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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안국동 소재 서울공예박물관(2021. 7월 개관)은 서울시에서 강남으로 이전한 (구)풍문여고 건물 5개 동을 리모델링하여 건축한 한국 최초의 공립 공예박물관입니다. 이 박물관은 전통부터 현대까지 다양한 시대와 분야를 아우르는 2만여 점의 공예품과 공예자료를 수집.보유하고 있으며 안내동과 관리동, 전시동(3개) 및 교육동(어린이박물관 입주)이 있습니다.
서울공예박물관 터는 세종의 아들 영응대군의 집, 순종의 가례를 위해 건축된 안국동별궁 등 왕가의 저택으로 사용되거나 왕실 가례와 관련된 장소로서 오랜 역사를 지닌 곳이며, 수공예품을 제작하여 관에 납품하던 조선의 장인 경공장(京工匠)들이 거주했던 종로구의 중심 지역입니다.
현재 전시1동 2층 상설전시실은 “장인, 세상을 이롭게 하다”, 전시2동 2층 상설전시실은 “자연에서 공예로”, 전시3동 2층 상설전시실은 “자수, 꽃이 피다” 3층 상설전시실은 “보자기, 일상을 감싸다”전시가 열리고 있으며, 교육동 2-3층은 어린이박물관(공예마을)이며, 교육동 옥상은 전망대입니다.
◆ 박물관 전시2동
박물관 전시2동의 전시주제는 “자연에서 공예로”입니다. 이곳에서는 공예의 전통을 만든 장인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인류 역사는 공예 발전의 역사로 인류는 돌, 흙, 나무 등 자연 소재를 이용해 문명발전의 토대를 세웠습니다. 장인들의 손에서 광석은 금속공예로, 흙은 토기를 거쳐 청자와 백자로, 나무와 전복껍데기는 나전칠기 등으로 새롭게 탄생해 공예의 전통이 마련되었습니다.
▲ 화염을 견딘 금속, 권력과 권위를 만들다
청동기 시대부터 제작된 금속기들은 그것을 가진 자에게는 권력과 풍요를, 못 가진 자들에게는 복종과 죽음을 안겨주었습니다. 특히 고대국가 성립 이후 장인들이 제작한 동검(銅劍)과 동경(銅鏡), 금관과 귀걸이 등의 금속공예품들은 계급과 신분을 보다 명확히 구분하고 드러내주었으며, 향로, 금강령, 동종 등은 고려사회에서 불교가 차지하고 있던 정신적 권위를 보여줍니다.
▲ 흙과 불로 역사와 예술을 창조하다
한 시대의 발전상과 사람들의 삶의 모습은 문자로 된 기록이 없더라도 토기와 도자기의 모양과 색, 장식 등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신석기시대 이후 인류는 흙과 불을 다루는 기술을 발전시켜 토기에서 도기로, 다시 도기에서 자기로 그릇의 강도를 높여갔으며, 성분이 다른 각 지방의 흙을 사용해 시대별, 지역별로 빛깔이 다른 도자를 생산해냈습니다. 한반도에서의 도자 제작의 독창성과 예술성은 고려시대 청자에서 그 정점에 달했지요.
▲ 나전칠기의 오색찬란함을 재현하다
옻칠은 내구성과 아름다움을 더해주어 고급 공예품의 마감재로 사용되는데 옻칠된 공예품들은 주로 국가와 왕실의 중대사에 사용되었습니다. 나전(螺鈿)은 칠기에 자개를 붙여 문양을 표현하는 장식기법으로 나전칠기가 활짝 꽃피운 것은 고려시대입니다. 서울공예박물관은 국내외에 20여 점 현존하는 고려 나전칠기 중 진수(眞髓)로 평가받는 보물 제1975호 <나전경함>의 제작 비법을 밝히고자 이를 재현하는 작업을 진행하였는데, 이 작업에는 오늘날 각 분야에서 손꼽히는 장인 네 명이 참여했답니다.
