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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보령시 오천면 소성리 소재 충청수영성(사적 제501호)은 서해로 침입하는 외적을 막기 위해 쌓아 올린 길이 1,650m(현재 남아 있는 성의 길이)의 석성으로 1509년(조선 중종 4년)에 축성을 시작하여 16년간 쌓은 후 1896년(고종 33년) 폐영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습니다. 이곳 충청수영은 당시 충무의 경상수영, 여수의 전라수영과 함께 조선의 바다를 지키던 3대 수영으로 충청도지역을 방어하는 최고사령부 기능을 했으며, 오천항은 군선 100여 척이 정박하고, 수군도 3,000명이 항상 주둔하였던 군항이었습니다. 충청수영성 영보정은 천수만 입구와 어우러지는 경관이 수려하여 조선시대 시인 묵객들의 발걸음이 잦았던 지역으로 성지(城址)와 주변 지형이 거의 원형(原形)을 유지하고 있어 경관적으로도 우수한 상태입니다.
수영성 서문 아래에는 오천면 종합안내도, 충청수영성 안내문, 드라마 동백꽃필무렵 촬영지 안내문, 서해랑길 62코스 안내지도가 있습니다. 수영성 서문(망화문)인 원통형 석문을 통과하면 좌측에 진휼청이 있는데, 진휼청(賑恤廳)은 조선시대 충청수영 관내에서 빈민구제를 담당하던 곳으로 충청수영이 폐지된 이후 민가로 쓰이다가 1994년 토지와 건물을 매입하여 보존하고 있는데, 정면 5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이며, 대청·온돌방·툇마루·부엌 등이 있습니다. 다만 현재는 문화재 보수공사로 인해 출입을 통제하고 있어 공사용 가림막이 보일 뿐입니다.
서문에서 바로 계단을 오르면 수영성의 정자인 영보정(永保亭)입니다. 영보정은 수영성 안에 있던 정자로 1504년 수사 이량(李良)이 처음 짓고, 계속 손질하며 고쳐 온 우리나라 최고 절경의 정자였습니다. 바다 건너편의 황학루(黃鶴樓) 및 한산사(寒山寺)와 어우러진 뛰어난 경치로 인해 조선 시대 많은 시인 묵객들이 찾아와 경치를 즐기며 시문을 많이 남겼는데, 특히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 백사(白沙) 이항복(李恒福)은 이곳을 조선 최고의 정자로 묘사했습니다.
영보정의 영보(永保)는 영원히 보전한다는 뜻으로 임금에게 충성하고 나라를 걱정하는 우국충정(憂國衷情)의 마음을 담고 있습니다. 영보정 정자 안에는 天上楼臺畵中江山(천상누대화중강산)이라 쓰인 편액이 걸려 있는데 이는 “높은 망루에 올라보니 그림 같은 강산이 펼쳐진다”는 의미로 당시 정자의 위치에서 보는 주변의 풍경이 한 폭의 그림 같다는 뜻입니다. 이 글씨 좌측에는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이 쓴 영보정연유기(永保亭宴遊記)가 있는데 영보정에서 잔치를 하며 즐겁게 놀았다는 의미로 보입니다.
그런데 현지 안내문에 의하면 1896년 수영(水營)이 폐지되면서 영보전이 없어져 현재는 터만 남아 있으며, 조선 후기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되는 영보정도(永保亭圖)가 전해온다고 적고 있습니다. 다른 자료를 보면 현재의 영보정(永保亭)은 2015년에 복원된 것이라는데 복원된 영보정은 원래의 터인지 아니면 다른 곳인지 정보가 없어 헷갈립니다.
어찌 되었던 이곳 정자에 오르면 선현들이 격찬한 바와 같이 오천항과 보령방조제 그리고 보령방조제 배수갑문이 어우러져 정말 아름다운 풍경을 연출하고 있습니다. 남쪽으로는 오천항 부두의 전체모습이 잘 조망됩니다.
영보정에서 충청수영로를 건너 보령오천교회가 보이는 곳으로 가면 수영성과 관련된 비석군이 있습니다. 또한 충청도 수군절도사였던 최호 및 강진흔 관련 안내문이 세워져 있네요. 이곳의 내삼문에는 공해관(控海館)이라는 현판이 있는데 이 삼문은 공해관의 출입문이나 현재 공해관은 없어지고 출입문만 남아 있습니다. 공해관은 수군절도사의 집무실입니다.
삼문 뒤로 오르면 수영성의 객사인 장교청(將校廳)이 있는데 원래는 오천초등학교 자리에 있던 것을 이곳으로 옮긴 것입니다. 그런데 이 객사의 이름은 운주헌이라는데 유감스럽게도 현판이 없군요. 이 객사는 수군절도사가 왕을 상징하는 전패(殿牌)를 모시고 매월 2회 대궐을 향해 절을 올렸으며, 중앙에서 내려오는 관리들의 숙소로 활용되었습니다.
오천초등학교로 내려와 오천면행정복지센터 쪽으로 가면 그 맞은편에 수영성으로 오르는 침목계단이 보이는데 입구에 충청수영성 주변 남벽과 남문지 주변 발굴조사관련 안내문이 있습니다. 또 오천면행적복지센터 좌측으로 조성된 수영성 탐방로를 따라 가면서 수영성 아래 길을 가면 큰 소나무가 있는 전망대가 나옵니다.
전망대에 서면 이미 다녀온 충청수영성의 영보정과 객사인 장교청이 잘 보입니다. 특히 오천항의 주차장과 주거지역이 바로 눈 아래 펼쳐집니다. 성으로 올라 방금 왔던 길을 되돌아갑니다. 충청수영성은 석성(石城)이라고 했는데 이곳의 모습은 토성(土城) 같습니다. 이곳 수영성은 정말 원형(原形)이 잘 유지되고 있음을 피부로 실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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