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우치 및 이치 역의 차태현
전우치가 방영된 이래 이번 제11회가 가장 통쾌했던 듯 합니다. 마숙(김갑수 분)의 독충에서 깨어난 홍무연(유이 분)이 전우치(차태현 분)와 손잡고 마숙과 강림(이희준 분)을 보기 좋게 응징하였고, 의적 호접랑으로 변신한 무연과 전우치가 의기투합하여 탐관오리의 전형인 도승지를 혼내 주었으며, 임금은 백성들의 어려운 처지를 항상 마음 아파해 근검절약을 솔선수범 하는데 비해 중전은 대신들로부터 생일을 빌미로 뇌물을 챙기는 이상한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이런 이야기 속에 두 건의 통쾌한 현실풍자를 숨겨두고 있었더군요.
전우치가 임금 이거(안용준 분)의 어명을 받고 조침령으로 마숙과 강림이 은광을 캐고 있는 곳으로 갔지만 조보소 기별서리 이치(차태현 분)의 얼굴을 알고 있는 둥개(신승환 분)에 의해 정체가 탄로 나고 말았습니다. 이치는 어명을 받고 은광을 캐는지 조사하러 나왔으며 임금은 전국 몇 군데로 기별서리를 보냈으므로 만일 자신이 죽어 소식을 보내지 않으면 이곳이 은광임이 밝혀진다고 했습니다. 참으로 그럴듯한 말이로군요. 마숙은 차마 이치를 죽이지 못하고 별실에 감금했는데, 이치는 전우치로 변하여 손발을 한번씩 털자 수갑과 족쇄는 그대로 풀리고 맙니다. 참으로 신기한 재주로군요.
이때부터 전우치와 무연의 합동작전이 시작됩니다. 먼저 두 사람은 사람들을 미혹시키는 마전자 보관창고를 불태운 다음 전우치는 채굴에 동원된 일꾼들을 탈출시킵니다. 무연은 전우치가 사람들을 탈출시킨다고 강림을 갱도로 유인하였고, 또 마숙에게는 강림이 부상을 당했다고 속여 두 사람 모두 갱도로 불렀습니다. 그런 다음 무연은 전우치를 공격해 밖으로 내보낸 후 미리 설치해 둔 화약에 불을 붙여 은광굴을 폭파시키고 말았습니다. 무연과 마숙 그리고 강림의 생사는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그로부터 1년 후 신임 평양감사가 부임하던 날 기생을 점고하고 뇌물을 받아 챙기는데, 감사는 평양 제일의 미색인 기생을 불렀습니다. 이 때 글쓴이는 기생 추월이 무연일 것으로 생각했는데, 실제로 부채 뒤의 인물은 여장한 전우치입니다. 이로서 전우치 역의 배우 차태현은 가짜 이치와 진짜 이치, 봉구에 이어 기생역할까지 1인5역을 소화라는 전무후무한 배우가 되었습니다. 전우치가 평양감사를 혼낸 것은 당연하지요.
▲ 국회의원의 면책특권을 꼬집은 개국공신의 처벌조건
골치 아픈 은광채굴 문제가 해결되자 임금은 백성들의 고달픈 삶에 더욱 가슴이 아픕니다. 그는 하루 두 끼만 먹는 대신 절약한 내탕고의 쌀을 백성들에게 구휼미로 나누어줍니다. 현장에 나간 이치가 백성들이 감지덕지하며 받아 가는 쌀이 군내가 나는 썩은 쌀임을 알고는 이를 내금위 서찬휘(홍종현 분) 부사관에게 알렸습니다. 반듯한 관리인 서찬휘는 궁중곡식 창고지기를 심문해 쌀을 바꿔치기 한 자가 다름 아닌 왕명의 출납을 받는 도승지(서울시장)임을 알고는 도승지에게 죄를 추궁하러 했습니다. 그러자 도승지는 적반하장으로 일개 내금위 부사관이 무고한 고위관리를 음해 한다며 오히려 옥에 가두고 말았습니다. 세상에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나요?
