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일일연속극 <바람불어 좋은날>은 모든 스토리가 점점 꼬이기만 합니다. 물론 이야기를 전개하려면 제작진은 이렇게 스토리를 뒤죽박죽으로 만든 후 나중에 해피엔딩으로 정리해야 직성이 풀리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드라마의 생리가 바로 이런 것이겠지요.
장정남 집안의 삼남매는 요즈음 혹독한 시련을 겪는 중입니다. 큰아들 장대한(진이한 분)은 출생의 비밀을 극복하고 권오복(김소은 분)과 결혼에 골인했습니다. 그런데 혼외아들인 장독립을 잘 키우기 위해 시조모의 강요로 권오복은 다니던 회사를 그만 두었습니다. 권오복의 꿈은 최고의 일러스트가 되는 것인데, 맞벌이가 대세인 요즈음 남편이 데리고 있는 아들을 위해 새엄마가 직장을 사직한 게 현실과는 영 부합되지 아니합니다.
막내딸 장만세(서효림 분)는 웰빙유업의 후계자인 강상준(강지섭 분)과 결혼했다가 혼전임신했다는 거짓말이 탄로 나서 시댁에서 쫓겨난 상태입니다. 강상준은 이미 어머니 차연실 사장(나영희 분)이 추천한 여성인 화영(민영원 분)과 약혼까지 했지만 만세를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만세는 하필 오빠인 장민국(이현진 분)의 사업을 도와준다는 이유로 시댁에서 운영하는 웰빙유업으로 청소일을 하고 있습니다. 한편으로 용감하기도 하지만 다른 면으로는 정말 안쓰럽습니다.
문제는 둘째 아들 장민국입니다. 그는 19살 연상의 이강희 유치원원장(김미숙 분)을 사랑합니다. 이강희는 민국의 고등학교 은사로 민국이 바른 길로 나가도록 인도한 스승입니다. 그런데 민국은 강희를 처음에는 미워했지만 이런 미움이 점점 사랑으로 변합니다. 이강희 선생은 민국의 어머니 윤선희(윤미라 분)와 언니-동생하는 사이로 매우 절친합니다.
강희의 대학선배이자 전 남편의 친구인 의사 박현우(맹상훈 분)는 강희와 민국의 사이가 심상치 않음을 눈치 채고는 강희에게 따집니다.
"둘이 아무런 사이도 아닌 거지? 내가 잘 못 본 거지?"
"선배! 20년 전 내가 그이랑 연애할 때도 선배는 똑 같은 질문을 했었어! 기억나요? 그때나 지금이나 선배 눈은 피할 수가 없네!"
"설마? 너?"
"그이가 떠난 뒤 누군가를 좋아하는 감정이 끝난 줄 알았어요! 다 잊어버렸고, 다 지워졌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요즘 나 다시 옛날 그 시절로 돌아간 것 같아요!"
"오랫동안 남편 읽고 혼자 살아오면서 그 친구 호의를 이성적인 감정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 아니냐고?"
"선배! 차라리 나도 그런 거였으면 좋겠어! 그 애가 그랬어요! 앞으로 자기감정에 충실할 거라고! 선생님도 그랬으면 좋겠대요! 생각해 보니 그 애가 처음 나한테 고백했던 순간부터 난 마음이 불편했어요. 그냥 무시했으면 됐을 텐데 왜 그리 힘들었을까. 비 오는 날 그 애가 날 기다리다가 정신을 잃었을 때 깨달았어요! 그 아이에게 내가 전부란 사실을! 그리고 나 역시도!"
"강희야! 너?"
"선배는 지금 내 감정 이해 못할 거예요. 당연히 그렇겠죠. 나 같아도 이상하다고 생각했을 테니까! 나 더 이상 그 애 아프게 하고 싶지 않아요! 그 애가 아프면 이를 보는 내 마음이 아프니까요!"
강희의 확고한 마음을 확인한 박현우는 억장이 무너집니다. 지금까지 결혼도 하지 않고 미국에서 살다가 귀국하여 강희와 새로운 인생을 설계하려 했는데 강희가 그 애송이에게 빠지다니 이해할 수 없습니다. 강희는 지금까지 민국의 고백을 들은 후 계속 고민하는 자세를 취해 왔습니다. 이즈음 박현우가 등장하였으므로 글쓴이는 자연스럽게 강희는 민국에게 따끔하게 충고하면서 관계를 청산할 것으로 보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강희의 말을 들어보니 이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가고 말았습니다.
