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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8경의 하나인 월곶돈대 연미정

 

강화외성 문루의 하나인 월곶진 조해루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 월곶리 소재 월곶진은 한강 하구에 위치하여 염하를 통하여 인천 방면을 거쳐 삼남지방으로 왕래할 수 있었고, 중국과도 교통할 수 있는 중요한 요충지에 위치하고 있어 한국전쟁 이전에는 매우 번성한 포구 중 하나였습니다. 이곳에는 월곶돈대, 황형택지, 연미정, 조해루 등 유적이 있습니다.

 

연미정 문화관광해설 안내소

 

 

 

 

 

 

 

원미정으로 가는 입구에 있는 반듯한 문루인 조해루(朝海樓)는 고려시대 몽고의 침입을 막기 위해 설치한 강화외성 6개 문루(조해루, 복파루, 진해루, 참경루, 공조루, 안해루) 중 하나로 2011년 복원한 것입니다. 이 문은 강화로 들어오는 사람들의 검문소 역할을 했습니다.

 

강화외성 조해루

 

 

 

 

 

 

 

 

월곶돈대로 오르는 길목에는 조선중기 무신인 황형 장군(1459-1520)택지비가 있는데 이는 장군의 옛집터입니다. 황형(黃衡)은 조선 성종 및 중종 때의 무신으로 삼포왜란 당시 전라좌도방어사로 왜적을 대파한 인물입니다. 그 후 함경도지방의 야인이 반란을 일으키자 순변사로서 이를 진압하고 평안도·함경북도의 병마절도사를 거쳐 공조판서에 이르렀습니다. 왕이 그의 공을 치하하며 연미정을 하사해 만년을 보냈습니다.

 

 

 

 

 

 

 

월곶돈대는 조선숙종 5년 강화유수 윤이제가 정비한 동대로 타원형을 이루고 있으며 규모는 동서 폭이 47m, 남북 폭이 38m입니다. 그런데 이곳은 월곶돈대보다는 연미정으로 더욱 잘 알려진 명소입니다. 이곳은 2017년 방영된 MBC TV 월화특별드라마 “왕은 사랑한다(40부작)” 촬영장소로 월곶돈대입구에 이를 알리는 포토존 안내문이 있을 정도입니다.

월곶돈대

 

 

돈대 출입구

 

MBC 드라마 홍보사진

 

 

 

 

 

이제 월곶돈대의 하이라이트인 연미정으로 갑니다. 강화군 강화읍 월곶리 소재 연미정(燕尾亭)은 최초 건립연대는 미상이지만 현지 안내문에는 고려시대에 세운 것으로 적고 있으며,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및 6.25 전쟁을 거치며 여러 차례 시련을 겪어 파손된 것을 현재와 같이 복원한 것입니다. 연미정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건물로 돌기둥 위에 10개의 기둥을 얹어 건축한 것으로 이곳을 흐르는 임진강과 염하강의 모양이 제비꼬리 같다하여 연미정이라는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강화8경인 연미정은 월곶돈대 꼭대기에 세워져 있어 파주시, 김포시, (북한)황해도 개풍군 일대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습니다. 정묘호란 때는 조선 인조가 후금과 굴욕적인 형제관계의 강화조약을 맺었던 아픈 역사의 현장이기도 합니다. 연미정 양쪽에는 수령 수백 년 된 느티나무 두 그루가 웅장한 자태로 자라고 있어 장관입니다. 연미정 남쪽의 느티나무는 수령이 540년 이상된 보호수로 지금도 고고한 자태를 자랑하지만 연미정 북쪽의 느티나무는 유감스럽게도 2019년 태풍 링링에 의해 등걸만 남고 부러져 버렸습니다. 그런데 죽은 줄 알았던 등걸에서 새싹이 움터 자라고 있다는군요. 지금은 겨울철이라서 사진으로 이를 증명하기는 어렵습니다.

보호수 느티나무와 연미정

 

 

부러진 느티나무 등걸

 

느티나무가 부러져 드러누운 흔적

 

 

새싹이 움트는 부러진 느티나무 등걸

 

월곡돈대 입구의 부러진 느티나무 사진

 

월곶돈대에서 본 김포 문수산

 

월곶돈대에서 본 북한땅

 

 

 

 

 

그런데 월곶돈대입구에는 화남 고재형(華南 高在亨 1846~1916)이 지은 연미조범(鷰尾漕帆)이라는 시(1906)가 새겨져 있습니다. 화남 고재형은 필자(pennpenn)의 눈에 익은 인물로 이미 답사한 강화나들길 6코스의 주제가 “화남생가 가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강화군에서 강화나들길(20개 코스)을 조성하는데 밑그림을 제공한 100여 년 전 강화의 여행자입니다. 그가 지은 시 연미조범(鷰尾漕帆)은 “연미정 조운선의 돛대”란 뜻으로, 삼남지방에서 올라오던 조운선(漕運船, 조선시대 각지의 세금으로 걷어 들인 곡물을 운반하던 화물선)들이 돛을 활짝 펴고 연미정 앞을 경유하던 광경을 나타낸 것입니다. 잔소리는 그만하고 이 시의 내용을 살펴볼까요.

 

燕尾亭高二水中(연미정고이수중) 연미정 높이 섰네 두 강물 사이에

三南漕路檻前通(삼남조로함전통) 삼남지방 조운길이 난간 앞에 통했었네

浮浮千帆今何在(부부천범금하재) 떠다니던 천척의 배는 지금 어디 있나

想是我朝淳古風(상시아조순고풍) 생각컨대 우리나라 순후한 풍속이었는데

화남 고재형의 시 연미조범(상당히 낡아서 가독성 저하)

 

안내문 설치당시의 깔끔한 모습

 

 

 

 

 

참고로 조해루 앞에는 월곶진 관리(管理)에 공을 세운 두 인물에 대한 영세불망비가 있고, 해안가 철책 옆에는 수령 300년이 지난 회화나무가 있습니다. 예로부터 회화나무를 집에 심으면 가문에 큰 인물이나 학자가 나온다고 하여 길상목으로 불렀습니다. 조선시대에는 임금이 공을 세운 관리(官吏)에게 회화나무를 하사했으며, 과거시험 합격자에게 내린 어사화가 바로 회화나무 꽃이었습니다.

영세불망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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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ennpe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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