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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해남군 현산면 백포리 소재 해남공재고택은 조선시대 최고 자화상(국보 240호)을 그린 공재(恭齋) 윤두서(尹斗緖, 1668~1715)의 가옥으로 윤두서는 고산 윤선도의 증손자입니다. 윤두서는 겸재(謙齋) 정선(鄭敾), 현재(玄齋) 심사정(沈師正)과 함께 조선 후기의 3재로 일컬어지는 선비화가입니다.
이 고택은 고산 윤선도가 풍수지리상 명당터에 지은 집으로 바닷바람이 심해 다른 곳으로 옮기고 증손인 윤두서가 살게 되었다고 합니다. 시기적으로 1670년(현종 11) 건립되어 윤두서가 살았고 1811년(순조 11)에 수리한 것으로 보인다는군요.
화산면 사무소에서 77번 국도를 타고 남하하다가 화산교를 건너 백포해안로를 가노라면 좌측으로 좁은 마을도로가 보이는데 공재고택을 알리는 안내문 하나 없으므로 자동차 내비게이션의 안내를 잘 따라야 할 것입니다. 백포마을 안쪽으로 들어서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해남공재고택을 알리는 안내문이 철책 안(공재 후손의 사당인 모선당)에 세워져 있더군요.
여기서 조금 더 가면 멋진 기와 담장이 보여 역시 문화재로 지정된 고택은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막상 공재고택에는 일반적으로 있을 법한 솟을대문도 보이지 않고 출입구가 확 터져 있어 의아했습니다.
공재고택에는 현재 13칸 규모의 안채와 3칸의 곳간채, 그리고 사당만이 남아있는데요. 건립 당시에는 동쪽에 문간채가 있었고, 문간채로 들어가면 오른쪽으로 48칸 규모의 사랑채가 있었다고 하지만 오래 전에 헐렸다고 합니다. 다만 안채는 건립 초기의 원래 모습을 잘 유지하고 있다는군요.
일단 안으로 들어섭니다. 우측의 돌계단이 있는 가옥(공재 사당) 앞에 공재고택관련 안내문이 유일했습니다. 특히 가옥의 배치도가 없어 이런 고택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은 어느 게 곳간채이고 어느 게 안채인지 알 수가 없을 지경입니다. 일반적으로 고택의 배치는 솟을 대문을 지나면 행랑채, 다음은 사랑채, 마지막에는 안채가 있다고 하는데 곳간채는 어디쯤 배치되는 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고택의 경내를 둘러보아도 공재 고택임을 알리는 현판이 보이지 않더군요. 다만 “ㄷ"자 형식의 어느 문 위에 능통(能通)이라는 글씨가 부착되어 있는데 이걸 현판아라고 부를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이 고택은 외관상으로는 오랜 세월을 견딘 흔적이 역력하더군요.
이는 문인화가의 옛집으로 조선 후기의 건축수법이 잘 남아있는 유서 깊은 전통주택으로서 국가민속문화재로 지정되었다고 하는데 후손은 이웃한 별도의 주택에 살지만 방문자를 위한 배려가 부족한 듯하여 다소 실망했습니다. 주택 내부를 볼 수 있는 방이 하나도 없는 것도 무척 아쉬운 대목입니다.
공재 윤두서가 살던 집이면 350년 이상 된 고택인데 위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공재고택을 알리는 현판도 보이지 않더군요. 다른 이의 방문기를 보니 청우재라는 현판이 있던데 필자는 미처 보지 못했습니다. 경내에 공재 윤두서의 자화상 그림(모사품)이라도 하나 전시해 방문객들의 이해를 높여 주기를 기대하는 것은 과욕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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