민국은 최근 기분이 날아갈 듯 합니다. 드디어 강희의 마음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동업하는 하솔지(정다영 분)에게 좋아하는 여자가 진정으로 감동을 받을 수 있는 선물이 무엇인지 묻습니다. 그동안 민국을 짝사랑해온 솔지는 이게 혹시 자신에게 줄 선물이 아닌지 무척 기대에 부풀어 있습니다. 그런데 민국이 사랑하는 사람이 이강희 선생인줄 알게 되면 틀림없이 기절할 것입니다.
민국은 사업장의 방을 들어서며 "마누라! 서방왔다!"고 큰소리칩니다. 솔지는 민국의 거듭된 요청에 "여자들은 마음이 담긴 선물을 좋아한다"고 대답합니다. "시중에서 흔하게 구할 수 있거나 돈만 주면 살 수 있는 그런 거 말고 그 사람의 진심이 담긴 선물이라고나 할까!" 이 말을 들은 민국은 그게 뭐냐고 소리치지만 솔지는 민국을 한심한 눈으로 바라봅니다. 바로 키스를 해 달라는 의사표현이었거든요. 솔지가 참으로 안쓰럽습니다. 민국의 마음은 콩밭에 가 있기에 하는 말입니다.
박현우는 민국을 만나 강희를 포기하도록 설득합니다.
"나도 젊었을 때 사랑을 해 보았어요. 그땐 정말 상대방이 조금만 잘해줘도 세상 다 가진 거 같고 그 여자 없으면 못 살 것 같고 당장 그 여자랑 결혼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지요. 하지만 그건 본인 감정에 충실한 사랑이지 상대방을 속 깊이 헤아린다고 보기 어려워요. 그래서 말인데, 강희 더 이상 흔들지 말고 놔줘요! 나도 사랑에는 굉장히 오픈 마인드적인 사람이지만 이건 받아들이기가 힘드네요! 두 사람 이러는 거 두 사람 모두에게 좋지 않아요. 특히 강희에게! 강희도 지금 많이 혼란스러워하고 있어요! 민국 씨만 흔들지 않는다면 강희는 곧 제자리를 찾을 수 있을 거예요!"
박현우는 정말 조심스럽게 말을 이어갑니다. 상대방의 기분을 상하지 않으려는 기색이 역력합니다. 그러나 이미 사랑의 노예가 된 민국은 일언지하에 거절합니다.
"제가 좀 단순해서요. 좋으면 좋고 싫으면 싫지 좋은데 싫은 척 하고 남들 눈 의식하고 내 맘 숨기는 것 그런 거 잘 못해요. 저 박 선생님한테 이런 말 들을 만큼 어리지 않습니다. 제 감정 충분히 알고 책임질 수 있는 나이에요. 그리고 선생님 마음도 누구보다 제가 잘 알고요. 그러니까 앞으로 이런 충고 사양할게요!"
민국은 도시락을 챙겨 유치원으로 가서 강희에게 "단 한번도 연상으로 생각해 본적이 없다. 선생님은 제가 좋아하는 여자일 뿐"이라고 고백합니다. 이제 두 사람은 아직 키스는 하지 않았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넌 듯 합니다. 민국의 가족들은 민국이 연애한다는 낌새를 느끼고는 빨리 여자를 집으로 데리고 와서 인사를 시키라고 성화입니다. 민국의 어머니 윤선희는 민국을 좋아하기만 한다면 어떤 여자라고 상관없다고 말합니다. 이미 민국은 오복에게 오복도 잘 아는 여자와 사귄다고 말했습니다.
<바람불어 좋은날>은 저녁시간대 온가족이 함께 시청할 수 있는 가족 드라마입니다. 그런데 젊은 총각아들이 결혼하여 남편과 사별한 19세 연상의 고등학교 여선생을 사랑한다는 설정자체가 현실적으로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민국의 어머니가 친동생처럼 아끼는 강희를 과연 며느리로 받아들일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사랑에는 나이와 국경이 없다지만 이는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이 드라마도 앞으로 큰 풍파가 예상됩니다. 회사를 위해 아들이 좋아하는 며느리를 쫓아내는 시어미니, 자꾸 사기만치는 권오복의 아버지 등 훈훈한 가족드라마가 막장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특히 사라진 아들을 찾겠다는 독립의 생모 최미란이 앞으로 어떤 평지풍파를 일으킬지 조마조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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