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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산청군 시천면 원리 소재 덕천서원(德川書院, 사적 305호)은

조선 선조 9년(1576) 남명 조식(南冥 曺植) 선생의 제자들이

선생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설립한 서원입니다.

서원은 조선 시대 선비들이 모여 학문을 강론하거나

석학이나 충절로 죽은 사람을 제사지내던 곳입니다.

 

남명 조식(1501-1572)은 조선전기의 성리학자로 모든 벼슬을 마다하고

학문연구와 후진양성에 매진한 영남학파(서쪽)의 거두였으며

그와 쌍벽을 이룬 인물은 바로 영남학파(동쪽)의 거두였던

퇴계 이황(1501-1570) 선생입니다.

 

덕천서원은 임진왜란 때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선조 35년(1602) 중건되었고

광해군 원년(1609) 국가에서 선생에게 영의정을 추증하고

덕천이라는 이름과 토지 및 노비를 국가로부터 받아 사액서원이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서원이 크게 확장되어 옥산서원 및 도산서원과 함께

조선의 삼산서원으로 불리워졌으며 정조 때의 명상 채제공이

원장을 지내는 등 성황을 이루었으나 고종7년(1870)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가 1926년 복원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참고자료/현지 안내문)

 

 

 

 

 

 

시천천이 덕천강으로 합류하는 지점인 덕산중고교 바로 옆에

자리잡은 덕천서원은 59번 국도변에 홍살문이 있고,

홍살문 곁에는 수령 470년이 지난 보호수 은행나무가

하늘을 찌를 듯 솟아 있습니다. 나무의 키가 무려 18m라고 하니 그럴만도 하군요.

 

59번 국도에서 본 홍살문과 보호수 은행나무

 

 

 

 

 

 

 

서원의 정문인 외삼문에는 시정문(時靜門)이라는 현판이 붙어 있는데,

이곳출신 독립운동가였던 하용제(1854-1919)의 글씨라고 합니다.

 

 

 

 

뒤돌아본 시정문

 

 

 

 

 

 

시정문을 들어서면 정면에 덕천서원 현판이 걸린 강당인 경의당이 있고

좌우에는 동재와 서재가 있는데요. 경의당은 서원의 행사와

유생들의 화합 및 토론장소로서 서원의 중심건물입니다.

 

 

 

 

 

 

 

 

동재와 서재는 유생들이 거처하며 공부하던 곳인데,

동재에는 진덕재, 서재에는 수업재라는 현판이 걸려 있습니다.

동재인 진덕재

 

서재인 수업재

 

 

 

 

 

 

 

 

경의당 뒤쪽에 있는 내삼문(신문)을 들어서면 사당인 숭덕사입니다.

서원 건립당시에는 남명 조식의 위패만 모셨으나 사액서원으로 승격한 이후

남명의 제자인 최영경(崔永慶 1529-1589)을 추가 배향했습니다.

내삼문(신문)

 

뒤돌아본 내삼문

 

사당인 숭덕사

 

 

 

 

 

 

숭덕사 옆 작은 건물과 서원좌측의 한옥은 그 용도를 잘 모르겠네요.

숭덕사 옆 작은 건물

 

서원 좌측 한옥

 

 

 

 

 

 

덕천서원 앞 시천천 강변에는 세심정(洗心亭)이 있는데,

서원 건립에 앞장섰던 남명의 제자 최영경(崔永慶)이

선조 15년(1582) 덕천서원 유생들의 휴식처로 세운 정자입니다.

임진왜란 후 복원하면서 취성정(醉醒亭)이라는 명칭으로 바꾸었으며,

1815년 중수 후 풍영정(風詠亭)으로 고쳤답니다.

 

 

 

 

 

 

덕천서원은 공부하는 공간이 앞쪽에 있고 사당이 뒷쪽에 있는

전학후묘의 배치를 이루고 있으며 지금은 다른 서원과 마찬가지로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고 제사의 기능만 남아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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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ennpe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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