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가산 광흥사 응진전 일원
안동과 예천의 경계에 위치한 학가산(882m) 남쪽 산자락에 위치한 광흥사는
신라 신문왕 때 의상대사가 창건한 천년고찰이라고 전해지지만
정확한 건립연대나 그 동안의 사적(史蹟)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 수 없다고 합니다.
<영가지>는 조선 선조 41년(1608) 편찬된 경상도 안동부(지금의 안동시)읍지인데,
이 영가지에 의하면 이곳에는 국왕이 머물렀고,
대궐과 육조(六曹)의 터가 남아 있는 2개의 산성지가 있으며,
산의 동쪽에는 능인대덕이 살았다는 능인굴,
산허리에는 거찰과 작은 암자들이 둘러져 있었다는 기록이 전해집니다.
일주문 옆에는 수령 430년이 지난 보호수 은행나무가
웅장한 자태를 자랑하고 있습니다.
일주문 뒤의 넓은 공터에는 원래 광흥사가 있던 곳입니다.
광흥사는 안동에서 가장 규모가 큰 사찰 가운데 하나였으나
조선시대의 억불정책으로 그 역할의 상당부분을 상실하였고
1946년 큰불로 대웅전이 소실되고, 1952년에는 극락전이,
1962년에는 학서루 등 전각도 퇴락해 무너져
지금의 가람은 광흥사 부속전각의 하나였던 응진전을 중심으로 재배치한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일주문에서 안으로 들어가면 좌측에 대웅전이 있고
길을 따라 오르면 응진전과 산령각 등 전각이 모여 있습니다.
중심전각인 대웅전과 다른 전각이 따로 떨어진 가람의 배치는 매우 드문 일입니다.
대웅전 내부
극락전 가는 길의 우측에는 명부전이 있는데,
명부전은 지장보살을 주불로 모신 지장전입니다.
약수터 위쪽에는 응진전을 비롯한 몇 개의 전각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습니다.
약간 멀리서 보면 사찰이라기 보다는 향교나 재실 같습니다.
응진전은 부처님과 제자인 16나한(羅漢)을 모신 전각으로서
나한전(羅漢殿)이라고 합니다.
응진전은 앞면 5칸·옆면 2칸 규모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입니다.
내부에는 통일신라 때 조성한 석가모니불상과 좌우에 미륵보살상과
제하가라보살상이 모셔져 있으며, 16나한상은 한국에서 가장 웅장하다고 합니다.
응진전 내부
수선화
응진전 일원
응진전 좌측 뒤에는 산령각이 있는데,
스님이 불경을 열심히 외우고 있더군요.
응진전 앞 전각에는 훈민정음대학 현판이 보입니다.
이는 훈민정음 해례본이 광흥사에서 발견되었기 때문입니다.
<훈민정음 해례본>은 1446년 9월(음력) 세종대왕이
훈민정음 창제사실을 알린 뒤 정인지·신숙주·성삼문 등
집현전 학자들과 함께 창제목적과 글자의 원리 등을 설명한 한문 해설서입니다.
산령각 앞의 돌조각이 이와 관련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고 보면 광흥사는 매우 유서 깊은 고찰이네요.
참고로 광흥사에는 보물인 묘법연화경 2점이 있습니다.
이는 보물 제314호인 취지금니 묘법연화경 및
보물 제315호인 백지묵서 묘법연화경입니다.
이들 보물은 광흥사 소유이나 보관상의 문제로 인해
현재 국립경주박물관에 보관중입니다.
다른 하나는 보불 제1645호인 광흥사 동종입니다.
이 동종은 현존 수량이 얼마 되지 않는 16세기 조선 중기의
대표적인 작품이라고 하는데 실물을 확인하지는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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