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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채에 걸린 육영수 여사 초상화

 

아래채에서 본 안채 진입로

 

 

 

 

 

충북 옥천군 옥천읍 교동리 소재 육영수 생가는 박정희 대통령의 부인으로 국민의 추앙을 받았던 육영수(1925~1974)가 태어난 집입니다. 이곳은 1600년대부터 조선 상류계급의 건축 구조를 갖춘 가옥이 있었던 옥천지역의 명문가로 김정승, 송정승, 민정승이 살았던 집이어서 삼정승집으로 불린 곳으로 1918년 육영수의 부친(육종관)이 가옥을 매입해 수리하면서 조선 후기 전형적인 충청도 양반가의 모습으로 변모했습니다.

 

 

 

 

 

충청북도와 옥천군은 집이 허물어진 채 터만 남아 있던 것을 복원해 2011년 5월부터 일반에 공개했습니다. 99칸 집이었다는 이야기처럼 대문 안에는 사랑채, 건넌채, 안채, 뒤채, 행랑, 별당, 후원, 정자, 연못 등이 모습을 드러내 그 규모에 놀라게 됩니다.

 

육영수는 육종관-이경령 부부의 1남 3녀 중 둘째 딸로 태어나 1942년 서울 배화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옥천중학교에서 교직생활을 하다가 1950년 10월 당시 박정희 중령과 결혼했습니다. 1974년 장충동 국립극장에서 열린 광복절 기념식장에서 박정희 대통령이 기념사를 읽던 도중 단상에 앉아있던 육영수 여사가 박정희를 저격하러 온 재일교표 문세광이 쏜 흉탄에 맞아 목숨을 잃었습니다.

 

솟을대문을 들어서면 정면에 사랑채가 있는데 사랑채는 정면 5칸(사랑대청 3칸, 온돌방 2칸)으로 귀빈접대용으로 사용하였으며, 박정희 대통령 방문 시 임시집무실로 사용되었습니다. 현재 대청마루에는 육영수 여사의 초상화가 걸려 있네요.

 

 

 

 

사랑채

 

 

육영수 여사 초상화

 

 

 

 

 

사랑채 우측에는 연못이 있고 연못 후면에는 연당사랑(채)이 있는데, 이는 연못을 바라보면 풍류를 즐기기 위해 마련된 공간으로 생가 내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소라서 육영수 여사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냈다고 전합니다.

 

 

 

 

 

 

 

사랑채 우측 뒤에는 중문채가 있는데, 이는 20명 정도의 사람이 앉을 수 있는 온돌방으로 가옥에서 일하는 인부 및 동네사람들이 모여 담소를 나누거나 겨울철 새끼를 꼬던 방입니다.

중문채

 

 

안채 진입문

 

 

 

 

 

연당사랑 뒤에는 윗채가 있는데, 이는 교동가옥의 가장 후면에 위치하고 있으며, 안방과 대청마루 및 툇마루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윗채 좌측에는 사당인데 그 아래 놓여있는 장독대가 고즈넉합니다. 윗채에서 좌측의 계단을 올라 문을 나서면 후원에 정자가 있어 산책하기에 참 좋아 보입니다.

윗채 출입문

 

윗채

 

 

사당과 장독대

 

 

윗채에서 후원 정자로 가는 계단

 

후원정자 출입문

 

후원 정자

 

 

 

 

 

 

정자를 내려오면 사당 앞의 큰 건물은 안채입니다. 안채에는 박정희-육영수 부부의 결혼식사진을 비롯해 육영수 관련 사진이 진열되어 있으며, 육영수 여사가 출가하기 전까지 사용했던 방에는 박정희-육영수 사진과 침구 등이 놓여 있습니다. 안채의 안방은 어머니(이경령), 골방은 육영수, 동쪽 날개채 안사랑은 아버지(육종관)가 주로 거주했습니다.

 

 

 

육영수 여사 방(결혼 전)

 

 

 

안채

 

안채에서 본 중문채

 

 

 

 

 

안채 좌측에는 뒤주와 연자방아가 있고 그 아래에는 아래채가 있습니다. 육영수 생가는 조선시대 충청지방의 사대부 건축의 구조를 잘 보여주는 곳으로 교동집이라고 불리던 옥천지방의 명가입니다. 현재 충청북도 문화재 기념물(제13호)로 지정해 관리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육영수 생가는 대청호 오백리길 9구간(지용향수길)에 포함되어 있는 명소입니다.  

뒤주

 

연자방아

 

아래대문채(좌)

 

아래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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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ennpe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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