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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 정라동 소재 육향산은 해발고도 20m에 불과한 곳으로 산이라고 부르기에는 민망할 정도이지만 카카오지도에도 그 이름이 버젓이 등장하는 산입니다. 정라동행정복지센터 옆에 자리 잡은 육향산 인근에는 삼척항과 오십천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처럼 작은 산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많은 문인들이 찾게 된 것은 이곳이 유서 깊은 역사의 현장으로서 삼척을 대표하는 문화유적지 중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정라동행정복지센터

 

 

 

 

 

 

정라동행정복지센터 좌측 육향산 입구에는 육향산 안내도가 있는데, 이곳에는 영장 및 관찰사선정비, 삼척포진성 유적지, 대한평수토찬비, 육향정, 척주동해비, 미수사 등이 있다고 하는군요.

육향산 입구

 

 

 

 

 

 

 

▲ 영장 및 관찰사선정비

 

제일 먼저 만나는 유적은 영장 및 관찰사선정비입니다. 삼척포진은 조선시대 동해안 9개군의 수군을 관장하던 진영으로 영장(營將)은 삼척포진에 있던 수군진영의 수장입니다. 한 때 곳곳에 세워졌던 영장과 관찰사의 선정비(9기)를 모두 이곳으로 옮겨 세워 놓은 것입니다.

 

이곳에 세워진 선정비들은 비석머리에 새겨진 모양이 독특한데, 용이나 꽃 조각 등 일반적인 모양이 아닌 추상적인 무늬가 새겨져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서는 원시적이고 기하학적인 문양, 동해바다에서 해가 뜨는 풍경을 묘사한 문양, 남근과 여근을 표현한 문양이라는 다양한 해석이 있답니다.

 

 

 

 

 

 

 

 

▲ 삼척포진성지

 

돌계단을 오르면 삼척포진성지임을 알리는 표석이 있는데요. 이는 위에서 지적한대로 조선시대 동해안 9개군의 수군을 관장하던 진영입니다. 삼척포진은 고려 우왕 10년(1384)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해 요전산성에 처음 설치했으며, 조선 중종 15년(1520) 죽관도(육향산) 북쪽으로 옮겨 새로운 석성을 쌓아 진영을 구축했습니다. 이 진영은 1898년 폐지된 후 1916년 삼척항 축조공사로 헐려 없어졌습니다. 1987년 이곳에 새로운 표석을 세워 유서 깊은 호국의 터전으로 삼아 후세에 전하고 있습니다.

 

 

 

 

 

 

▲ 대한평수토찬비

 

조선 현종 때 삼척부사 허목은 선조의 손자인 낭선군으로부터 형산신우비의 탁본을 전달 받아 비문의 77자 중 48자를 목판에 새겨 삼척부에 보관했습니다. 그 후 광무 8년(1904) 왕명으로 돌에 새겨 현재의 위치에 세웠는데, 형산신우비는 고대 중국의 우제가 산과 강을 다스려 사람들이 안심하고 잘 살 수 있게 했다는 비석입니다.

 

 

 

 

 

 

 

 

 

▲ 척주동해비와 비각

 

육향산 꼭대기에는 척주동해비(陟州東海碑)가 있는데 이 비는 조선 현종 2년(1661) 처음 세워 졌습니다. 당시 삼척은 파도가 마을까지 몰아치고 오심천이 범람해 수해가 극심했습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삼척부사 허목(1595-1682)이 철학적인 내용으로 구성된 동해송을 짓고 독창적인 옛 전서체로 써서 정라진 앞 만리도에 비석을 세우니 사람들이 수해를 입는 일이 없어졌다고 합니다. 그 후 비석이 풍랑으로 파손되자 이를 모사해 육향산에 다시 세웠습니다.

 

 

 

 

 

 

 

 

 

 

 

▲ 육향정

 

육향정은 여섯 기둥에 육각으로 지은 작고 아담한 정자로 주변 일대의 해변 경관을 조망할 수 있습니다. 이 정자는 대동청년단 김진구를 중심으로 김진원, 김몽순, 김형국 등 지방유지들이 조국광복을 기념하기 위해 1947-1948년에 세운 정자입니다. 현판의 글씨는 애국지사 오세창의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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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ennpe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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