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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당신 정말 한태수 맞지? 당신이 나은혜를 떠나 나에게로 온 게 분명하지? 오랜만에 당신을 만나 수현이 결혼문제를 상의하다니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모르겠어.

오래 전 형님 내외분과 우리 부부가 태국의 바닷가로 여행을 떠나 보트를 타고 항해하던 날 우리는 누구보다도 행복했었지! 그런데 야속한 하늘은 무서운 폭풍우를 일으켜 우리의 행복을 송두리째 빼앗아 가버렸어. 당신이 물에 빠져 허우적거릴 때 난 그저 목이 터져라 당신을 부르기만 했지 물에 뛰어 들어 당신을 구조할 엄두도 내지 못했어. 왜냐하면 난 너무나도 무서웠고, 또 내가 없으면 우리 딸 수현이를 누가 돌보겠어.

그러나 그 후 시아주버니의 시신은 찾았지만 당신의 흔적은 어디에도 없었어. 시어머님은 당신의 제사를 지내자고 했지만 난 당신의 죽음을 인정할 수 없어 지내지 않겠다고 고집을 피웠어. 그러다가 지난번 처음으로 제사를 지냈어. 당신이 어딘가에 살아 있다면 우리가족을 찾아오리라고 생각했지만 당신은 끝내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야. 지금 생각하면 당신이 이렇게 멀쩡하게 살아 있는데 제사를 모시다니 정말 못할 짓을 했지?




당신이 떠난 지 어언 15년이 흘렀어. 어느 날 당신의 조카인 한진우의 심부름으로 유니콘 제과에 갔다가 당신을 보았지. 반가움에 큰 소리로 "태수 씨!"하고 불렀지만 당신은 전혀 날 알아보지 못했어. 아무리 15년이라는 기간이 긴긴 세월이라고 하더라도 당신이 나를 잊는 다는 것은 상상 할 수 없는 일이더군. 나는 기가 막혔지만 사람을 잘 못 보았다는 당신의 말을 귓전에 흘리며 발길을 돌렸어. 이 때의 내 심정이 어떠했는지 당신은 모를 거야. 나중에야 당신이 기억력을 상실했었다는 사실을 알고는 그 때의 상황을 이해했어. 

귀가하여 한진우를 만나보니 그도 이미 당신을 작은 아버지로 착각했으며 자료조사를 해보니 성명도 한태수가 아닌 강신욱이라서 그냥 판박이로 삼촌을 닮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고 했어.

나는 지난 15년 동안 내가 뱃놀이를 주장해 사고가 발생했기에 당신을 잃은 죄책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한 눈 팔지 않고 오직 카센터 사업을 하며 우리 가족을 부양했어. 졸지에 두 아들을 잃는 시어머니와 과부가 된 형님도 이런 나를 고맙게 생각하며 일명 쌍과부집으로 그래도 단란하게 생활했어. 




나는 당신이 내 가까이에서 이토록 멀쩡하게 살아 있는 것도 모르고 만화가인 이준우와 사랑을 싹틔웠어. 이 선생을 만나면 마음이 편안해 지고 당신에 대한 추억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었거든.





결혼날짜를 잡아 예식을 준비하고 있는 데 당신이 강신욱이 아나라 한태수로 나에게 다가왔어. 나는 고민하다가 신부입장순서에서 예식장을 나가 버렸지. 그리고는 당신을 다시 만났으니 옛날처럼 수현이와 함께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꿈에 부풀었어.  

그런데 전혀 예상치 못하게 시어머니께서 당신이 있을 자리는 나은혜 옆이라고 하더군. 나는 억장이 무너졌어. 다른 사람은 몰라도 시어머니는 나에게 그렇게 말하면 안 되는 것이지. 시어머니는 어린 손녀인 나정이가 아비 없이 홀로 자라는 것을 안타깝게 여겼고, 또 아들인 당신의 생명의 은인인 나은혜도 실제로는 며느리이니까 나하고는 생각이 다른 거지. 나는 하도 속이 상하여 나정이를 데려다 키울 생각까지 했었어.

실로 오랜만에 바닷가로 나가 당신과 손잡고 걸어보니 정말 만감이 교차했어. 당신이 떠난 후 나는 바닷가에는 한번도 다시 나간 적이 없었거든. 그런데 자동차에 떨어진 당신의 지갑에서 당신가족 사진을 보았어. 그리고 이사간 이준우를 다시 만나보니 그가 만일 강신욱이라면 지금의 가족을 버리고 옛 가족에게 돌아가기는 어렵다고 하네.





당신이 나은혜 집을 나와 호텔에 머무는 날은 우리가 수현이 남자친구와 함께 저녁을 먹기로 약속했지. 호텔로 가니 뜻밖에도 나은혜가 들어가더군. 나는 당신에게 전화를 걸어 저녁 약속을 상기시켰지만 당신은 지금 외부에 나가 있다고 거짓말을 했어. 나는 또 다시 배신감을 느끼고 객실로 올라가다가 당신과 나은혜의 대화를 들었어.





당신과 나은혜는 서로 자기의 유니콘지분을 팔아 부채를 정리하고 경영에서 손을 떼려고 하더군. 특히 나은혜는 유니콘이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회사인데 이를 헤어지는 남편에게 물려주려는 것은 서로 사랑하지 않고는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야.

당신이 비록 몸은 나와 함께 있더라도 마음의 반 이상이 나은혜와 그 딸들에게 가 있다면 당신과 나의 재결합이 우리 둘 모두에게 결코 행복할 수 없다고 생각해. 나는 당신이 15년 전의 한태수 그대로 인 것으로 착각했어. 그러나 다시 보니 당신은 내가 바라던 한태수가 아니라 너무나도 많이 변했어.




이제야 당신이 나보다도 당신의 현재가족을 더 사랑하고 있음을 깨달았어. 이 순간부터 당신을 놓아 줄 테니 그쪽으로 돌아가. 당신은 나한테 와서는 안 되는 사람이야. 당신을 강신욱이라고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돌아가. 지금 따지고 보니 시어머님 말씀대로 당신이 있을 곳은 역시 나은혜 곁인 것 같아.





나야 당신을 잊고 생활하는 데 이미 익숙해 져서 그냥 살아갈 수 있으니 내 걱정은 하지마. 당신이 살아있음을 먼발치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그건 정말 행운이라고 생각해! 다만 한가지 부탁할 것은 당신이 어디서 무엇을 하든 수현이 아빠라는 사실은 잊지 말아 줘. 꼭 필요할 때는 수현이 아빠가 되어 달라는 말이야. 나와 당신은 헤어지면 남이지만 부녀(父女)관계는 끊을 수가 없잖아. 그렇지? 태수 씨! 부디 행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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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ennpe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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