설법전 위쪽 암벽에는 마애불상이 새겨져 있는데 그 옆에는 마애불상 조성공덕비가 있군요. 마애불이란 노출된 바위 면에 불상을 새긴 것을 말합니다. 이곳 마애불은 아미타부처님으로 부석사와 신비스럽게 연결된 검은 여(浮石)가 정면으로 보이는 바위에 새겨서 조성하였습니다. 마애석불은 얼굴은 네모 모양이고 귀는 어깨까지 내려와 있습니다. 높이 4.5m, 폭 1.5m의 규모로 양각 부조로 새겨져 있으며 석공예 문화재 기능보유자인 김대연 조각가의 작품입니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서해의 풍경이 시원합니다.
위쪽 삼층석탑 뒤로는 산신각이 있는데 이곳 산신각은 기도 효험이 크다고 전국에 알려져 있습니다. 산신각 내부에는 산신을 가운데에 우측에는 선묘낭자를 좌측에는 용왕을 모셨습니다. 다른 사찰의 「삼성각」과 달리 외부에 「산신각」 「선묘각」 「용왕각」 현판을 각각 단 것이 매우 특이합니다.
산신각 위쪽의 작은 토굴은 만공스님(1871-1946)이 수행했던 굴로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합니다. 만공스님은 경허선사의 수제자 중 하나로 경허선사를 모시고 서산 부석사와 부산 범어사의 계명암(鷄鳴庵) 등지에서 수도하였습니다. 부석사 심검당에 있는 「부석사(浮石寺)」및 「심검당(尋劍堂)」 현판은 만공스님이 쓴 것입니다.
설법전 앞에는 금종각이 있는데 일반적으로 범종각이라 부르는 것을 금종각이라니 매우 생소합니다. 설법전 아래는 템플스테이 숙소이고 구름이 머무는 누각이라는 의미의 운거루(雲居樓)는 쉼터입니다. 도비산 다원은 웹툰 원작의 드라마 “계룡선녀전”의 촬영 장소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다원에서는 산사의 운치를 한껏 느낄 수 있으며 바깥의 풍경은 시름을 잠시 잊게 합니다. 도비산 다원의 가장 인기 있는 메뉴는 대추차, 쌍화차, 오미자차라고 합니다. 산사에서 차 한 잔 마실 마음의 여유도 없이 급히 속세로 내려와야 하는 필자의 처지가 스스로 생각해도 무척 안쓰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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