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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목포시 만호동 소재 목포진 역사공원은 조선시대 수군의 진영으로 쓰였던 목포진을 최대한 복원하여 조성한 것으로 현재 객사가 복원되어 있으며, 특히 목포진의 전망대에 서면 목포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옵니다.

 

목포진은 조선시대 수군의 진영(鎭營)이며 목포영·목포대라고 불렀고 만호(萬戶, 고려·조선 시대 외침 방어를 목적으로 설치된 만호부의 관직)가 배치되었다고 해서 만호영·만호진·만호청이라 부르기도 했습니다.

 

지리상으로 목포는 영산강 하구를 안은 채 바다로 연결되는 요충지에 위치하고 있으며, 호남과 경상남부지역으로 통하는 세곡 운반로로 사용되는 길목에 자리하고 있어 목포는 조선초기부터 그 중요성이 부각되어 주목받게 되었습니다.

 

1439년 (세종21년) 처음 목포진의 설치가 재가 되었으며, 성의 모습이 갖추어 진 것은 1502년(연산군 8년)으로 전해집니다. 그 후 목포진은 한반도 서남해의 방어지역으로써 그 역할을 다 했으나 1895년(고종 32년) 고종 칙령으로 폐진되었습니다. 폐진 직후인 개항당시만 해도 청사의 일부가 남아있어 무안감리서, 일본영사관 또는 역국사관 기지로 사용 되다 훼손되어 목포진 유적비만이 남아있던 곳을 2014년 현재의 모습으로 일부 복원하였습니다.

 

목포는 수군진과 관련하여 5백여 년이 넘는 긴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데, 목포진은 한반도 서남해 방어지로서 역사적 요충지였으며, 이곳이 목포의 역사를 실증하는 최초의 장소라는 점에서 그 의의가 매우 큽니다. 목포라는 지명이 옛 문헌상 등장하는 내용 중 지금의 목포와 지리적으로 일치하기 시작한때가 바로 목포진이 설치되는 시기입니다.(자료/목포문화관광 홈페이지에서 발췌인용).

 

 

 

 

 

목포진지 앞에는 홍살문과 객사문(삼문)이 있고 공원 배치도 및 추정 조감도 등 각종 안내자료가 전시되어 있습니다. 1897년 목포가 국제무역항으로 개항하면서 이 지역을 중심으로 주변을 외국인들이 거주할 수 있도록 설치한 각국 거류지역을 근대역사문화공간이라고 합니다.

 

 

 

 

 

 

 

 

 

객사문을 들어서면 복원한 객사가 있는데 객사(객관)는 고려와 조선시대 각 고을에 설치했던 관사로 지방을 여행하는 관리나 사신의 숙소로 사용한 곳입니다. 객사 우측에는 조선시대 수군진과 관련한 수군절도사(심광익)와 만호(방대령)의 선정비가 있는데, 일제강점기 일제가 목포부청 뒤뜰에 묻어 버렸던 것을 해방 후 발견해 이곳으로 이전한 중요한 유적입니다.

객사문(삼문)

 

객사인 목포지관

 

수군절도사와 만호 선정비

 

 

객사문과 객사

 

 

 

 

 

객사를 나와 우측으로 들어가면 목포진지가 있는데요. 공원 전망대에 오르면 목포항과 삼학도 그리고 유달산까지 잘 조망됩니다. 앞으로 조감도(추정)와 같이 복원될 경우 더욱 알찬 역사공부 장소가 될 것입니다.

 

 

 

 

 

 

유달산(맨 좌측)과 노적봉(유달산 우측)

 

목포항(우측)

 

목포항 뒤로 보이는 삼학도

 

 

내려다 본 객사

 

역사공원

 

 

 

 

 

 

 

참고로 역사공원 옆에는 소년 김대중 공부방이 있는데요. 이곳은 유년시절 소년 김대중의 공부방을 복원해 놓은 곳으로 실제로 거주하던 집터라고 합니다. 신안군 출신 김대중은 보통학교 4학년 때 가족이 목포로 이사했다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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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ennpe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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