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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이렇게 불러보는 것도 마지막이네요. 내가 당신과 함께 살아온 지난 15년 간의 생활이 정말 꿈만 같아요! 그렇지만 이렇게 생이별을 해야 한다니 정말로 가슴이 미어지오.

15년 전 태국의 바닷가에서 의식을 잃고 쓰러져 있는 당신을 발견했을 때 난 무조건 당신을 살려야겠다는 일념뿐이었소. 천우신조로 당신은 건강을 되찾았지만 그 전의 기억을 전부 잃어버렸지요. 아버지한테는 그런 당신이 최고의 사윗감이었어요. 아버지 주위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모두 아버지의 재산을 탐내는 사람들뿐이었거든요. 그런데 당신은 기억을 모두 잃어 어느 누구에게도 갈 수 없으니 아버지는 재산을 지켜 주리라는 확신이 있었던 것입니다.

물론 아버지의 결정이 아니더라도 당신을 간호하는 과정에서 나는 당신을 사랑하게 되었어요. 나는 이미 결혼에 실패하여 딸 하나를 두고 있었어요. 그렇지만 난 당신과 결혼하여 지난 15년 동안 정말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우리 부부는 귀여운 나정이를 낳았고, 당신은 내가 데리고 온 나윤이를 친딸처럼 사랑하며 잘 키워주었어요. 따라서 오늘과 같은 이런 일이 발생할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어요.




당신이 그동안 기억력을 되찾으려고 노력할 때마다 사고 당시 당신의 손에 끼어 있던 결혼반지를 비롯하여 증거가 될 만한 물건을 숨겼어요. 왜냐하면 만일 당신이 기억을 되찾아 과거의 가족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나와 딸들을 버리고 도망갈지도 모른다는 강박관념이 뇌리를 떠나지 않았기 때문이오. 당신은 "과거의 가족을 찾게 되더라도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지요. 단지 그들을 도와 주고 싶다고 말이오. 그렇지만 난 당신의 말을 액면그대로 믿지 아니하였소. 





그런데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내가 그 동난 수소문 해 본 결과 우리회사의 한진우가 당신의 조카이며, 한수현 작가가 당신의 친딸임을 알게 되었소. 따라서 난 당신이 한진우를 가급적 접촉하지 못하도록 멀리 떼어놓으려고 하였소. 그런데 일이 자꾸만 꼬여 한진우는 나윤을 사랑하게 되었고, 한수현은 만화채널개국관련 일을 담당하게 되었소. 나정이 마저 한수현을 친언니처럼 잘 따랐소.




나는 정말 초조하였소. 당신의 조카인 한진우, 형수인 오동자, 아내인 하윤정이 차례로 당신을 자신들의 실종된 가족인 한태수라고 생각하면서 사실확인을 요구하였을 때 난 당신과 결혼한 지 30년이 되었다고 거짓말을 하였소. 나윤이는 당신에게 사실을 말하자고 여러 차례 이야기했지만 나는 그럴 수가 없었소.  

그렇지만 어느 순간부터 당신이 그쪽 가족들을 차례로 만나고 있음을 알고는 궁여지책으로 나윤과 한진우의 결혼을 추진하였소. 둘이 결혼을 하여 사돈이 되면 당신이 절대로 하윤정에게 돌아가지 못할 것이라는 얄팍한 계산이 깔려 있었다오. 또한 하윤정이 만화가인 이준우와 서둘러 결혼하기를 바랬다오.




그러나 일은 엉뚱한 곳에서 터져 버렸소. 나윤을 차지하려는 이철 본부장의 폭로로 한진우 측은 당신이 그들의 가족임을 알게 되었고, 이를 안 한진우는 나윤과의 결혼을 반대했소. 이 무렵 담당의사를 만나 당신이 이미 기억을 되찾았음을 알고는 드디어 올 것이 오고 말았다고 한탄하였소.





당신은 내가 당신의 기억력을 되찾지 못하도록 방해한 것에 대하여 배신감을 느끼겠지만 나로서는 나와 딸들의 행복을 지키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소. 한편으로는 불안해하면서도 마음 한 구석에는 당신은 내가 당신의 목숨을 구해주었고 또 지난 15년 동안 행복하게 살아 우리를 이렇게 버리지 않으리라는 믿음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오.





그렇지만 하윤정에게 돌아가려는 당신의 신념이 확고하니 내가 어떻게 당신을 막겠소. 고맙게도 시어머니께서는 지난 날 함께 살아온 인연과 또 손녀인 나정이를 생각해서 당신이 나와함께 살기를 원했지만 당신은 결국 나 대신 하윤정을 선택했소. 여러 차례 당신을 그냥 보내주기로 다짐했지만 지난날 행복했던 세월이 너무나도 안타까워 눈물로 밤을 지새웠소. 당신이 과거 한태수라는 이름으로 하윤정과 함께 한 생활만 중요하고, 강신욱이라는 이름으로 나와 함께 한 15년은 아무 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 억장이 무너졌소,





엊그제 긴급이사회에서 당신은 지분을 팔아 상해본부투자금액을 되돌려 주고 회장직에서 물러나겠다고 선언했지만 나는 내 지분을 팔도록 담당이사에게 지시하였소. 나는 당신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는 이 집에서 살수도 없고, 또 유니콘을 경영할 의사도 없소. 나윤이는 해외에서 공부를 계속하든 무엇을 하든 제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나이라 하고 싶은 데로 하라고 일러두었소. 나윤은 우선 회사에 사표를 내고 시골로 내려가 앞으로의 진로를 결정한다고 하오. 나는 나정이를 데리고 당신의 기억이 떠오르지 않는 머나먼 외국으로 나가 몇 년 동안 조용히 살고 싶소. 유니콘의 경영은 유능한 한진우와 함께 당신이 맡아주오.





당신은 담당이사로부터 내 뜻을 전해 듣고 나에게 회사를 직접 맡아 달라고 부탁하지만 나는 그럴 수가 없소. 비록 선대로부터 계속 이어져 내려온 회사이지만 당신이 없는 회사가 무슨 소용이 있겠소. 내가 당신 가까이 있는 한 당신을 만나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을 것 같소. 그리고 기업경영능력이나 대외인지도 면에서 당신이 나보다 훨씬 높으니 회사를 위해서도 바람직한 일이요.   






끝으로 무슨 미련이 있어 당신이 집을 나가며 우리의 가족사진을 가지고 갔단 말이오. 앞으로 난 당신을 철저히 잊고 과거의 나은혜로 돌아갈 작정이오. 그러니 당신도 우리를 잊어주오. 그 대신 하윤정의 남편으로, 한수현의 아버지로, 그리고 박정녀의 아들로 부디 행복하게 살아주오. 당신이 지난 15년 동안 한 순간도 나를 사랑하지 않은 적이 없다는 말은 정말 빈말이 아니기를 바라겠소. 





☞ 그동안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KBS 일일연속극 <다함께 차차차>가 드디어 오늘 150회로 종영됩니다. 남편인 한태수를 찾은 후 이준우와의 결혼도 포기했던 하윤정이 149회에서 남편에게 "당신이 있을 곳은 나은혜 옆"이라고 말했으니 마지막 순간 어떤 반전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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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ennpe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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