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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경운동 수운회관. 수운(水雲)은 천도교 창시자인 최제우 선생의 호다. 글쓴이는 서울에서 생활한 지 어언 40년이 지났지만 수운회관이 있는 천도교 중앙대교단은 처음 방문하였다.

수운회관 옆에 위풍당당하게 서 있는 붉은 벽돌건물이 천도교 중앙대교당이다. 멀리서 보면 현대식빌딩인 수운회관만 보일 뿐이어서 대교당이 있는지도 몰랐다.

                         고층빌딩인 천도교수운회관 옆에 중앙대교당이 보인다.


천도교의 중앙대교당은 종교의식과 일반행사를 하는 곳이다. 천도교 3대 교주였던 손병희의 주관으로 1918년에 공사가 시작되었으나 3·1운동으로 중단되었다가 1921년에 완공되었다. 교인들로부터 성금을 모아 공사비로 충당하였는데, 공사비에서 남은 돈은 3·1운동 자금으로 사용하였다.



건물의 기초부는 화강석을 사용하고 벽은 붉은 벽돌을 사용하여 쌓았다. 지붕 옆면이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집인데, 철근 앵글로 중간에 기둥이 없게 하였다. 또한 앞면에 2층 사무실을 탑 모양의 바로크풍으로 하여 특이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당시에는 서울시내 3대 건축물(명동성당, 철거된 조선총독부 청사)의 하나로 꼽혔으며, 교회당의 구조와 비슷하면서도 전혀 다른 느낌을 지니고 있는 건물이다. 현재 서울시 유명문화재로 지정 관리되고 있다.(자료 : 문화재 청)
 



중국 상해에서 귀국한 김구선생은 "천도교가 없었다면 3.1운동이 없었고, 3.1운동이 없었다면 중앙대교당이 없고, 중앙대교당이 없었다면 상해임시정부가 없고, 상해임시정부가 없었다면 대한민국의 독립이 없었을 것이다"라고 증언했다고 한다.


그러나 두 번이나 방문했지만 유감스럽게도 대교당의 출입문이 잠겨 있어 내부를 보지 못해 무척 아쉽다. 이 건물은 1919년 7월 일본인 나까무라 헤이요시(中村與資平)에게 건축설계를 의뢰하여 1921년 2월 28일 준공되었다. 건물의 정면 중앙에는 탑이 서 있다.

이 탑의 중앙부에는 반원 아치의 큰 창이 있고 그 상부에 3개의 작은 반원 아치창을 내었으며, 그 지붕은 바로크풍이다. 건물 내외부에 한민족을 상징하는 박달나무꽃과 무궁화 등을 조각하였다.  (자료 : 다음 신지식) 

 

이 건물입구 도로변에는 세계어린이운동 발상지라는 표석이 세워져 있다. 소파 방정환 선생이 우리나라 어린이운동 창시자임은 잘 아는 사실인데, 그렇다면 이게 세계적으로 최초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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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ennpe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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