상선내관 소칠(이재용 분)은 임금에게 도승지는 개국공신(1등)이므로 모반이나 반역죄를 제외하고는 다섯 번 죄를 지어야 비로소 파직시킬 수 있는 게 조선의 법도라고 했습니다. 세상에나! 이런 희한한 법도도 있군요. 이 말을 들은 임금도 기가 막힌 모습입니다. 임금도 이해하지 못하는 법이 무슨 법이냐고 통탄합니다. 이처럼 개국공신들이 아무리 전횡을 일삼아도 처벌할 수 없으니 나라의 기강이 무너질 것은 명약관화(明若觀火)한 일입니다. 그런데 남쪽지방에서 활동하던 호접랑이 도승지를 혼내줄 계획이라는 소식을 접한 전우치는 왜 남의 관할구역을 넘보느냐며 도승지는 자신이 먼저 혼내주려고 생각해 도승지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여기서 호접랑과 맞붙었는데요. 호접랑(胡蝶娘)은 그 이름부터가 여자입니다. 서로 싸우던 두 사람, 호접랑의 복면이 벗겨지자 그녀는 놀랍게도 생사를 몰랐던 무연입니다. 두 사람은 감격의 조우를 하는군요. 무연은 굴이 무너져 만신창이로 도술을 잃고는 남쪽지방을 떠돌며 탐관오리를 혼내주었다고 합니다. 전우치는 도승지에게 곤장을 때려 혼을 내주고 곶간을 열어 백성들에게 곡식을 나누어 줄 것과 옥사의 서찬휘 부사관을 석방하는 조건으로 목숨을 살려 주었습니다. 전우치와 무연은 법이 제재하지 못하는 탐관오리를 홍길동과 일지매처럼 보기 좋게 응징한 것입니다.
이런 장면을 보며 국회의원의 면책특권과 불체포특권이 떠올랐습니다. 국회의원은 국회에서 직무상 행한 발언에 대해서는 책임을 지지 않으며, 회기중 국회의 동의가 없으면 현행범을 제외하고는 체포할 수 없다는 게 면책특권과 불체포특권입니다. 이에 따라 국회의원은 무책임한 말을 해도 책임지지 아니하며, 방탄국회를 열어 놓는 한 회기 중 체포되지 않는 것입니다. 조선의 개국공신이 5차례나 범죄를 저지를 때까지 처벌받지 않는다는 것과 유사한 특권이지요. 박근혜 대통령 당선자가 앞으로 이 문제를 어떻게 개선할지 두고 보아야 하겠습니다.
▲ 탄신일을 빌미로 뇌물을 챙기는 나라의 국모 중전마마
임금이 젊어서인지 중전도 매우 젊더군요. 하루는 조보소 주서 오규(박주형 분)가 비단을 싸가지고 중전의 생일선물로 바친다고 합니다. 검소한 임금과는 달리 귀때기 새파란 중전은 재물을 무척 밝히는데요. 혼인한지 1년 밖에 안된 가난한 집안 출신이어서 더욱 그러하답니다. 벌써 며칠 전부터 대신들에게 자신의 생신임을 알려 은근히 생일선물을 가져오라고 부추겼다고 합니다. 이치는 오규의 비단을 들고 중전을 뵙기 위해 줄을 섰는데 그 길이가 무려 수 십 명은 되어 보입니다. 이 모습을 본 이치는 중전도 도승지처럼 혼을 내야 하겠다고 다짐했는데, 과연 오늘밤 제12회에서 어떻게 중전의 이 못된 버르장머리를 고쳐놓을지 기대가 큽니다.
여기서 중전의 모습을 보며 지난날 우리나라 대통령부인 중 붉은 바지를 입고 설쳤다던 퍼스트레이디가 생각나더군요. 제작진이 <전우치>라는 드라마를 통해 국회의원의 특권과 청와대 안주인의 행태를 꼬집어 경각심을 준 것은 매우 통쾌한 장면이었습니다. 제작진의 용기에 박수를 보냅니다. 짝짝짝! 한편, 이치는 오갈 데 없는 무연을 데리고 나타나 이혜령(백진희 분)과 방을 함께 사용하도록 조치했는데, 앞으로 이치(전우치)를 좋아하는 두 여인의 팽팽한 기(氣)싸움이 기대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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