◆ 박물관 전시3동
다음에는 전시3동으로 이동합니다. 전시3동은 자수와 보자기관련 전시실인데요. 이번에는 먼저 자수를 소개하겠습니다. 전시3동 2층 상설전시실의 주제는 “자수, 꽃이 피다”입니다. 이 전시는 서울공예박물관 허동화·박영숙 컬렉션에서 선정한 자수 병풍을 회화적 관점으로 재조명하고, 일상생활 구석구석을 수놓은 여인들의 마음을 담은 문양의 의미와 자수 기법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 자수
우리 전통 자수는 삼국시대(기원전 57~기원후 668)에 이르러 크게 발전하였는데,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통일신라 흥덕왕 9년(834) 귀족 이외는 자수 장식 의복을 착용하지 못하도록 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고려시대 이후 조선후기와 근대 자수유물은 매우 많은데 이는 바느질과 자수를 여성들의 기본규범으로 강조하였던 사회적 분위기가 크게 작용한 결과입니다.
▲ 실로 그리는
자수 기법으로 만든 대표적 작품은 자수 병풍인데, 갈대와 기러기 무리를 표현한 노안도(蘆雁圖) 같이 회화에서도 자주 다루는 주제나 이미 그려진 그림을 그대로 수를 놓아 제작한 것이 대부분입니다. 하지만 그리기와 수놓기라는 서로 다른 기법을 하나의 화폭에 함께 사용하여 표현 방법의 경계를 뛰어넘은 작품도 있습니다. 통일신라시대 이래 자수 병풍은 귀족과 부유층만이 누릴 수 있었던 호사품이었습니다.
▲ 염원의 마음
사람은 한 번 태어나면 누구나 죽기 때문에 현생에 대한 애착과 사후의 평안함을 염원하는 마음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는 동안은 다복하게, 사후에는 좋은 곳으로 가거나 환생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한 땀 한 땀 수를 놓았습니다. 저녁에 지고 아침에 새롭게 피어나는 연꽃에는 환생을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고, 악귀를 쫓아낸다고 믿었던 복숭아로 불로장생을 기원하는 마음을 표현했으며, 석류가 어린아이를 보호한다는 설화 때문에 다산과 풍요를 소원할 때는 석류를 수놓았습니다.
▲ 행복의 마음을
자수는 일상에서 사용하는 다양한 물건에 소망이나 염원을 담을 수 있는 방법 중의 하나인데, 병풍처럼 크고 화려한 물건을 비롯하여 늘 몸에 지니고 활용하는 주머니, 안경집, 보자기와 옷, 쓰개, 신발에도 원하는 문양과 글자를 아름답게 수놓았습니다. 조선 후기에는 자손이 번성하고 오래 살며 복을 받기를 바라는 마음이 컸기 때문에 장수와 복을 함께 의미하는 ‘壽福(수복)’이라는 글자를 즐겨 수놓았으며, 침실에서 사용한 향주머니에도 복(福)을 상징하는 박쥐를 수놓아 소망과 아름다움을 동시에 추구하였습니다.
▲ 새기다
자수의 역사는 길지만 제작자의 기록은 거의 남아 있지 않고 조선 시대에 궁에서 필요한 자수품을 제작한 수방(繡房) 나인들의 이름 또는 자수 솜씨가 뛰어난 인물에 관련된 일화가 더러 남아 있을 뿐입니다. 근대에 들어서는 서구식 신문물의 영향으로 여성 교육의 필요성이 대두됨을 계기로 자수는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경제적 자립을 가능케 하여 근대 여성들을 위한 신교육 과목으로 선택되었습니다. 1932년에 설립된 조선여자기예원은 직물공예품을 생산하여 그 노임으로 학비를 충당하는 실업교육을 실시했습니다. 근대국가 형성기의 자수가 예술적 가치를 확보하였을 뿐 아니라 장식 미술산업으로 확장되면서 제작자의 이름이 비로소 작가 이름으로 기록되기 시작하였습니다.
☞ 위 설명은 대부분 서울공예박물관 홈페이지자료(전시회)를 발췌해 인용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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