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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계서원 문루인 양호루

 

강학의 중심건물인 호계서원 숭교당

 

제사의 중심건물인 호계서원 존도사

 

 

 

 

 

경북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소재 호계서원(虎溪書院)은 원래 조선 선조 6년(1573) 지방사림들이 퇴계(退溪) 이황(李滉)의 위패를 봉안하고 후학들에게 학문을 강론하기 위해 월곡면 도곡리에 여강서원(廬江書院)이라는 이름으로 창건된 서원입니다. 이후 선조 33년(1605) 대홍수로 소실된 것을 북쪽 100보 위치에 중건하였다고 전하며, 광해군 12년(1620) 서애(西厓) 류성룡(柳成龍), 학봉(鶴峯) 김성일(金誠一)의 위패를 함께 모시게 되었고, 숙종 2년(1676) 임금으로부터 사액을 받아 이름을 “호계”로 바꾸었습니다.

호계서원 표석(서원입구)

 

 

 

 

 

원래 93칸 규모의 서원은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 때 없어졌다가 7년 뒤에 강당만 새로 지었으며, 안동댐 건설로 인한 수몰지구로 1973년 임하리로 옮겼으나 안동댐 여수로의 물보라와 습기로 인해 서원건물의 훼손이 우려되어 안동유림의 공론으로 2018년 이곳으로 다시 옮겨 사당을 비롯한 다른 건물들을 재건했습니다.

 

 

 

 

 

서원으로 들어사면 문루인 양호루(養浩樓)가 방문객을 맞아줍니다. 양호루 좌측에는 서원배치도와 안내문이 놓여 있는데 철판에 새긴 글이어서 가독성(可讀性)에 문제가 있군요. 양호루 우측에는 호계서원 이건중창연혁비가 있지만 역시 사진으로는 읽기가 어렵습니다. 그 옆의 건물은 재주인데 아마도 서원관리 및 제례를 준비하던 장소 같습니다.

호계서원 문루인 양호루

 

 

 

 

호계서원 배치도

 

호계서원 안내문

 

호계서원 이건중창연혁비

 

재주

 

내려다 본 재주

 

뒤돌아본 양호루

 

 

 

 

 

 

양호루에서 진학문(進學門)을 들어서면 강학의 중심건물인 호계서원 숭교당입니다. 숭교당에는 숭교당(崇敎堂), 주경재(主敬齋), 사성재(思誠齋) 현판이 걸려있군요. 숭교당 앞에는 유생들의 기숙사 동재인 구인재(求仁齋), 서재인 명의재(明義齋)가 있습니다.

진학문

 

 

 

호계서원 숭교당

 

 

숭교당 및 주경재 현판

 

사성재 현판

 

구인재

 

명의재

 

 

 

 

 

숭교당 뒤쪽에는 신문(내삼문) 내에 사당인 존도사(尊道祠)가 있습니다. 이곳에는 퇴계 이황, 학봉 김성일, 서애 류성룡의 위패 외에 대산 이상정(李象靖 1711-1781, 이황의 사상을 계승하고 정의한 영남학파의 중추적 학자)의 위패를 추가로 모셔 조선을 대표하는 유림4인의 위패를 한자리에 모시게 되었습니다(자료/현지 안내문).

 

신문(내삼문)

 

존도사

 

 

 

 

 

이와 관련 다음백과와 위키백과에는 사액서원이 된 후 호계서원에 있던 세 선현들의 위패를 다른 곳으로 옮겼다고 기술(즉 퇴계 이황은 도산서원, 학봉 김성일은 임천서원, 서애 류성룡은 병산서원)하면서 이후 호계서원은 제사의 기능은 없어지고 강학의 기능만 남게 되었다고 적고 있기에 현지 안내문과 큰 차이가 있군요. 검증절차를 거쳐 차이점을 바로잡아야 할 것입니다.

 

이밖에도 서원에는 보상고(寶上庫), 유사방, 동몽채, 신주 등의 건물이 있지만 정신없이 사진을 찍다보니 건물 용도를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하겠군요. 호계서원은 안동선비순례길 7코스(산림문학길)를 답사하면서 처음 알게 된 사원입니다. 안동지방에서 유명한 사원은 도산서원인데 이 사원도 안동지방의 대표적인 사원이라고 하는군요. 실제로 보니 그 규모가 정말 대단합니다.

보상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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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ennpe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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