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반응형

 

 

 

 

 

 

 

옥천향교 대성전

 

옥천옥주사마소

 

 

 

 

 

▲ 교육과 제사기능의 옥천향교

 

충청북도 옥천군 옥천읍 교동리 소재 옥천향교(충북유형문화재)는 조선전기에 창건된 향교로 조선 태조 7년(1398)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창건되었습니다. 임진왜란 중 소실되었다가 그 뒤 중건되었으며, 1961년에 복원하고 1974년에 보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지금 남아있는 건물은 대성전과 명륜당·동재·서재·내삼문·외삼문·고직사 등입니다.

 

 

 

 

 

향교 입구의 홍살문을 지나면 바로 명륜당이 있는데, 이는 유생들이 모여 공부하는 강당으로 정면 5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형식입니다. 명륜당을 지나면 경내 좌측에는 홍도당(弘道堂)이 있고, 우측에는 사주문 내에 창고와 고직사(관리실)가 있습니다. 홍도당은 유생들의 기숙공간이라는군요.

홍살문

 

 

 

 

 

뒤돌아본 명륜당

 

홍도당

 

사주문

 

고직사(관리실)

 

 

 

 

 

마당 뒤쪽의 계단 위에는 내삼문이 있고 그 안에는 대성전과 동무 및 서무가 있습니다. 사당인 대성전은 공자를 비롯하여 중국과 우리나라 유학자의 위패를 모시고 있는데, 대성전에는 중국의 5성(五聖)·10철(十哲)·송조6현(宋朝六賢)의 위패가, 동무·서무에는 우리나라 18현(十八賢)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지요.

 

 

대성전

 

동무

 

서무

 

대성전 문묘배향인물도

 

 

 

 

 

향교의 건축형태는 전학후묘(前學後廟)의 형태로 앞쪽에는 강학인 명륜당을, 뒤쪽은 사당인 대성전을 배치합니다. 조선시대에는 나라로부터 토지와 책·노비 등을 지급 받아 운영되었으나 갑오개혁(1894) 이후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고 지금은 제사의 기능만 남아있습니다.

 

 

 

 

 

 

▲ 전국 3곳만 남아있는 옥천옥주사마소

 

사마소는 조선시대 사마시 출신의 지방고을 생원과 진사들이 모여 유학을 가르치고 정치를 논하던 곳으로 옥주사마소(충북유형문화재)는 옥천지방에 속한 사마소입니다. 옥천읍 상계리 소재 옥주사마소는 조선 효종 5년(1654)에 세워진 것으로, 우암 송시열이 쓴 「의창중수기」에 의하면 이 건물은 원래 어려운 백성을 위하여 곡식을 저장해 두던 의창건물을 뜯어서 만든 것이라고 합니다. 규모는 앞면 5칸·옆면 2칸의 맞배지붕 건물로 옥천은 1313년(충선왕 5)부터 1413년(태종 13)까지 옥주로 불려 왔기 때문에 옥주사마소로 불립니다.

옥천옥주사마소 입구

 

사마소벽화

 

사마소입구

 

 

 

 

 

 

사마소는 16세기경, 그 당시 훈구파(勳舊派)에 의하여 은퇴 관료의 백성수탈기구로 전락한 자치기구인 유향소(留鄕所)에 대항하여 사마시(司馬試) 출신 젊은 생원·진사들이 설립하기 시작했습니다. 초기에는 친목도모 및 학문연마와 교육활동을 전개하여 고을의 교화에 이바지하였으나 점차 압력단체로 변질되어 수령과 향리들이 그들의 세력을 막지 못하고 지방통치에 간섭을 받았고. 또 노비와 토지를 가지고 재산을 늘리거나 백성들을 마구 잡아들여 벌을 주는 등 행패를 부리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폐단이 심각해지면서 급기야는 1603년(선조 36년) 류성룡(柳成龍)은 사마소 폐지를 건의했습니다. 그러나 일부 지방에서는 폐단이 지속했다는 기록이 있답니다. 따라서 현재 남아 있는 사마소는 괴산 청안사마소, 옥천 옥주사마소, 경주사마소 세 곳뿐이라고 하는군요.

 

 

 

 

 

☞ 옥천옥주사마소는 정지용 생가(문학관) 북동쪽 골목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 글이 마음에 들면 공감하트(♡)를 눌러주세요!

로그인이 없어도 가능합니다.

 

 

 

 

 

 

 

728x90
반응형
Posted by pennpen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